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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2 퍼센트’라는 글에서 전 세계 2%의 사람들은 장기적인 혜택을 위해서 단기적인 불편함을 택하고, 이들은 이미 과거에 이렇게 남이 잘 안 가는 길을 갔을 때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이미 경험한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오늘도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올해 9월, 10월, 이 두 달이 나에겐 꽤 길게 느껴졌는데, 이 기간에 개인적으로 내가 크게 성장했던 계기가 몇 개 있어서, 60일이 마치 600일 같았다. 짧은 기간 동안 큰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성장은 주로 오랜 시간 동안 뭔가를 반복하고 연습해야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간이 더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성장을 견인했던 건 불편함이었다. 그동안, 아주 오랫동안 내가 꼭 했어야 하는 대화와 행동이 있었는데, 나는 오랫동안 이 대화를 피했고, 이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냥 불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불편해서 실행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마음속의 불편한 신호를 잘 무시하고, 그래도 실행을 잘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이 몇 가지 일들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받고 불편해서 그동안 계속 미루고 있다가 이 중 몇 가지를 최근에 다 털어버렸다. 하기 싫은 대화를 했고, 도망가고 싶은 문제를 직면했고,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은 행동을 했는데, 역시나 당시엔 상당히 불편했지만, 그 이후엔 오히려 편해졌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불편함에 익숙해짐으로써 나에겐 엄청나게 큰 개인적인 성장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젠 오히려 일부러 불편한 일들을 찾아서 처리하면서,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고 있다.

성장은 편안함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선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거나 결국엔 도태될 수밖에 없고, 실은 누구나 다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을 통해 성장하는 것보다 편안함을 통해 정체되어 있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냥 불편함을 외면하고 편안함을 택한다.

새로운 걸 배우고, 더 성장하고 싶다면 불편함과 익숙해져야 한다. 그 불편함의 수준이 높을수록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실은 이런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건 매번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미루는 걸 지금 당장 멈추고, 그 불편한 일을 하는 걸 권장한다. 결과는 내가 장담할 순 없지만, 본인 스스로는 이를 통해서 한 단계 성장할 것이고,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것이 반복과 연습을 통하면 개선할 수 있듯이 이 불편함도 연습하면 편해질 것이다.

성장은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인생이 너무 편하다면,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는 의미다.

함께 목소리 내기

스트롱의 mission statement는 “Together, We are All Strong”이다. 아주 간단한 문장이지만, 이 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고, 표면적인 의미는 단순하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꽤 깊고 powerful 하다. 우리가 봤을 때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만들고, 이끌고, 지탱하는 가장 큰 3명의 이해관계자는 LP, GP, 그리고 창업가이다. LP는 우리 같은 VC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돈 먹이사슬의 가장 상단에 있는 우리의 투자자이다. GP는 우리 같은 VC이고, 우리의 돈을 받는 건 창업가이다. 우리는 돈의 먹이사슬의 중간에 있고, 우리 위의 LP 들의 돈을 받아서 이 돈을 먹이사슬의 가장 하단에 있는 창업가들에게 투자한다.

스트롱의 “Together, We are All Strong”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All”인데, 우리가 하는 모든 결정의 결과가 그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이 생태계를 구성하는 LP, GP, 창업가 모두에게 바람직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우리의 미션을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LP에게만 유리한 결과도 아니고, GP에게만 유리한 결과도 아니고, 창업가에게만 유리한 결과도 아닌, 이 세 명 모두에게 공평하고 유리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우린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 담긴 스트롱의 선언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이 세 명의 이해관계자 중 가장 중요한 한 주체만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지체하지 않고 창업가를 선택할 것이다. 창업가는 다른 두 이해관계자인 LP와 GP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 생태계의 모든 가치는 창업가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 같은 GP는 창업가들이 만드는 가치를 LP 둘에게 전달해 주는 단순한 도관 역할을 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회사와 고객의 관계에 따라 생각해 보면, 우리 같은 VC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창업가라는 뜻이다. 고객이 없으면 회사가 존재할 필요도 없고, 존재할 수가 없는데, VC들도 창업가들이 없으면 존재할 필요가 없고,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요즘 시장에는 본인들의 고객이 누구인지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VC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GP가 최고, 또는 GP와 LP가 최고라는 입장이라서, 본인들은 항상 창업가의 위에서 군림하면서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다는 철저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은 철저하게 개소리/개믿음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생태계에서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주체는 생태계의 모든 가치를 만드는 창업가들이고, 이들이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이자, 가장 철저하게 존경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분들이다. 이런 생각에 반대하면서 창업가들에게 갑질하고 이들을 온갖 이상한 방식으로 괴롭히는 투자자를 우리는 ‘빌런 VC’라고 한다. 실은, 점점 이런 VC들이 많아지는 것 같고, 이들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걸 직간접적으로 더 자주 목격하면서 점점 더 걱정되고 있기도 하다.

마침, 얼마 전에 우리 조지윤 이사님이 이런 빌런 VC들을 구분하고, 이들에 대처하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페이스북에 올려주셨는데, 이 포스팅이 상당히 많이 공유되고 회자된 거로 알고 있다. 그만큼 요새 이상한 VC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나는 해석한다.

솔직히, 싫든 좋든 이 생태계에 같이 몸담고 있고, 같이 좋은 창업가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심지어 우리랑 같은 회사에 공동 투자한 VC들도 있어서, 이런 동료빌런 VC들에 대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그래도 조지윤 이사님은 역시 젠틀하시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면, 아마도 실명을 거론했을 것 같다. 그래서 안 쓴다.) 하지만, 이제 막 싹이 트고 있는 한국의 벤처 생태계를 위해선 이런 VC들은 사라져야 하고, 이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 참지 말고, 일어서서 함께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Stand up and speak up. 이렇게 해야지 변화를 같이 만들 수 있다. 모두 같이 이 생태계 깨끗하게 대청소 한 번 합시다.

반복의 기계

올해 나는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팟캐스트를 꽤 많이 들었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엘리트 운동선수와 창업가 간엔 공통점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공통점은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극강의 바퀴벌레력’이다. 그중에서도 생존력과 회복력이 바퀴벌레, 창업가, 그리고 엘리트 운동선수가 태어날 때부터 보유하고 있는 천성, 또는 성장하면서 남들보다 더 잘 발달시킨 후천적 습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 살아남는 능력과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능력이 강하다.

한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이 부분이 계속 내 뇌리를 맴돌면서 기억에 강력하게 남았다.

“평범한 운동선수는 그냥 보통의 선수지만, 탁월한 운동선수들은 ‘반복의 기계’이다.(Ordinary athletes are just athletes, but extraordinary athletes are ‘machines of iteration’”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탁월한 운동선수들은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의미다.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서 생각해 보면 카를로스 알카라스 같은 탁월한 테니스 선수는 포핸드 하나만 2만 시간 이상 반복 연습한다. 손흥민 선수는 왼발 감아차기를 아마도 수천 번 반복 연습할 것이다. 스테판 커리는 3점 슛을 수만 번 반복 연습할 것이다. 이 선수들은 그 동작이 신체 일부가 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반복의 기계’가 되고, 이런 과정에서 평범한 선수에서 탁월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반복의 기계(machines of iteration)’라는 말이 나에게 정말 인상 깊게 다가왔고, 내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남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요새 아주 많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아주 많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평범한(ordinary) VC가 어떻게 하면 탁월한(extraordinary) VC가 될 수 있을지 나는 요새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어렴풋이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건 알겠지만, 여기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반복의 기계’라는 표현이 내 생각을 매우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해답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평범한 VC는 어떻게 하면 반복의 기계가 되면서 탁월한 VC가 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VC보다 이메일을 더 많이 쓰고, 더 많은 창업가를 만나고, 더 많이 일하면 된다. 딱 이 세 가지만 하면 되는데, 이 세 가지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실은,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건 이 세 가지를 10년 동안 매일 반복해서 내 몸의 일부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즉, 반복의 기계가 돼야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들보다 하루에 이메일을 하나만 더 쓰면, 10년이면 남보다 3,650개의 이메일을 더 쓸 수 있다.
남들보다 하루에 미팅을 하나만 더 하면, 10년이면 남보다 3,650명의 창업가를 더 만날 수 있다.
남들보다 하루에 한 시간만 더 일하면, 10년이면 남보다 3,650시간을 더 일 할 수 있다.

위의 수치는 실로 엄청난 숫자이고, 이렇게 하면 반복의 기계가 될 수 있고, 탁월한 VC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훈련과 반복을 통해서 탁월한 VC가 될 수 있다면, 다른 평범한 VC는 절대로 우릴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스트롱을 통해서 이 여정을 시작했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겠지만, 엘리트 운동선수들같이 반복의 기계가 되는 그 순간을 매일 꿈꾼다.

사실 이건 운동선수나 VC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인생의 원칙이다.

습관을 형성하는 기계

얼마 전에 한 팟캐스트에서 습관에 대해 연구하는 작가의 인터뷰를 들었다. 이분이 최근에 출시한 책은 습관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이 책을 출간하면서 가장 많이 참고했던 게 군대이고, 가장 많이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군인이라고 한다. 특히 작가가 했던 말 중 내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았던 말은 “군대는 습관을 인위적으로 형성하는 거대한 기계”였다. 이 말을 하면서 예로 들었던 건,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18살짜리 애도 수색하다가 폭탄이 발견되면 완전히 기계같이 행동한다는 내용이었다.

위의 예처럼 폭탄이 발견되면 기계같이 행동하는 군인들이 있지만, 또 그렇게 하지 않는 군인도 있는데, 어쨌든 전반적으로 군대 자체가 모두의 습관을 형성하는 거대한 기계의 역할을 하므로, 입대하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습관들이 다른 업종 사람들보다 더 잘 형성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군대만큼 습관을 형성해 주는 거대한 기계는 바로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모든 창업가 중 사업을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는 분들은 모두 다 습관의 동물들이다. 실은 나도 스트롱벤처스를 만들었으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창업가라고 할 수 있는데, 나에게도 스트롱벤처스는 지난 13년 동안 습관을 – 좋은 습관도 있고 좋지 않은 습관도 있지만, 대부분 너무 좋은 습관 – 형성해 준 작은 기계와도 같다. 아마도 투자자로서의 습관, 그리고 실제로 사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로서의 습관은 조금 다르겠지만, 내가 창업가들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이들이 스타트업을 하기 때문에 형성된 가장 두드러진 습관은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인지적 습관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주위에서 잔소리와 훈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이 모든 것을 무시하면서, 실제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조언과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잡음을 구분하고,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에만 우선순위를 매기는 습관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창업가들이 가장 잘 한다.

스타트업이 창업가들에게 기계적으로 형성시켜 주는 또 다른 습관은 행동하고, 이를 계속 반복하는 행동이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founders are machines of iteration”인데, 한정된 자원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론보단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 테스팅하고,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오래 끙끙 고민하기보단 그냥 바로 실행하는 게 창업가들이다. 아주 훌륭한 습관이다.

그리고 또 다른 습관은 위기에서 빠져나가서 살 수 있는 기회와 패턴을 남들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것도 스타트업이 창업가들에게 단련시키는 습관 중 하나인 것 같다. 위기 앞에서 남들은 감정적으로 휩쓸리면서, 가장 덜 고통스럽게 포기하는 방법을 찾지만, 창업가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데, 이건 스타트업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형성되기 어려운 습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좋아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무리 나빠도 별로 낙담하지 않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습관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경험 많은 창업가들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실은, 나도 비슷한 성향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좋을 땐 기뻐하고, 너무 화가 날 땐 슬퍼하는 감정에 빠진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말 노련한 창업가들은 “이기면 다음 시합을 준비하고, 져도 다음 시합을 준비한다.”라는 덤덤한 마인드로 사업을 하고 인생을 사는데, 이것 또한 스타트업이라는 습관을 형성해 주는 거대한 기계가 아니면 생길 수 없는 좋은 습관인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습관들은 내가 지난 13년 동안 창업가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항상 감탄하면서 동시에 나도 내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는 그런 좋은 장점들인데, 어떻게 보면 이런 습관은 내가 항상 강조하는 창업가의 바퀴벌레와 같은 특성을 기반으로 형성되기도 하는 것 같다. 원래 바퀴벌레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창업하는 건지, 아니면 창업하게 되면 스타트업이라는 기계가 바퀴벌레의 습관을 형성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아마 둘 다이지 않을까 싶다.

상수와 변수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대부분 혁신과 변화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아는 주변의 많은 스타트업이 무에서 유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현상 유지가 잘 되던 현재 상황을 완전히 엎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다. 이들은 미래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있다.

우리 같은 VC는 이런 스타트업을 계속 찾고 있다. 창업가를 만났는데, 감동이 깊었고, 이들이 그리는 혁신에 동의해서 투자하는 때도 있지만, 이런 bottom up 전략과 반대로 앞으로 10년 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금 사는 세상에 비해 뭐가 달라질지 예측하고, 이 분야에서 재미있는 걸 하고 있는 창업가를 찾아서 투자하는 top down 전략을 추구하는 때도 있다. 특히 요샌 많은 VC들이 AI가 앞으로 바꿀 세상을 상상하고 예측하면서, 이 예측과 같은 선상에서 사업하는 스타트업을 찾아서 투자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중 어떤 것들이 크게 바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고,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창업가들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AI가 메인스트림이 됐던 시점부터, 약간 다른 관점에서 시장을 보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요새 나는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지금과 똑같이 거의 안 바뀌는 제품, 서비스, 시장은 어떤 게 있을까?”이다.

실은 이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에게 힌트를 얻은 질문인데, 지금 내 주위의 모든 VC들이 바라보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을 볼 수 있는 역발상적인 영감을 주는 질문이다. 역발상적이긴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변화만을 보고, 변화만을 상상하고, 변화 만에 투자하고 있어서, 쉽지 않은 고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변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곳에 우리만 투자해서 우리만 맞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짜릿함과 벌 수 있는 수익은 훨씬 높다. 내가 봤을 땐.

어떤 것들이 앞으로도 안 변할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기계나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대체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들이 이 분야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앞으로 변하지 않을 분야의 중심엔 결국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변화, 그리고 변화로 인한 변수에 너무 익숙한 직업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변화와 혁신을 외치기 때문에 잘 안 바뀌는 상수에 관한 생각을 우린 너무 안 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사업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아이디어, 컨셉, 시장, 제품을 기반으로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나 변수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면, 출시 시점에 그 시장이 이미 없어졌을 수도 있다. 우린 이런 걸 유행이라고 하는데, 유행을 좇다 아무것도 못 만드는 창업가들을 너무 많이 봤고, 이들을 좇다 돈을 다 날린 투자자들도 너무 많이 봤다.

어차피 사업과 투자엔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변수만 보지 말고 상수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