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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뒤로 하고

올해부터 태어나기 시작해서 2039년까지를 베타 세대라고 한다. 출생년도로 인류를 구분하고, 이들은 어떻고, 어떤 특징이 있다고 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MZ 세대보다 이후에 태어난 알파 세대(2010년 ~ 2024년생)와 베타 세대는 나 같은 X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DNA와 뇌 구조를 가진, 그래서 이렇게 출생년도로 한 번 구분해 볼 만한 신인류라고 생각한다.

일단, 베타 세대의 부모는 대부분 Z 세대와 젊은 M 세대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들은 우리의 손자 세대라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 이 중 꽤 많은 분들이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22세기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베타 세대는 엄청난 기술 발전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AI가 삶의 중심에 있을 것이고, 이들이 투자하는 기본 자산은 비트코인이 될 것이다. 세대를 구분할 때 그 세대를 가장 잘 반영하는 기술을 많이 인용해서 우리 같은 X 세대를 삐삐 세대, 핸드폰 세대, 뭐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베타 세대부터는 이런 특정 기술이나 제품으로 이들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워낙 기술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세상을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꿈꾸는 것들이 실현된다면, 베타 세대는 사람이 직접 차를 운전했던 시절이나 비트코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모를 수도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런 시절이 오고 있다는 이미 왔다는 게 약간 신기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한다. 나도 최첨단 기술에 투자하는 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요새 왠지 계속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아마도 이런 큰 세대의 변화라는 매크로 테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도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강제적으로 이제 과거는 뒤로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 더글라스 아담스의 이 말을 항상 떠올린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정상적이고, 세상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15세에서 35사이에 개발된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혁신적이지만, 이걸 공부하고 연마하면 좋은 직업이 있다. 35이후에 개발된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해할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나에겐 웬만한 건 모두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서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선, “옛날엔 이랬었는데” , “나 때는 저렇지 않았는데” , “저게 가능해? 과거에 우리도 시도해 봤는데 안 되던데” 등과 같은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냥 내 기억으론, 내 경험으론, 안 되는 거였지만, 과거는 과거로 두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아니, 이런 생각만 해야 한다.

요즘 엄청나게 빠른 기술의 변화를 보면서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고, 과거에는 이랬다 저랬다라는 생각을 되도록 하지 말고, 미래만 봐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로 나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분야를 요즘 다시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상관없이 이제부터는 비트코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을 모르는 세대가 비트코인과 수많은 디지털 자산에 투자할 것이다. 또한, 미국 SEC 의장도 바뀌었고, 디지털 자산에 반대하던 대부분의 정부 관련 담당자도 갈아치워지면서 미국에서 디지털 자산 관련 현실적인 제도와 규제가 완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즉,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도 빨리 모든 것들이 정상화되어 과거는 뒤로하고, 조금 더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강렬함

대한항공을 자주 타는 사람들이라면, 좌석마다 배치된 기내지 Morning Calm을 보거나, 읽어봤을 것이다. 이 잡지의 이름의 유래는 한국을 영어로 Land of Morning Calm이라고 설명해서인데, 이 설명은 ‘조선’을 영어로 풀어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다가 조금 더 해석을 붙여보자면, 한국은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산과 강이 많아서, 아침에 보면 이 풍경이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Morning Calm이라는 설명이 한국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나는 이제 이 Morning Calm은 한국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명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용하다고 하기에 한국은 이제 너무 역동적이고 강렬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2년 동안 우리는 상당히 많은 외국 투자자를 한국에서 만났고, 미국, 동남아, 일본, 유럽 등의 나라에서도 수많은 외국인과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내가 전에 포스팅했듯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위상이 너무 좋아졌다는 걸 매번 느낄 수 있었다.

이들과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가지각색이지만, 대화 중에 항상 한두 번 튀어나오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 단어가 바로 “intense”와 “intensity”였다. 외국인들이 본 한국은 아주 강렬한 나라인 것 같다.

일단 한국의 관문인 공항에 내려서 숙소로 오는 길에서 경험하는 한국의 교통체증은 정말 강렬하다. 그 교통체증의 한가운데에서 길에 있는 다른 차를 보는데, 좋은 차들 또한 너무 많다. 단위 면적 당 비싼 차들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일 것이다. 우리 외국 투자자 한 분이 서울에 삼일 있었는데, 평생 7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봤던 벤츠 마이바흐 숫자보다 더 많은 마이바흐를 사흘 동안 서울에서 봤다면서 정말 강렬한(=뭔가 미친) 도시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음식에 대한 인상도 비슷하다. 김치나 찌개와 같은 음식은 양념이 세고 자극적이라서 강렬하고, 갈비나 불고기 같은 고기류는 맛 있어서 강렬하다. 특히 깨알 같은 반찬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한국인들과 술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외국인들은 한국의 술 문화를 완전 증오하거나, 완전히 사랑하게 된다. 다양한 술과 이 술을 먹는 다양한 방법, 여기에 매우 강렬한 인상은 받은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다.

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자주 접하는 외국인들도 다양한 의견을 우리와 공유하는데, 한 단어로 이들의 느낌을 요약하면, 한국의 콘텐츠가 매우 강렬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을 봤던 평론가들의 평을 보면, 이들이 강렬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과 일을 해 본 외국인들도 이 “intense”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정말 일을 잘하고, 일머리가 있고, 그리고 (아직까진) 대부분 정말 열심히 일한다는 피드백이 지배적이다. 일을 잘하는데, 일을 열심히 까지 하면, 이건 굉장히 강렬하게 일을 하는 것이다. 작년에 유럽에서 가는 곳마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늦게까지 일해서, 본인들이 페이스 맞춰서 같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자주 들었는데, 역시 이분들도 한국인들은 정말 강렬하게 일한다고 했다. 뭐, 워낙 게으른 유럽 사람들이라서 한국이 너무 열심히 일한다고 했을 수도 있다.

추운 겨울에도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춥다면서 그 차가운 커피를 벌컥벌컥 먹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최근에 들었다.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성형수술을 하고 퉁퉁 부은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시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매우 강렬했고, 그런 사람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걸어 다니는 한국인들에 대한 인상도 참으로 강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쨌든 이런 한국의 강렬함에 대한 에피소드는 끊임없이 많다.

왜 한국의 모든 게 이렇게 강렬할까? 나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본다면, 이 모든 걸 만들고, 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한국인들 자체가 강렬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린 뭘 하나 하면, 정말 끝을 보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고, 한 번 하려고 마음먹은 건 정말 잘 한다.(시작하고 끝을 못 보는 것들도 많긴 하지만).

나는 이런 한국의 강렬함은 계속 우리가 유지하고, 이어 나가야 하는 좋은 습관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나쁘게 이야기하면, 우린 너무 바쁘게 살고 있고, 앞뒤 가리지 않는 냄비근성이고,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는 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DNA를 우리가 계속 잘 다듬고, 좋은 쪽으로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Korea, the Land of Intensity.

나만의 의식

작년 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2주 동안 완독한 ‘리추얼’이라는 책으로 올해의 독서를 시작했고, 50권 목표의 첫 테이프를 이 책으로 끊게 돼서 2025년 독서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 책의 저자인 메이슨 커리는 일상과 창조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은 분이고, 항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일까?” ,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 특별한 습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 “창조적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주도적이고, 더 훈련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기 위해서 그는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로 손꼽히는 소설가, 작곡가, 화가, 안무가, 시인, 철학자, 영화감독, 과학자들의 하루를 정리하는 Daily Routines 라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블로그를 통해서 위대한 사람들의 하루 시간표와 작업 습관을 정리하면서, 이들을 일반인들과 확연하게 구분하는 수면, 작업, 연습, 휴식 패턴을 찾고, 혹시 일상의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창조자들만의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파악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정리한 게 ‘리추얼’ 이라는 책이다.

리추얼은 위대함을 달성하기 위한 습관과 루틴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우리가 잘 아는 예술가나 과학자 중 아주 괴팍한 작업 습관을 가진 분들도 많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어떤 창조자들은 반복되는 패턴보단 순간의 느낌과 영감에 의해서 아주 짧고 굵은 삶을 살다 갔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훨씬 더 많은 창조자들이 순간의 느낌과 영감보단,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반복으로 인해 생긴 습관과 루틴에 따라서 지속성 있는 창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꾸준함에 대해서 읽다 보면, 이들이 위대한 창조자라기 보단 수십 년 동안 매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선수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고, 매일 같은 회사로 출근해서 수십 년 동안 같은 업무를 하는 직장인의 삶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리추얼에서 소개된 위인들의 삼 분의 이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남긴 창조물은 책, 음악, 그림, 영화 등으로 앞으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에 영감을 줄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서 내가 이들과 직접 이야기할 순 없지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이들의 위대함은 타고난 유전자나 번뜩이는 영감을 통해서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매우 지루한 습관, 동작, 그리고 루틴을 거의 평생 기계적으로 무한 반복했고, 이로 인한 내공이 쌓이고 그 내공의 포텐이 터지면서 위대함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항상 나만의 정교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이 책은 나에게도 많은 꿈과 희망을 줬다. 내 이름 석 자를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보단 그냥 내가 현재 하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습관과 루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데, 이 책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습관에 대한 정의를 발견했다.

“습관은 제한된 자원, 예컨대 시간(가장 한정된 자원)은 물론이고 의지력과 자제력, 낙천적인 마음마저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정교하게 조정된 메커니즘이다. 좋은 습관은 정신적 에너지를 몸에 밴 반복 행위에 쏟고, 감상의 폭정이 끼어들 틈을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을 잘하고 싶으면, 인생을 더 단순화해야 하고, 복잡한 인생을 단순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좋은 습관과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보람,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는 당연히 모두 다 좋아하지만, 투자한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직도 처음 투자했을 때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고,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창업 초기와 같은 에너지 레벨로 사업하고 있는 분들을 나는 더욱더 좋아한다.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그동안 큰 성장을 해서 유니콘이 된 회사들보다, 고생하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오히려 성장을 많이 못 한 회사들이 나는 더 반갑고 정겹긴 하다. 왜냐하면, 그 오랜 기간 동안 회사가 큰 성장을 못 했음에도 아직 살아남아 있고, 제이 커브는 아니지만 계속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고, 큰 펀딩 없이 생존 하는 법을 터득한 것 자체가 많은 스타트업이 하지 못하는 큰 업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떻게 보면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갈 곳이 있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팀원들을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오랜 시간 동안 설득하고 동기 부여하면서 모두가 한 방향을 볼 수 있게 이끈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우리 투자사 대표를 오랜만에 만났다. 2016년도에 우리가 첫 투자를 한 회사이고, 그 이후에 몇 번 더 소액의 후속 투자를 했지만, 회사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진 못하고 있고, 대규모 투자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꽤 괜찮은 제품을 만들고 있고, 시장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우리의 8년 된 기투자사를 마치 처음 만나서 검토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회사 설명을 들어보고, 이런저런 질문도 하는 자리를 오랜만에 가져봤다.

회사 슬라이드에 아주 재미있는 사진이 있었다. 2016년도에 우리가 첫 투자 하고, 당시 팀원분들 5명과 내가 선릉역 골목 어느 식당에서 축하 저녁을 먹으면서 찍었던 오래된 사진인데, 그 사진을 보니 기분이 참 좋았고, 짠하기도 했다. 일단 사진 속의 다른 사람보단 내 모습이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멍청하고, 조금 더 순진하고, 아직은 VC가 뭔지 잘 모르는, 그래서 더 용감해 보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이때가 좋았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에 사진 속의 이 회사의 공동창업가들과 초기 멤버 5명의 얼굴을 하나씩 봤다. 사진으로만 봐도 모두 에너지가 넘치고, 조금은 더 앳되고, 이들에게 닥칠 미래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로 가득 찼고, 10년이 넘게 큰 성장 없이 같은 사업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표정이라서 그런지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저 때가 좋았죠”라는 말을 과거의 그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참 놀라웠던 건, 그 사진 속 멤버 5명 중 4명이 아직도 회사에서 현역으로 매일 최선을 다해서 같은 방향을 보고 정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처음 투자했던 8년 전과 똑같이 말이다. 우리가 투자한 진 8년이 지났지만, 이들이 같이 일 한진 10년인데, 10년째 같은 사업을 같은 에너지 레벨로 한결같이 하고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짜릿하기까지 했다. 더 짜릿한 건, 이 사진 속의 이들은 당시 모두 미혼이었는데,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다니는 동안 모두 다 결혼도 했고, 이 중 엄마, 아빠가 된 분들도 있다.

투자한 회사가 유니콘이 되거나, 좋은 엑싯을 해서 우리도 돈을 많이 벌면 기분도 좋고 보람차기도 한데, 그렇지 않아도 투자자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이날이 그런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투자한 이 대단한 분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보람차기도 했지만, 이런 분들에게 투자한 스트롱 또한 자랑스럽고 보람찼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큰 책임감과 사명감, 뭐 이와 비슷한 기분도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는 2025년이 벌써 기대된다.

남한테 인정받는 사람

지난 주말에 영화 ‘머니볼’을 다시 봤다. 탄핵 관련 의견과 시각이 궁금해서 여러 가지 뉴스 채널을 왔다 갔다 하다가 우연히 영화 채널을 지나쳤는데, 마침 이 오래된 클래식을 상영하고 있고,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서,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인생의 모든 게 그렇듯이,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게 이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미 그 원작이 꽤 유명한 책이라서 영화가 만들어질 때부터 많은 관심이 집중됐고, 2011년에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나도 봤는데, 그때도 너무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13년 후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땐, 이전엔 나에게 없었던 인생과 사업의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돼 있었다. 영화의 모든 장면,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이런 개인적인 경험, 지식과 계속 비교하면서 봤는데, 이것도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머니볼을 2011년도에 봤을 때도 명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시청했을 땐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철학, 자세와 태도가 담긴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는 감탄을 하면서 단톡방에서 친구들에게 이 영화에 대한 예찬을 하기도 했다.

특히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 빌리 빈의 남에 대한 생각이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부분의 리더와 조직원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얼마 전에 읽었던 기사는 좋은 리더의 대표적인 인재상이 바로 남한테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한테 인정받는 직원이 좋은 직원이고, 남한테 인정받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는 고정관념이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너무나 강하게 박혀있는데, 빌리 빈의 모든 대사와 행동은 이 고정관념과 반대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서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구단주를 지향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살고, 오클랜드 A’s가 살기 위해서 스스로 믿는 길을 택했고, 남이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계속했다.

나도 요새 이런 생각을 꽤 많이 하고 있다. 둘이 시작했던 스트롱벤처스가 이제 나를 포함해서 8명의 조직으로 성장했고, 이제 나는 좋든 싫든 7명의 동료이자 팀원들의 리더가 됐다. 리더십이라는 말을 우린 너무나 남발하는데, 열 명에게 좋은 리더에 관해서 물어보면, 이 중 아홉은 아마도 남한테 인정받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리더에 대한 강한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솔직히 나는 우리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고민하진 않는다. 우리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결정을 하지도 않는다. 스트롱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게, 그리고 외부 환경이 변하고 모든 것이 바뀌어도 우리가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중요한 존재로 남을 수 있기 위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 고민한다. 이런 결정을 계속하다 보면, 남이 나를 인정할 때도 있고,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남한테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덴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데 관심이 많다. 리더로서는, 내가 리더로서 한 결정들로 인해서 우리 조직이 계속 번창했으면 좋겠다. 이거 하나밖에 없다.

우리도 이건 모두 한 번씩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특히, 한국같이 남에게 인정받아야지만 인간 구실을 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과연, 남한테 인정받는 리더가 좋은 리더인지, 남한테 인정받는 직장 동료가 좋은 동료인지, 남한테 인정받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남한테 인정받는 사람보단, 오히려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아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