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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장 최인철 교수의 책 ‘굿 라이프’를 얼마 전에 읽었다.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인지에 관한 내용을 본인의 연구를 기반으로 쓴 책인데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서 나를 위한 기록의 차원에서 몇 자 적어본다.

‘행복’만큼 우리가 좋아하지만, 동시에 또 경계하는 의미를 갖는 단어가 없는데 – 예: 너무 행복하면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시각 – 저자는 행복한 삶을 ‘좋은 삶’이라고 정의하고 인생의 목표는 굿 라이프를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모두 다 살고 싶어 하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굿 라이프는 단기적인 쾌락으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반대로 장기적인 의미로만 만들어지지도 않고, 쾌락과 의미 두 가지가 균형 있게 추구될 때 비로소 보이고 가능한 삶이라는 내용이 내가 이해한 이 책의 핵심 주제이다.

책에서 가장 맘에 들었고, 내가 실제로 의도적으로 연습하는 내용 세가지를 그대로 인용하고 소개해 보면,

1/ 굿 라이프는 남의 시선과 기대에 연연하지 않고 오롯이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삶의 자세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만족스럽고, 그 만족의 상태가 행복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남과 다르게 살고 싶거나, 내가 관종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냥 내 인생 내가 살고 싶은데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이게 쉽진 않다. 그래도 나는 나름 행복한 걸 보면, 대충 이렇게 살고 있나 보다.

2/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일상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슨 말이냐면,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하고, 누구를 만나든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행복한 사람들은 마음가짐보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구축한다.
이런 각도로 생각해 보진 못했는데 많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긍정적이지 않은 것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가짐이 굿 라이프로 이어진다기보단, 행복한 사람들은 일단 부정적인 시각과 생각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과 환경을 스스로 만든다. 내가 요새 의도적으로 연습하는 부분이다.

3/ 작가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라면서 불필요한 부사의 남발에 대해 경고한다. 작가가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없을 때 불필요한 수식어를 남발하면서, 부사를 내세워 자기주장을 정당화한다는 관찰에서 나온 명언이다.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굿 라이프에는 불필요한 부사가 주렁주렁 달려있지 않다. 글에서 부사를 한번 남용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부사의 수가 늘어나듯이, 인생의 부사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그 수가 늘어난다. 행복한 삶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우리 모두의 굿 라이프를 위해.

하드웨어는 항상 여기에 있었다

꽤 오랫동안 같은 말을 주변에서 계속 들어서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최소 20년 전부터 삼성, LG, 현대 같은 한국 기업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유는 이 회사들은 하드웨어만 할 줄 알지, 소프트웨어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누가 이런 관찰을 처음 했는지, 누가 이런 의견을 처음 제시했는지, 그리고 누가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처음 했는진 모르겠지만, 한국 회사는 제조업이라서 하드웨어만 잘하지, 소프트웨어는 잘 못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래가 없다는 의견이 어느 순간부터 기정사실이 됐다. 그리고 2011년 8월 a16z의 마크앤드리슨이 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운다.’라는 글이 유행처럼 번지자,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는데, 아직 한국은 하드웨어만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못 하니까 미래가 없다는 주장이 다시 급부상했고, 하드웨어 위기론이 더욱더 강조됐던 시기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이런 하드웨어 위기론은 최근까지 계속 한국과 한국 기업을 따라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소위 말하는 모든 전문가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했고, 기업인, 투자자, 정치인, 한국인, 외국인, 모두 빨리 한국은 탈 하드웨어를 하고 소프트웨어 개발과 연구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AI가 대세가 되면서 이 서사가 갑자기 바뀌었다. AI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반도체와 메모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한국의 수십 년 동안 무시당하고 괄시받던 하드웨어 기술이 중요해졌고, 오랜 세월 동안 하드웨어 제조 기술을 완벽하게 마스터 한 한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AI training과 inference를 위한 GPU를 위한 메모리, 그리고 에이전트를 24시간 돌리기 위한 CPU와 메모리, 이 제품들을 세상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한국이고, 이런 이유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총 $1T의 자랑스러운 회사가 됐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품을 제공하는 수많은 한국 중소기업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상장회사라면 시총이 급상승하면서 한국의 주식시장을 전반적으로 아주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젠 그 누구도 한국이 하드웨어만 할 줄 알아서 미래가 없다는 말을 안 한다. 오히려 한국은 하드웨어를 잘해서 장래가 밝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있다. 오래전에 하드웨어 비관론을 펼치던 바로 그 전문가, 기업인, 투자자, 정치인, 한국인, 외국인들이 이제 몇 년 전 본인들이 했던 말과 완전히 반대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닌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는데,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과 한국의 기업은 하드웨어에만 집중한 건 아니다. 본인들의 약점인 소프트웨어도 엄청 열심히 파고들어서 공부하고 연구개발 했다. 그 결과는, 하드웨어로 시작했지만 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까지 잘하는, 둘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이 한국에 정말 많이 생겼다. 그리고 이들이 계속 좋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고, 이 인재들이 미래에 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회사를 창업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외국인 투자자가 최근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Hardware is back(하드웨어가 돌아왔다)”

나는 이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It never left. It was always here in Korea(돌아온 게 아니다. 항상 여기에 있었다).”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 유행만 좇지 말고, 모든 건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요새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지금은 남들이 죽었다고 하는 기술, 시장, 제품 중 분명히 5년 후에 다시 커질 가능성이 많은 게 있을 것이고, 분명히 우리가 눈과 귀를 크게 뜨고, 잘 보고 들어보면 모두 우리 주위에 있을 것이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런 분야의 좋은 창업가에게 지금 투자하는 게 최고의 전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새벽이다.

바쁜 건 항상 좋은 것

“바빠서”라는 말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변명이지만, 아마도 학교나 직장에서 가장 자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일인데 바빠서 못 한다면 이건 그 사람에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고, 아마도 바빠서 못 한다고 하는 분은 평생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나는 항상 바쁨에 대한 이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요샌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 정도로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어차피 나는 워라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새벽이든 밤이든, 주말이든 일을 하고, 일이 많으면 그냥 시간을 더 투입하고 더 오래 일하면 된다는 원칙이 있어서 웬만하면 해야 하는 일은 하는데, 최근에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일을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바쁘다고 느끼면 정말 바쁜 거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두 개의 상반되는 감정이 내 속에서 올라온다. 하나는 우리가 자주 말하는 “바쁜 게 좋은 거야.”이고 다른 생각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까.”이다. 안 바쁜 것보단 바쁜 게 좋은 것이라는 믿음은 내 안에 아주 깊게 자리 잡은 신념이라서 이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바쁨이 14년째 매일 반복되면 가끔 지치긴 한다. 우리 회사도 머릿수가 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실력도 늘었는데, 왜 내 업무량은 오히려 계속 증가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가끔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트롱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곤 한다. 한국의 모든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엄청난 야망을 갖고 시작했지만, 현실은 존과 내가 기대했던 거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고, 우리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LA 코리아타운의 그 작은 사무실에서 우린 매일 출근해서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모니터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폰만 멀뚱멀뚱 보다가 퇴근했다. 그땐 정말 할 일도 없었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고, 우리에게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우릴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 첫 몇 달 동안 점심도 매일 둘이 먹으면서 누가 연락 좀 해줬으면, 점심이나 저녁 미팅이라도 할 수 있으면,,,뭐 이런 간절한 하소연과 푸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무료했고, 답답했고, 매일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을 몇 달 동안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리고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다시는 바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떠오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죽어도 배고프고 가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실은 마찬가지다. 일은 하고 싶은데 할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했던 무료했던 그 시절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아무리 바빠도. 그래서 이젠 이렇게 계속 바쁘게만 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땐 항상 일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할 일이 없어서 너무 괴로웠던 그때를 생각한다. 그러면 이 바쁨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어쨌든 결론은 바쁜 건 무조건 좋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바쁘다고 불평하지 말기.

기다림의 미학(또는 지루함)

꼰대 같은 내용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이전 세대 사람들이 현재 세대 사람들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요즘 사람들은…” 하면서 불만족을 표현하는 건 인류가 탄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행위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 세대랑 비교했을 때 요즘 세대가 부족한 걸 하나만 꼽아 보라고 하면 나는 “인내심”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인내심을 기다림의 미학이라 하고, 어떤 분들은 기다림의 지루함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인내심은 기다림의 미학, 또는 기다림의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언제 이 말을 대학생에게 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나를 외계인처럼 봤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 앞에 “바로”가 붙고, 오늘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배송되는 “로켓” 서비스가 기본이고, 글자 하나씩 읽으면 느려서 책도 잘 안 보고, 영상도 몇 배속해서 보는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의(=instant gratification) 시대에는 인내심이라는 말 자체가 촌스럽고 고인물들의 전유물이 된 것 같아서 많이 아쉽긴 하다.

반면에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하는 벤처 투자, 그리고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분들은 대부분 인내심의 미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보단 장기적인 만족과 보상을 위해 – “장기적”이 5년이 될 수도 있고 30년이 될 수도 있지만 – 불안, 초조, 공황을 참고 오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으면서 본인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 이런 분들과 항상 어울리다 보면, 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게 되고, 인내심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복리의 위력을 배우게 된다.

조만간 하와이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만약에 주말을 끼고 가게 되면 오랜만에 서핑해 볼까 해서, 호놀룰루에서 좋은 서핑 장소, 파도, 서퍼 등과 관련된 기사와 영상을 보면서 여기저기를 웹서핑하면서 생각났던 게 바로 서퍼들이야말로 인내심의 끝판왕이라는 점이다.

서핑의 본질은 기다림이다. 큰 파도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구릿빛 서퍼만큼 멋진 사람들이 없는데, 이 멋짐을 만드는 건 기다림의 미학이다. 어느 정도 잔챙이 파도와 씨름해서 서핑의 기본을 잘 다지면, 누구나 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좋은 파도’를 타고 싶어 한다. 그런데 파도를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어서,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보드 위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어떨 때는 몇시간 동안 여러 번의 좋은 파도를 신나게 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기다리다 허탕 치고 귀가하는 서퍼들도 많다. 내가 LA에 살 때 서핑을 배웠던 강사는 3일 동안 매일 5시간 기다렸지만, 맘에 드는 파도를 못 찾아서 그냥 집에 왔다가, 4일째 엄청난 파도를 만나서 인생 최고의 서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분은 강습 시간 내내 서핑 기술보단 기다림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해 줬는데, 한참 후에서야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해했다.

스타트업도 이렇게 보면 서핑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당장 성공을 맛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지만, 정말 큰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시장을 잘 파악한 후 나만의 믿음과 시각으로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고, 남들이 잘 안 가는 길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먼저 자리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마치, 서퍼들이 남들보다 더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 지금은 잔잔하지만, 앞으로 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올 만한 곳에 가서 자리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보드 위에서 주변 상황과 여러 지표에 주목하면서, 파도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 바람과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 다시 자리를 예측해서 옮겨야 한다. 그리도 또 기다려야 한다.

실은,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사업하면서 기다려도, 대부분의 창업가는 파도 한 번 못 타고 그냥 집에 가는 경우가 훨씬 많을 텐데,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그다음 날 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운과 실력 사이 어느 지점에서 큰 파도를 만난다면, 그리고 인내심의 미학이 철저한 준비로 이어졌다면, 이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고, 그동안 쌓인 인내심과 기다림이 복리 폭발해서(=compounding explosion) 그 어떤 창업가들보다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스타트업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나마 갖고 있는 짧은 경험도 성공한 경험은 아니다. 서핑으로 따지면 그냥 잔챙이 파도와 씨름만 하다가 집으로 간 경험밖에 없지만, 좋은 파도를 타는 것만큼 신나고 짜릿한 느낌이 없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 큰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 하고, 항상 연습해야 한다. 실은,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아무도 없는 뜨거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는 건 매우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고, 불안하고, 짜증 나고, 초조한 경험이다. 이럴 때일수록 인내심의 미학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하다.

물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고 해서 좋은 파도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도 대부분 못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없다면 성공할 수 있는 그 작은 확률조차 없어서 인내심은 모든 창업가의 기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또 막상 생각해 보면, 인내심은 요즘 세대뿐만 아니라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대부분 사람에게 부족한 자질인 것 같다. 우리 윗세대, 그 윗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를 봐도 인내심의 중요성을 아는 분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보고 화난 요즘 세대분들이 있다면 사과한다.

계속 “왜?”를 질문해라

몇 달 전에 꽤 공감이 가는 내용을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최근에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 팟캐스트를 들어서 기록을 위해 블로그에 적어본다. “The Three Whys 원칙”이라는 질문에 관한 내용인데, 모든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최소 세 번 반복해서 던짐으로써, 일차원적이고 표면적인 답변을 넘어 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론에 대한 글과 인터뷰였다.

이 원칙은 단순히 표면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들어 진짜 문제의 파악 및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가 들었던 인터뷰에서는 타이타닉호에 대한 예시가 언급됐는데, 여기에 세 번의 “왜?”를 질문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타이타닉호는 왜 침몰했나요?
>> 빙산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2/ 빙산과 왜 충돌했나요?
>> 선장이 빙산을 못 피했기 때문입니다.
3/ 선장은 왜 빙산을 못 피했나요?
>> 과속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위의 타이타닉호 침몰에 대해 첫 번째 질문에서 멈춘다면,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해서 침몰했기 때문에 앞으로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기 위해서는 빙산이 없는 곳으로만 다니거나 빙산을 부숴서 작은 얼음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레이저 장비나 무기를 모든 배에 설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세 번 해서 알아낸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진짜 원인은 이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 바로 선장이 빙산을 발견했지만, 배의 너무 빠른 속도로 인해 방향을 못 틀어서 빙산에 박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다. 그리고 세 번의 질문으로 얻은,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을 수 있는 훨씬 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과속 금지와 정속 주행이다.

이후에 나도 많은 현상에 대해서 한 번만 “왜?”라고 질문하지 않고, “왜?” , “왜?” , “왜?” 이렇게 세 번씩 질문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전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방식에 꽤 큰 도움이 되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왜?”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고,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잘 찾는다. 그런데 석학들만큼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분들이 바로 창업가들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많은 필수 제품과 앱들이 창업가의 불편함으로부터 시작됐는데, 이들은 일반인처럼 불편함을 그냥 묵인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했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으로 창업을 선택했다.

“왜?”를 계속 질문하는 습관은 결과적으로 사고를 더 깊게 만들고,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을 명확하게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원인을 계속 묻다 보면, 실제 해야 하는 행동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위의 타이나틱호의 예를 다시 사용해 보면, 빙산을 분해하는 기기를 만드는 건 어렵지만, 과속하지 않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계속 질문하고 “왜?”라고 묻는 걸 습관화해서 우리 모두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하다 보면 더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