inspiring

헛똑똑이들

스트롱 내부 미팅을 할 때 내가 요새 자주 언급하고 강조하는 게 있는데, 바로 투자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고, 투자할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나를 포함해서 투자 인력이 5명으로 커졌는데,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지금까지의 경험도 다르기 때문에, 창업가나 회사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내가 아주 투자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서 다른 분들은 초부정적 피드백을 줄 때도 있고, 반대로 다른 분들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창업가에 대해서 나는 또 다른 시각으로 그 반대의 의견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실은,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우린 상당히 많은 걸 배우고, VC로서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데, 이렇게 서로의 논리와 주장을 남들과 공유하고 설득할 때 한가지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건 나도 자주 빠지는 함정이고,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 또는 경험이 계속 축적되고 있는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바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논리를 만들고, 이를 합리화하고 또 정당화 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실은, 모든 스타트업은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수백 가지이고, 투자해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이건 모든 VC들이 잘 아는 사실인데,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특정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이유를 찾아서 투자해야 하는 업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가끔 잊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 조사, 데이터, 본인의 경험 등을 기반으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멋진 논리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같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이 사업은 이미 다른 회사들이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됐고, 저 사업은 시장을 다 먹어도 100억이 안되고, 저 창업가는 본인이 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고, 등등, 실은 구구절절 모두 맞는 말이다. 원래 뭔가를 반박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만큼 논리적이고 완벽한 게 없긴 하다.

나는 이런 걸 헛똑똑이 증후군이라고 한다. 똑똑한 투자자이고, 더 똑똑한 부정적인 의견이긴 한데, 결국엔 이렇게 해서 투자하지 않는 회사 중에 엄청나게 잘하는 곳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VC들이- 나를 포함 – 투자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 헛똑똑이 증후군에 빠지는데, 이건 좋은 투자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마인드셋이다.

실은 헛똑똑이 투자자들은 본인들이 창업가보다 똑똑하다는 걸 자꾸 증명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수치와 논리를 기반으로 특정 창업가와 사업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유를 계속 만드는데, 이런 분들은 투자하지 말고 그냥 직접 창업하는 걸 권장한다. 우리가 하는 이 투자라는 업은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잘 찾아서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창업가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이렇게 힘들게 계속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다.

한 방은 없다

스타트업은 린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실패해도 그냥 다음 새로운 시도로 넘어가면 된다. 대기업은 관료주의적이고 느리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기 위해서 내부 승인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 새로운 건 이미 옛날 것이 되어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스타트업이 가지지 못한 자본력과 유통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협업을 종종 본다. 물론, 서로 DNA가 다른 조직이라서 대부분의 협업은 실패하지만, 잘하는 사례도 아주 가끔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대기업과의 협업에 너무나 큰 자원을 할당하고, 너무나 큰 기대와 의미를 부여한다. 큰 오프라인 리테일 유통망을 가진 대기업을 통해서 제품이 마케팅되고 유통되기 시작하면 매출이 10배 이상 증가할 거라는 시장 조사와 분석 자료를 너무나 굳게 믿으면, 이 협업을 되게 하기 위해서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년 동안 자체적으로 매출을 이렇게 크게 만들지 못한 회사인데, 남과의 협업을 통해 큰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너무 굳게 믿으면, 우리 사업의 핵심이 우리의 제품과 고객에서 다른 회사와의 협업으로 바뀐다.

모든 개발력은 우리에게 폭발적인 성장을 말로 보장하는 파트너사의 요구를 맞추는 데 다 투입되고, 우리 마케팅 담당자들은 우리 자체 마케팅이 아니라, 다른 회사와의 파트너십을 그 회사의 기준에 맞춰서 홍보하기 위해서 바빠진다. 그리고 회사의 핵심인 대표이사 또한 이 협업이 한 방에 우리 회사의 운명을 180도 바꿔 놓고, 그 이후에 우리 회사는 제이 커브 성장을 그릴 수 있다고 굳게 믿어서, 실은 더 중요한 모든 일들은 이 협업 이후로 미룬다.

그런데 대기업과의 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나는 봤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 후에 잔뜩 기대하면서 시작한 파트너십은 대부분 잘 안된다. 실은, 대부분 재앙의 수준으로 마무리되고, 이 협업 때문에 그동안 날렸던 시간, 돈,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 대가는 작은 스타트업을 그대로 파산시킬 수 있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한국에선 스타트업의 성공이 “대박”과 “한 방”과 같은 단어로 포장되기 시작했고, 내가 만나는 일부 창업가들은 스타트업에 한 방이 없으면 절대로 제이 커브를 만들 수 없고, 제이 커브를 못 만들면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실은, 방금 쓴 문장에 내가 싫어하는 스타트업 단어가 다 들어가 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한 방”, “유니콘”, 그리고 “제이 커브”다. 아직도 이런 한 방 신화를 믿고 있는 창업가들은 이전 글의 AuditBoard와 같은 회사들의 성장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한 방으로 크게 성공하는 대박 성공은 절대로 없다. 특히, 요새 같이 경쟁이 심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한 방에 성공하는 사업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게 아직도 있다면 그건 사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가들은 특정 기업과의 협업, 특정 기능, 특정 업데이트, 특정 인력이 그동안 회사에 없던 성공을 한 방에 가져올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되고, 여기에 올 인 하면 안 된다. 모든 일들엔 시간이 걸린다(TTT=Things Take Time).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게 되는 복리의 힘, 그리고 복리의 힘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나만의 견고한 사업과 비즈니스 모델이다.

절대로 대박은 없다. 이 대박에 올 인하지 마라.

작은 시장, 작은 사람들, 큰 결과

5월 말에 테크크런치에 한 M&A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Hg라는 투자사가 AuditBoard라는 스타트업을 한화로 4조 원($3B)이 넘는 금액에 인수한다는 내용인데, 업계 분들도 이 기사를 보고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인수자인 Hg도 낯선 이름이었고, 이 투자사가 인수한 AuditBoard라는 회사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수 금액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딜이었다. 관련 기사도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기사를 읽어보면 대부분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회사의 가장 큰 인수 소식”과 비슷한 부류의 내용이다.

AuditBoard는 LA 주변 오렌지카운티의 두 한인 중학교 친구인 Daniel Kim과 Jay Lee가 2014년도에 창업한 회계/감사/리스크 관리 관련 B2B SaaS 스타트업이다. 다니엘이 중견 기업의 CFO 였는데, 본인이 몸담고 있었던 회사의 회계 관리 업무를 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창업했고, 시작은 미국 회계/감사 관련 법인 Sarbanes-Oxley 법 준수를 위한 소프트웨어였다. 그래서 창업할 때 회사 이름도 SOXHub이었는데, 회사는 점점 더 그 시장과 제품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 회사가 그동안 계속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으면서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두 공동창업자가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그런 전형적인 유니콘 창업자들이 아니다. 둘 다 회사를 창업했을 때 나이도 있었고, 그 전에 스타트업 경험이 전혀 없었고, 소프트웨어로 뭔가를 해본 사람들도 아니고, 어쨌든 투자자들이 만났을 때 “이 친구들한테 당장 투자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팀은 아니었다. 또한, AuditBoard의 본사는 Cerritos라는 오렌지카운티의 도시였는데, 내가 알기론, 이 도시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특히나 유니콘 회사를 만들기엔 약간 뜬금없는 지역이긴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풀고자 했던 포천 1,000 기업의 회계/감사 시장을 잘 아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고, 알아도 일반적으로 이 시장은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니라 그냥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틈새시장 정도로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투자자라면 창업가들에게 수십번도 말했을 전형적인 “너무 작은, 스케일이 불가능한 시장”으로 인식되는 틈새에서 이들은 창업했는데, 이런 회사는 투자받는 게 정말 힘들다.

세 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이유로, AuditBoard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첫해부터 만들 수밖에 없었고, 투자도 거의 안/못 받았기 때문에 언론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고, 정말로 이런 회사를 일부러 찾으려고 하는 투자자가 아니라면 VC의 레이더망에 안 잡혔다. 또한, 너무 틈새시장으로 알려진 분야라서, 경쟁사도 거의 없었고, 이렇다 보니 이 분야는 더욱더 안 알려졌고, 이 회사 또한 더욱더 안 알려졌다.

창업 후 거의 10년 만에 인수되는 AuditBoard의 수치는 굉장히 놀랍다. 일단 연반복매출(ARR)이 한화로 거의 3,000억 원이다. 시장이 가장 좋을 때, B2B SaaS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ARR의 20배 정도였는데,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은데도 거의 15배 기업가치로 인수됐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금까지 받은 총투자금이 한화로 600억 원밖에 안 된다. 600억 원의 투자를 받아서 3,000억 원의 연 매출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고 – 참고로, 창업 2년 차부터 흑자 전환했다 – 4조 원에 인수됐는데, 투자 금액 대비 매출 창출 능력이나 엑싯 비율이 이렇게 좋은 스타트업은 드물다. 말 그대로 진짜 유니콘이다.

마지막으로,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던 이 회사의 인수가, 올해 북미 시장에서 벤처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엑싯 중 가장 큰 메가 엑싯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몰랐던 회사의 엑싯이 올해 북미 시장에서 가장 큰 엑싯이라니,,,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Daniel과 Jay를 2014년도에 처음 만났고, 2015년도에 투자했다. Mucker라는 LA의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첫 투자를 받은 후, 스트롱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투자자였다. 실은, 지금 와서 말하지만, 나도 그땐 세리토스라는 창업불모지에서,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너무 먼 두 명의 한인교포 창업가들이, 내가 아예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시장 규모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야에서, 돈 벌기가 그렇게 어려운 B2B SaaS 사업을 하는 이 회사를 만났을 때 전혀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끈질기게 찾아와서 설득했고, 반은 설득당했지만, 반은 그냥 “이거 투자할 테니까, 더 이상 나를 좀 귀찮게 하지 마세요.(=제발 이거 먹고 떨어지세요)”라는 생각으로 투자했다.

그 누구도 – 나도, 스트롱도, 이 회사의 시리즈 B를 리드한 Battery Ventures도, 그리고 심지어는 두 명의 공동창업가들도 – AuditBoard가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진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결과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2014년도의 Daniel과 Jay의 모습과 2024년도의 $3B 엑싯이 계속 머릿속에서 겹치는데, 뭔가 계속 현실과 비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왜 우린 이렇게 더디게 가고 있을까. 왜 우린 남들같이 투자를 못 받을까. 왜 우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까. 왜 우린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니치한 사업을 하고 있을까. 뭐, 이런 고민을 오늘도 하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AuditBoard 이야기를 꼭 공유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느끼는 점도 많을 것이고, 어쩌면 더 많은 고민거리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희망해본다.

내가 하는 일을 굳게 믿고,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결과로 폭발할 수 있는 복리를 믿고, 투자에 의존하지 말고 자생하는 법을 배워라. 이런 마인드로 최소 10년 정도 한 우물만 파면, 어쩌면 뭔가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위대한 것들은 TTT라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자.(TTT = Things Take Time).

향 후 25년

우리 아파트 지하에는 헬스장이 있는데, 아파트 헬스장 치곤 꽤 괜찮은 나름 full-sized 시설을 갖추고 있다. 나는 주로 아침에 운동하는데, 수년 동안 이 시설을 이용하다 보니, 자주 보이는 주민들이 있고, 이 중 나이가 좀 많은 분도 몇 명 있다.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니지만, 그냥 볼 때마다 인사만 하는데, 이분들은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잡담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내가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옆에 있다 보니 들렸는데, 요새 젊은이들에 대한 욕이었다. 요새 애들은 어딘가 좀 이상하고, 갈수록 세대와 세태가 더 나빠져서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그런 별로 영양가 없는 노인네 잡담이었다. 내가 VC가 아니었다면 나도 이분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요새 젊은 친구들 욕을 했을 텐데, 나는 20대와 만나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VC라는 업에 종사하고 있고, 내 경험에 의하면 나는 오히려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보단 희망이 훨씬 더 크다.

얼마 전에 25살 창업가와 미팅했었는데, 이날 내가 느꼈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겠다. 일단 25살이라는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여자라면 졸업해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것이고,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이제 대학교를 졸업했을 나이다. 나는 26살에 미국 유학을 갔는데, 이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학생이었다. 나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없고, 그냥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편안하게 살았다. 뭔가 내 손으로 직접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안 했다. 아니, 못 했다.

그런데 나랑 한 시간 넘게 이야기했던 이 젊은 창업가는 25살의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분의 인생철학은 어떻고, 왜 사업을 시작했고,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고, 본인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미팅에서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다. 그리고 또 생각했던 게, 그러면 지금 태어나는 사람들이 25년 후에 25살이 되고 이들이 창업하면 과연 어떤 창업가가 나올지였다. 내가 만난 25살 창업가가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과 모바일을 사용했다면, 지금 태어나는 사람들은 AI는 기본이고, 자율주행하는 자동차를 탈 것이고(어쩌면 나는 자동차), 어쩌면 비트코인을 화폐같이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창업하면 도대체 어떤 흥미로운 세상이 펼쳐질까?

이분들이 어떤 창업가가 되든, 확실한 건 나보다 3배는 더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여러 단계 레벨업 된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다. 우리 같이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기대되는 미래다.

마지막으로, 나는 젊은 세대를 욕하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당신들이나 똑바로 하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내가 보기엔 어린 것들은 너무 잘하고 있고, 늙은것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잘살고 있다. 오히려 나는 한국의 어른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하는 일

OpenAI가 레딧의 방대한 사용자 코멘트와 포스팅의 내용을 활용해서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더 고도화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은 이런 움직임이 이미 예견됐던 건데, 인공지능을 훈련하려면 워낙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해서 조만간 무료 데이터가 동이 날 것이라는 건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이 해왔던 이야기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어 모델을 만드는 회사들은 이제 돈을 내고 레딧과 옐프 같이 특정 산업에서 오랫동안 잘 정제된 콘텐츠와 데이터를 축적해서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로부터 돈을 내고 프라이빗한 데이터를 구매해야 할 것이다.

이 파트너십에 대해서 레딧의 대표가 한 이 말이 나는 특히 흥미로웠다. “참 역설적인 게, 이제 인공지능이 만든 인공 콘텐츠가 훨씬 더 많아질 텐데, 이럴수록 사람이 직접 만든 콘텐츠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린(레딧) 거의 20년 동안 진짜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AI가 이젠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창작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이미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조만간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작 분야의 많은 직업을 없앨 것으로 예측하다. 나도 얼마 전에 누군가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 준 카드의 내용은 챗GPT가 만들었는데, 남편분이 감동해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고 기계가 학습을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게 나같이 매일 이 분야에 투자하는 사람에게도 참 신기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이젠 많다고 들었고, 이미 내 주변에 상당히 많은 분들이 문서를 작성할 때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어떤 분들은 기계가 사람보다 월등하다고 하고, 학습만 잘 시키면 ‘무라카미’ 스타일의 소설이나 수필을 짧은 시간 안에 수백 개씩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무라카미 AI가 나올 수 있을지, 그리고 나온다고 해도 지금 당장 가능할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나도 일주일에 두 개씩 꾸준히 뭔가를 쓴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좋은 내용의 글을 쓴다고 칭찬도 하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좋은 콘텐츠를 무료로 작성해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내가 그냥 내 생각을 즉흥적으로 끄적거리는 게 ‘글’로 분류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계속 뭔가를 이렇게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나도 AI를 잘 활용해서 더 다양하고 많은 블로그 게시물을 만들어볼 생각도 한때는 해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이 블로그의 모든 콘텐츠는 내가 오롯이 다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조금 촌스러울 수도 있는데, 나는 아직도 창작의 영역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게 맞다고 굳게 믿고 싶다. AI가 모든 걸 파괴하고 있고, 모든 걸 먹어 치우고 있고, 모든 걸 창작하고 있지만, 감동, 즐거움, 그리고 통찰력을 줄 수 있는 창작물은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샌 더욱더 많이 한다. 나도 그냥 기계를 사용하면 15분 만에 블로그 포스팅 하나를 뚝딱 만들 순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해서 작성한 글을 읽어보면 뭔가 이상하고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남들이 읽었을 땐, 이걸 배기홍이 쓴 건지, 기계가 쓴 건지, 구분을 못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차이를 아주 명확하게 안다. 그리고 이건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10년 뒤에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기계가 맞았는지, 사람이 맞았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