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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 우리 시대 최고의 슛돌이 Leo Messi

cb4efbb5-b716-44cf-8725-218e71d54e31.img2004년 10월 1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Olympic 축구 경기장; 바르셀로나와 에스뺘뇰 축구 경기 종료 8분 전이었다. 바르셀로나가 1-0으로 이긴거와 다름없었으며, 경기 8분을 남겨두고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선수 교체를 신청하자 35,000명의 관중은 이제 서서히 집으로 향할 준비를 하려고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8분을 남겨놓고 경기장에 새로 투입된 선수는 17살의 완전한 new face였다. 등넘버 30번 셔츠는 바지 밖으로 빼있었고, 그는 경기장에 투입되자마자 손가락으로 뒷머리를 귀뒤로 넘겼다. 마치 데뷔전을 깨끗한 마음으로 임하는거와 같이. 이 새로운 선수는 키가 작았다. 정말로 작았다. 169cm 밖에 되지 않았다.
메시는 이렇게 스페인 Primera Liga에 등장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군시렁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긴 경기지만 이거 너무한거 아냐? 재는 누구지? 메시?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데…아직 애기잖아?” 하면서 그들은 해바라기씨를 경기장 바닥으로 퇵퇵 뱉으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메시가 달리기 시작했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관중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멈췄다. 불평하던 시끄러운 바르샤 팬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벌려진 입들을 다물지 못했다. 등번호 30번의 17살 소년은 빈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에스뺘뇰 팀의 수비수 2명을 눈깜짝할 사이에 드리블해서 제꼈다. 마치 6번째 발가락에 축구공이 접착재로 붙어있는거와 같이.
축구 열혈팬들은 살면서 한번 정도는 이런 순간을 경험한다. 갑자기 나타난 혜성같은 선수들이 경기장을 가로지르면서 슛을 하는 순간을 남들보다 먼저 목격했을때의 감동은 상당히 특별하다. 박지성, 쥬네딘 지단, 데이빗 베컴, 웨인 루니…모두 다 이렇게 갑자기 등장한 축구 슈퍼스타들이었다. 하지만, 메시를 이날 8분동안 처음 본 축구팬들은 기존에 경험했던 감동과는 뭔가 다른 그런 벅찬 감정을 느꼈다. 우리는 이런 선수들을 ‘축구 천재’라고  부른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를 보면 항상 떠오르는 다른 선수가 있다. 바로 같은 국적의 키작은 축구천재 Diego Maradona이다. 메시가 마라도나보다 더 위대한 선수인가? 축구 전문가들의 의견은 항상 갈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시가 한 수 위라고 주장한다. 마라도나는 개인 위주의 플레이어이자, 비과학적이며 정재되지 않은 길거리 축구를 구사한다. 메시 또한 예측불허의 전략을 사용하는 길거리 축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과학적인 팀플레이와 정재된 축구를 구사 한다는 면에서 마라도나보다 낫다는 평이다.

메시는 아르헨티나 출생이다. 그는 어릴적부터 축구에 대해서는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지만, 한가지 결정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키가 너무 작았다. 13살때 그의 키는 142cm였고, 의사는 성장 호르몬을 정기적으로 투여하지 않으면 그의 키는 150cm 이상 되기 힘들거라고 했다. 한달에 700달러나 하는 성장 호르몬을 철강소에서 일하는 그의 아버지의 월급으로 부담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고 메시의 아버지는 약값을 부담해 줄 수 있는 축구 구단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조국 아르헨티나의 그 어떤 구단도 메시의 약값을 부담해줄 의향을 보이지 않았지만, 세계 최고의 축구팀 바르셀로나는 이 어린 선수의 능력을 바로 알아봤고 메시가 13살때 바르셀로나의 청소년 캠프에 테스팅을 받으러 왔을때 그 자리에서 즉시 계약을 했다. 그 당시 바로셀로나의 청소년 팀 코치 Rodolf Borrell과 프로그램 담당이사 Carles Rexach는 메시가 청소년 캠프에 처음 왔을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시는 어릴때부터 축구의 신이었습니다. 그때의 스타일이 지금 프로축구의 스타일과 똑같았어요. 절대로 주눅들지 않고, 항상 골대로만 돌진하는 그런 선수였죠.”

월드컵이 끝난 후 메시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그가 보여준 성의없는 태도와 특정 한국 선수에 대해서 전혀 관심없다는 발언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했던게 기억이 나는데 그건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라 원래 메시 선수의 성격이라고 한다. 메시가 유일하게 관심갖는 건 축구를 하는거고, 그 외 세상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는 다른 축구선수들한테도 전혀 관심이 없어서 팀 동료이외의 다른 축구선수들의 이름은 거의 모른다고 한다. 더욱 더 재미있는건 그는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가끔 경기 종료 후 바로 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서 “잘 기억이 안나는데요.”라고 하는데 실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축구경기를 TV로 거의 시청하지 않는데, 보더라도 금방 싫증을 낸다고 한다.
대부분의 축구선수들은 중요한 경기 전에는 상대방 팀과 선수들의 플레이를 비디오를 통해서 면밀하게 분석하고 통계적으로 연구하는데 메시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공을 차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공을 잡으면 그냥 골대로 뛰어갑니다. 잡다한 생각은 안하고 그냥 본능적으로 드리블하죠.”라고 그는 스스로에 대해서 말을 한다.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거기서 나오는 농구천재 ‘윤대협’ 선수와 약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선수인거 같다.

바르셀로나의 과학적이고 정성스러운 선수양성 프로그램을 통해서 메시는 자신의 기량과 신장을 살릴 수 있었고, 어제 Manchester United와 치룬 UEFA 결승전에서 그의 천재성은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2009년/2010년 올해의 축구선수, 2006년/2009년/2010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 그리고 이번 시즌 53경기에서 52개의 골을 넣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이지만서도 그의 경기는 매번 볼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고, 그의 경기는 보는이로 하여금 감동과 기쁨을 선사해준다.

앞으로 이 젊은 축구 천재의 활약이 더욱 더 기대가 된다.

<참고 = Financial Times “Simply the best” by Ronald Reng>

<이미지 출처 = http://www.ft.com/intl/cms/s/0/93c83c74-d386-11e2-95d4-00144feab7de.html#axzz3SLB3qxJB>

진정한 벤처 정신이란…

우리는 – 특히 스타트업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한다. “벤처 정신으로 한번 해보는거야…”

‘벤처정신’이라는건 정확히 어떤 정신을 말하는 걸까? 나도 벤처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벤처 정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어떨 때는 남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라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냥 뭔가 힘든 상황에서 굳은 각오를 하고 남들의 시선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하고자 하는 걸 추구하는 뭐 그런 정신이 벤처 정신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이런 벤처 정신을 벤처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악조건을 무릅쓰고 실천하고 있는 어떤 일본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분에 대한 글을 읽은 후로 나는 어렵거나 힘든 일에 직면했을 때 항상 이 분의 얼굴을 떠올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신을 중무장하고 전쟁터로 뛰어들어간다. 여기 그 놀랍고도 대단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에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미야기현의 항구도시 이시노마키 사무실에서 한주의 업무를 마감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의 활약을 고려해 짐작해보면 분명히 무슨 특공 대원이나 야쿠자 행동대원임이 분명하다.

그가 퇴근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오려고 하는 찰나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었다. 하지만, 그냥 지진이 아니었다 – 일본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지진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초대형 9.0 지진이었다. 땅은 흔들리고, 빌딩들은 엿가락처럼 휘다가 무너지고, 간판은 종이처럼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2년같이 길게 느껴졌던 2분 동안 일본 열도는 마치 놀이동산의 디스코 팡팡과 같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시노마키시에 덮친 불행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아니, 이제 단지 시작일뿐이었다. 강진과 함께 발생한 높이 10미터 이상의 쓰나미는 3월 11일 아침까지만 해도 162,000명이 복작거리던 이 도시를 순식간에 수심 3미터짜리 작은 호수로 만들어버렸다.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서둘러서 집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그의 집을 비롯한 도시의 모든 집은 물에 잠기어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를 더욱더 미치게 하였던 사실은 20년 동안 같이 살았던 그의 부인이 물밑 어디 선가에 갇혀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부인은 미쳐 쓰나미를 피하지 못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안 되었다. 수심은 계속 깊어져만 갔고, 이제 해는 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똥과 쓰레기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고 현장에 늦게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현재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아카이와씨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거는 그냥 앉아서 군인들이 일찍 도착해서 저 쓰레기더미 어디선가에서 부인을 구하기를 바라는 거였다. 그때까지 부인이 죽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미 이시노마키시에서만 1만 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하였고, 그의 부인이 발견될 확률은 거의 제로였다.

자, 이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 상황이었으면 그냥 한숨만 팍팍 쉬면서, 정부랑 대통령 욕 심하게 하고 혼자 살아있음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더라도 그의 부인을 저 더러운 똥물에서 가만히 죽게 놔둘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구할 생각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이후, 그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잠수복과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그 짧은 시간 안에 구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다. 나는 지금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집에서 목이 말라 죽겠는데 콜라 하나 못 찾아서 온 집안을 헤매고 있는데, 이 일본 아저씨는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산소통, 잠수복 그리고 스쿠버 장비를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 정말로 뜻이 있다면 길이 있고, 강한 의지만 있다면 사막에서도 물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뭐, 그가 어떻게 이 장비들을 구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그는 부인을 구하기 위해서 스쿠버 장비를 구했다는 점이고 그는 잠수 장비로 중무장하고 바로 물로 뛰어들어갔다. 부인을 구출하거나, 아니면 구출하려고 노력하다가 물 안에서 죽거나 그런 각오로 뛰어들어 간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거는 – 그리고 다행임 – 아카이와씨가 이미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부인을 바다에서 서핑하면서 만났다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추해보면 그가 이미 스쿠버를 할 줄 알았다는 결론이 생긴다. 어쨌든 간에 그건 상관없다. 아마 이 사람은 스쿠버를 전혀 못 해도 무조건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테니까. 그는 지진이든 쓰나미든 말도 안 되는 자연재해가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차가운 물 속으로 깊이 잠수해서 그의 집이 있던 위치로 헤엄쳤다.

물속은 정말 가관 그 자체였다고 한다. 자동차, 건물잔해, 아직 살아있는 전선 등등 온갖 대형 쓰레기들을 마치 오락에서 주인공이 장애물들을 피하듯이 그는 피해 다녔다. 장난감 자동차와 같은 떠다니는 차들을 피해서, 깨진 유리 조각들에 산소통이 긁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수영하면서 그의 집을 찾았다. 아카이와씨는 이 와중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한가지 목표 – 부인 구출 – 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고, 그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집안에는 얼굴만 물과 천장 사이에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부인이 살아있었다. 그는 부인에게 미리 준비해간 예비 산소통을 입에 물려주고 안전하게 물 위로 나왔다. 아카이와씨의 부인은 무사히 구출되었다.

하지만,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아니 군대도 못하는 걸 단독으로 물속에 들어가서 부인까지 구출했는데 또 무슨 할 일이 남았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하겠지만, 상황은 더욱더 흥미진진해진다. 아카이와씨의노모 또한 이시노마키에 살고 있었으며 그녀 또한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일단 아카이와씨는 임시보호소들을 시작으로 온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이미 쓰나미가 도시를 습격한 지 나흘이 지났고 그때까지 노모의 행방을 찾지 못하자 아카이와씨는 그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도시는 물에 잠겨있었고 (물론 수심은 약간 낮아졌다.) 구조대원들은 여전히 꾸물대며 그가 원하는 만큼 빠리빠리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해결하기로 하고 다시 한 번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차가운 물로 뛰어들었다. 물속은 여전히 춥고, 컴컴하고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부인을 찾을 때처럼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게 집중력 하면서 어머니를 샅샅이 찾기 시작했고 기적과도 같이 어떤 집의 지붕에 매달려있는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어머니를 발견했다. 그리고 마치 동화와도 같이 그는 노모 또한 안전하게 구출을 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은 아니다 ㅋㅋ.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점은 바로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우리와 같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43살인 그는 자신 가족들의 안전은 보장되었지만, 아직도 어디에선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일본 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 이후 매일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장비는 맥가이버칼, 물통, 후레쉬 그리고 선글라스다.

히데아끼 아카이와씨가 우리에게 몸소 보여준 그의 행동 – 이게 바로 나는 진정한 벤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백만 가지의 이유와 변명을 대면서 좌절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훨씬 쉽다.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내가 직접 두 손 걷어붙이고 해결해야 한다. 아카이와씨가 일본 정부에서 그의 부인과 어머니를 구해주길 기다렸다면 두 여성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청년실업을 정부에서 해결해 줄 수 없다. 자신의 불운을 시대를 탓하고, 정부를 탓하면 기분은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개선하려면 모든 걸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쓰나미에 맞선 히데아끼 아카이와씨처럼.

나는 이 글을 읽은 후부터 아카이와씨의 사진을 오려서 벽에 붙여 놓았다. 오늘 아침도 이 사진을 보고 다시 한 번 적군들로 우글거리는 전쟁터로 뛰어들어 승리하는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벤처 정신으로 재무장하면서

<참고 및 이미지 출처 = “Badass of the Week: Hideaki Akaiwa” by Ben Thompson>

Stand by Me – 기억속에 오래 남을 영화

stand-by-me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The Body”를 아는 분들은 많이 없지만,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Rob Reiner 감독의 “Stand by Me”라는 작품을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영화와 같은 이름의 Ben E. King이 부른 노래는 (영화의 주제곡)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When the night has come, and the land is dark.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 will see…”

이렇게 시작하는 노랜데 워낙 유명하고 많이 사용되는 곡이라서 적어도 내 나이 또래 또는 나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은 다들 들어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6년 작품인 이 영화를 나는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솔직히 그때는 어려서 아직 이 영화의 제작 의도도 잘 몰랐고, 무엇을 말하려는 영화인지도 잘 몰랐는데 올해가 이 영화의 25주년이라고 해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말에 와인 한잔 하면서 영화를 다시 봤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59년 여름 오레곤 주의 Castle Rock이라는 동네이다. 참고로, Castle Rock이라는 가상의 동네는 Stephen King의 소설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다. 주인공들은 4명의 어린 동네 친구들 Gordie LaChance (Will Wheaton), Chris Chambers (River Phoenix), Teddy Duchamp (Corey Feldman)와 Vern Tessio (Jerry O’Connell)이며, 영화는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Gordie의 나레이션을 통해서 전개된다. 영화는 결국에는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질 운명의 4명의 초등학생의 눈을 통해서 보게 되는 세상이 배경이 되는 일종의 성장 영화이다. 제리 오코넬이 열연한 Vern이 다른 동네에서 죽은 시체를 봤다는 동네 형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그다음 날 그와 3명의 어린 친구들은 이 시체를 직접 찾으러 나선다. 시체가 있는 동네로 가기 위해서 철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 4명의 소년이 겪는 평범한 일상의 내용이 이 영화의 주 내용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시체를 찾지만, 애초 계획했던 대로 이 시체를 찾아서 동네의 영웅이 되는 걸 선택하기 보다는 익명의 제보를 하고 다시 집으로 걸어서 묵묵히 돌아온다는, 목적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1시간 28분짜리 영화는 이제는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작가 된 어른 Gordie LaChance (Richard Dreyfuss)가 1959년 여름의 모험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컴퓨터 화면에 글로 정리하면서 끝난다:

“나는 그 이후로, 12살이었던 그해 여름의 친구들과 같은 진짜 친구들을 다시는 사귈 기회가 없었다. 요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I never had any friends later on like the ones I had when I was twelve. Jesus, does anyone?)”

그리고 “Stand by Me” 노래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면서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시작했다. 엔딩 크레딧이 화면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는걸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눈물이 찔끔 났던 것도 같다.

이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서? 이제는 죽어서 다시는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River Phoenix가 그리워서? 어릴 적 친구들과의 우정이 그리워서? 아니면 그냥 나이를 먹어서 밤에 와인 한잔 하니까 센티 해져서?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이메일, Facebook과 Twitter로 60%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 이제는 친구들과의 연락도 전화기를 들어서 번호를 눌릴 용기조차 없어서 비겁하게 Facebook으로 하는 나한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Stand by Me의 4명의 주인공과 같이 찐하고 physical 한 우정을 내가 경험했던 게 도대체 언제였을까…. 아마도 그때 그 시절을 같이 보냈던 지금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갑자기 막 그리워져서 가슴 한쪽이 아려왔던 거 같다. 더욱더 여운이 남는 거는 나 자신도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친구들과 연락할 일이 없을 거라는걸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세고, 성공했어도 인간은 혼자서 살 수가 없다.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누군가의 도움과 위로가 필요하고 누군가 옆에서 stand by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누구’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내/남편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을것이다. Stand by Me는 억지로 감동을 주거나 인위적으로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본 후에 흘리는 눈물은 아주 솔직하고 정직한 내면에서 나오는 눈물이다. 아주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영화다.

마지막으로 Ben E. King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주제곡 “Stand by Me”를 감상해보자. 들으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우리 인생과 이러한 우리의 인생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준 어릴 적 친구들에 대해서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미지 출처 = https://www.pinterest.com/pin/306596687109364952/>

해보긴 해봤어?

해봤니.“중요한 것은 비평가들이 아니다. 공功은 실제 경기장에서 먼지와 땀 그리고 피에 뒤범벅되어 용맹스럽게 싸우는 자의 몫이다. 그는 실수하고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또 가치 있는 이유를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자신을 불태운다.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에 주어지는 위대한 승리와 패배를 알기에, 그것들을 전혀 모르는 차갑고 겁 많은 영혼들과 결코 함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시민의식’연설 중. 1910년 4월 23일 파리 소르본 대학. 테오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해보긴 해봤어?”라고 한다(물론 그 특유의 악센트와 톤으로). 그가 살아생전에 직원들한테 힘든 일을 시키면 항상 돌아오는 답변은 “회장님, (이렇고 저렇고 해서) 그건 안될 겁니다. 이미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시도해봤는데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였다. 그러면 그는 바로 “그래서 니가 해보긴 해봤어? 니가 해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니면 남이 그랬다는 거야?”라고 바로 받아치면서 해보지도 않고 으레 겁먹고 포기하는 직원들을 야단쳤다고 한다.

“해보긴 해봤어?”

아, 정말 단순하면서도 많은 걸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다. 나도 일을 하면서 이 말을 자주 하는데 정주영 회장같이 남들한테 그러기보다는 나 스스로 이 질문을 많이 던진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건 생각만큼 어렵고 고달픈 일이다. 불행하게도 아직 뮤직쉐이크는 Pandora나 Spotify와 같이 유명하고 수백만 명의 글로벌 인구들이 즐기는 음악 사이트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서 이룩할 수 있던 건 미약한 발전들은 모두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일단 한번 직접 부딪혀 보고 판단하자.’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 같다. 오늘은 이와 관련 내 최근 경험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뮤직쉐이크 플랫폼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빌보드 차트의 웬만한 곡들을 뮤직쉐이크의 음원들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거꾸로 해석해보면 바로 웬만한 기성곡들을 뮤직쉐이크 플랫폼에 입력해서 유저들이 손쉽고 간편하게 – 음악의 지식이 전혀 없어도 – 리믹스를 할 수 있다는 매우 파워풀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온다. 2008년 2월, 미국 사무실을 설립할 당시, 우리는 팝 가수들의 유명 곡들을 가지고 리믹스 할 수 있는 application을 만들어서 우리의 브랜딩과 매출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고 많은 연구와 조사를 했다. 이걸 가능케 하려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가장 어렵고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음원의 ‘저작권’이라는 게 걸려있었다.

저작권이라는 건 정말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용어이다. 나도 음악을 원래 하던 사람이 아니고, 음악 산업에서 오래 몸을 담았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만 해도 IT 바닥에서 유일하게 음악 저작권을 접할 수 있었던 건 Napster와 관련된 안 좋은 기사들뿐이었다. 뭐, 이 세상 모든 것이 주인과 권리가 있듯이 음악도 누군가는 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건 당연한 거지만 뮤직쉐이크가 특정 곡을 가지고 리믹스를 하려면 과연 누구한테 어떤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 그리고 이건 짧은 버전이다. 1년 6개월 동안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음반 산업 사람들과 우리가 경험하고, 배우고, 울고, 웃고 (웃을 수 있었던 사건은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스트레스받았던 걸 모두 설명하려면 이 또한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 고 정주영 회장의 “해보긴 해봤어?”가 왜 중요한지 잘 설명해줄 것이다:

일단 나는 주위에 있는 음악 좀 한다는 인간들과 LA에 깔린 크고 작은 음악 전문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들부터 시작했다 – 우리가 이런 걸 하려는데 이렇게 하려면 누구한테 어떤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를 물어봤다. 참으로 신기하고 답답했던 건 바로 50명한테 이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50가지였다. 어떤 이들은 유니버설과 같은 음반사에 돈을 주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어떤 변호사는 음반사랑 퍼블리셔들한테 동시에 권리를 clear 해야 한다고 했다. Black Eyed Peas의 리더 Will.i.am.의 매니저는 그냥 바로 가수한테 허락만 받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나한테 여러 번 컨펌을 해줬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엔터테인먼트 변호사인 – 시간당 $700 이상 버는 – K씨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뮤직쉐이크의 경우 유저들이 같은 곡을 가지고 수만 개의 리믹스를 만들 텐데 그 리믹스 하나씩 파생 저작권(derivative right)이라는 게 생기고 각 파생 저작권에 대해서 음반사들이 공식적으로 승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니버설과 소니 뮤직에서 15년 이상 임원을 하셨던 분은 나 같은 음악산업 경험이 전무한 애송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뮤직쉐이크와 같은 회사와 음반사들을 전문적으로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브로커들이 있으니까 이들을 통해서 일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어쨌든 전반적인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하려는 거는 거의 불가능한 거기 때문에 그냥 아예 시간 낭비 하지 말라는 거였다.

과연 그런 것일까? 아니, 서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가 여기 있는데 아무리 선례가 없더라도 웬만큼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는 사람들이면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려고 했고, 아무도 해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그랬듯이 내가 직접 해보기로 했다. 일단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스탠포드와 워튼 주소록을 통해서 음반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문의 연락처를 땄다. 그리고 약 70명 이상 동문의 이메일/전화번호를 따서 하나씩 연락을 해서 내 상황을 설명하고 이 바닥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좀 배우는 거부터 시작을 했다. 연락되는 경우도 있었고, 안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어쨌든 나는 여기저기 사람들을 많이 소개받아서 LA와 뉴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부분의 음반사가 LA와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열심히 미팅과 데모를 했다. 운 좋게도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Universal Music Group의 전설적인 CEO Doug Morris와도 미팅했고 – 신기한거는 이렇게 음악 산업에서 짬밥을 많이 먹은 분들도 우리의 리믹스 권리에 대해서 100%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지 못하더라 – 대략 1년 6개월의 기간 동안 음악 산업 사람들 100명 이상과 전화 통화와 미팅을 했다.

내가 배우고 느낀 점은? 직접 해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나한테 알려 줬던 거와는 달리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게 의외로 단순하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Bruno Mars라는 가수의 (한국에서도 유명한지 모르겠지만, top of the top 가수이다) “Just the Way You Are”라는 빌보드 1위 곡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이 곡을 부르는 가수는 Bruno Mars이고 그는 Warner Music Group이라는 음반사(music label) 소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을 가지고 뭐라도 하려면 워너 뮤직을 통해서 Bruno Mars라는 가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흔히 업계에서는 master 승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끝인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노래를 부르는 가수 못지않게 그 노래를 작사/작곡한 송라이터들도 이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웬만한 곡들은 한 명의 송라이터가 아닌 여러 명의 송라이터들이 작업을 하므로 모든 송라이터들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게 중요하다. 대부분의 유명한 송라이터들은 소속사가 있는데 바로 이 소속사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퍼블리셔(publisher)들이다. EMI Publishing과 같이 크고 유명한 기업형 퍼블리셔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지구 반대쪽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구글로 검색해도 찾을 수 없는 송라이터를 관리하는 퍼블리셔 또한 있다. “Just the Way You Are”라는 곡은 복잡하게도 8명의 송라이터들이 있고 – 그 중 2명이 곡의 80%를 작사/작곡했고, 나머지는 노래 가사 중 한 줄만 작사한 사람도 있다 – 이 곡을 사용하려면 이 8명의 송라이터들의 소속 퍼블리셔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부분이 조금 시간이 걸리는 프로세스이다. 특히, 유명하지 않은 퍼블리셔는 연락처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재수 없으면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직접 찾아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일단 위에서 내가 말한 게 기본 와꾸이다. 특정 곡에 대해서 그 권리를 가지고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파악하고, 이들로부터 하나하나씩 승인을 받아야지만 그 곡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곡을 통해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정해진 %에 따라서 분배된다. 이 지루하고 복잡했던 1년 6개월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느낀 점은, 대부분의 사람은:
1/ 위와 같은 이 바닥의 판 짜임새 자체를 모르고 있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2/ 알아도 “와, 이 많은 사람을 언제 어떻게 컨택하냐”라면서 스스로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
3/ 그리고 직접 해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하다가 중간에 가수/label/퍼블리셔들과 이야기가 잘 안 되어서 일을 진행하지 못한다.
4/ 이도 저도 아니고 나한테 처음부터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말한 사람들은 지네들은 직접 해보지도 않고, 해볼 노력도 하지 않고 위의 1번, 2번, 3번 사람들의 말만 듣고 마치 본인이 직접 해본 마냥 남들한테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주위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서 1년 6개월간의 지루하고 집요한 시도 후 많은 가수/매니저/음반사/퍼블리셔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졌고 정확한 절차를 밟은 후에 우리가 사용하고자 하는 몇 곡들의 권리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얼마 전에 출시한 Jackson 5의 “ABC” Remix 아이폰 앱이었고 3월에 또 다른 대형 히트곡의 리믹스 앱을 출시할 예정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내가 여기서 말하는 거와 같이 쉽고 차곡차곡 진행된 거는 아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중간에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결론은 성공적이었고 나랑 우리 회사 사람들은 이제는 웬만한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들보다 이 바닥의 법칙과 생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2010년 8월 ‘스타트업 바이블’이 출간된 이후로 꾸준히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독자분은 언젠가는 창업해서 자신만의 스타트업을 꿈꾸는 젊은 학생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제가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창업할 수 있을까요?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요? 배기홍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화가 난다. 이 친구들아 –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 당신들이 직접 해보기나 하고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로 창업할 수 있을지를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직접 해봐라. 그리고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직접 시도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느라 이메일을 쓰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아라. 직접 해보고 고객들의 반응이 있다면 이미 좋은 서비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직접 해봤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없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를 고민하면 된다. 만약 그 단계에서 나한테 이것저것 조언을 구하고자 하면 그땐 나도 기꺼이 도와주고 피드백을 주겠지만, 직접 부딪혀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제삼자의 의견을 구하지 말라고 나는 충고하고 싶다. 나한테 물어봐서 내가 “아,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니까 할 생각도 하지 말아라.”라고 해서 안 할 것이라면, 창업 생각은 하지도 말고 그렇지 않다면 일단 직접 해보라고 강력하고 권장하고 싶다.

뮤직쉐이크를 미국에서 한 3년 정도 운영한 이후로 나는 남의 충고나 의견을 잘 물어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주위 분들이 나한테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그건 해봤자 안되니까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하면 나는 그냥 웃어넘기고 –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 – 그들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런 나의 태도에 대해서 “너 대가리 좀 컸다고 많이 건방져졌구나.”라고 말을 하지만 그건 나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그릇된 의견일 뿐이다. 모든 사람의 조언을 내가 무시하는 건 아니다. 자기들이 해보지도 않고 여기저기서 들은 말을 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경험한 일처럼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들의 말만 나는 무시한다. 불행하게도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오로지 내가 직접 해보고 경험한 후에서야 비즈니스 결정을 내린다. 그렇게 해야지만 회사와 직원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올바르고 하늘을 우러러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일들의 80% 이상이 직접 해보니까 가능했었고, 나머지 20%도 단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말에 처음으로 디즈니랜드를 다녀왔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애도 없고 귀찮아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그래도 나중에 멀리 이사를 가게 되면 아쉬울 거 같아서 가봤다. 이미 디즈니랜드보다 더 재미있고 새로 생긴 놀이공원들을 경험해서인지, 파크 자체는 조금 시시했지만, 공원을 떠나면서 나를 계속 감동하게 한 거는 바로 연 매출 40조 원 이상의 세계 최대 media/entertainment 기업의 시작은 88년 전 미키 마우스라는 생쥐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었다. 로이와 월트 디즈니씨가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전 세계인을 감동하게 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왕국을 꿈꾸는 거에 대해서 수많은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을 것이다. 디즈니 형제는 그런 비난과 손가락질을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꿈과 믿음을 직접 실행에 옮겼고 그 과정에서 실패와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에는 성공했다. 그들을 비웃고 비난하던 많은 사람이 지금은 디즈니사의 열혈 주주인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든, 제조업을 하든, 구멍가게를 운영하든, 비영리 단체에서 일을 하든 간에 새로운 일을 벌이기 전에 특히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일들, 그리고 본인조차 의구심을 살짝 갖게 되는 그런 류의 일들 – 스스로에게 항상 다음의 질문을 던져봐라:

“해보긴 해봤어?”

내가 장담하건대 대부분의 일이 직접 부딪혀서 해보면 잘 해결될 것이고,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된다면 적어도 나중에 남들한테 떳떳하게 “내가 해봤는데 그건 잘 안되더라”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왜 안되는지를 잘 분석해서 다시 해보고 또 해봐서 결국에는 성공하더라.

글이 조금 길었지만, let’s all remember. 이 “해보긴 해봤어?” 정신이 바로 소 한 마리로 시작한 구멍가게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그룹으로 성장시켰고, 쥐새끼 한 마리로 시작한 만화를 전 세계에 감동을 가져다주는 디즈니 그룹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미지 출처 = http://rossovir.tistory.com/1031>

Y Combinator의 투자 조건: 창업자의 “굳은 의지”

얼마전에 실리콘 밸리로 잠깐 출장 갈일이 있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에 잠깐 들렸다. 내가 스탠포드에 입학했을때가 1999년 9월이니까 벌써 12년 전인데 놀랍게도 아직도 내 입학 동기 몇명이 같은 연구실에서 post-doc을 하고 있었다. 뭐, 그들만의 사정은 있지만 – 중간에 한국에서 군대다녀온 친구들도 있고, 재수없게 박사과정 말년에 담당 교수가 돌아가셔서 새로운 교수 밑에서 박사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한 후배도 있었다. 그래도 12년째 학교에 있는다는건 좀….
어쨌던간에 마침 한 공대 강의실에서 창업 관련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어서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서 편한 의자에 앉아서 12년 전 학창 시절 생각에 잠시 잠기면서 주위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다. 실리콘 밸리의 심장에 위치해 있어서일까, 마치 스탠포드 대학 학생들은 창업을 위해서 학교를 다닌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고 창업에 대한 생각과 철학들이 학부생치고는 (학부 졸업반이라고 해봤자 우리 나이로 22살밖에 안되는 애송이들이다) 나름대로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제를 조금 바꿔서 – 스탠포드 대학생들이 가장 우러러보고 투자를 받았으면 하는 VC는? KPCB? Sequoia? Accel? 모두 엄청난 VC들 이지만 이날 내가 10명 이상의 스탠포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바로 Y Combinator의 Paul Graham이라는 이야기를 모두가 이구동성을 했다.

Loopt, Reddit, Xobni, Bump…이 스타트업들이 시작할 수 있었던 Paul Graham이 창업한 Y Combinator의 종자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동안 Y Combinator는 40개 이상의 스타트업들이 시작할 수 있도록 소액의 종자돈을 제공했다. 이 VC가 남들보다 먼저 유망주들한테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많은 대학생들과 first-time entrepreneur들이 스스로 Y Combinator한테 돈을 달라고 접근을 하기 때문인데 이 중 어떤 스타트업들이 Y Combinator한테 투자받을 수 있을까? Entrepreneur 잡지에서 Paul Graham과 이 주제를 가지고 인터뷰를 했다:

1.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건?
창업자/창업팀입니다. 우리가 6년동안 Y Combinator를 운영하면서 배운 점이 하나 있다면, 비즈니스 아이디어 보다는 창업자가 누군지를 잘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이 종자돈 단계에 투자를 하면 실제 비즈니스 보다는 사람들한테 투자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가 19살에 Microsoft를 창업했을때, 그가 당시 가지고 있었던 사업 아이템은 Altair라는 마이크로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사업이었는데 솔직히 그 아이디어는 상당히 말도 안되는 거였죠. 그러니까 그 당시에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를 한 사람들은 비즈니스보다는 빌 게이츠라는 창업자의 가능성에 투자를 한거죠.

2. 창업자가 제일 중요하다면, 당신은 창업자의 어떤 자질을 봅니까?
굳은 의지 (determination) 입니다. 우리가 6년전에 투자를 시작했을때 우리는 똑똑한 창업자들을 선호했죠. 그런데 하다보니 똑똑한 사람들과 스타트업의 성공과는 큰 상관이 없더라구요. 어떠한 어려움과 험난함을 극복하고, 남들이 뭐라하던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는 굳은 의지 – entrepreneurship과 스타트업은 이거 빼면 시체입니다 (이 부분은 내가 첨가).

3. 창업자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판단하나요?
우리는 창업자들과 인터뷰 시작 후 10분만에 투자 결정을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물어보는거죠. 많은 질문들을 하는데 대부분의 질문들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고 답변을 한다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는 좋은 현상입니다. 장황하지 않고 아주 간결하게 답변하는것도 중요합니다. 창업자들이 본인들이 하고 싶은거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다면, 아주 짧은 몇 마디로 핵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4. 좋은 아이디어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죠?
대부분의 좋은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아주 안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하버드 대학생들의 연락처였던 Facebook은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비즈니스 아이디어였겠죠. 구글 창업 당시 이미 10개 이상의 잘나가는 다른 검색 엔진들이 있었고, 검색 엔진이라는 비즈니스가 얼마나 재미없고 인기없는 비즈니스였냐면 당시 모든 검색 엔진들이 스스로를 ‘포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까요.
이 바닥에서 성공의 정도는 리스크에 비례합니다. 즉, 최고의 스타트업 아이디어들은 – 소위 말하는 대박나는 아이디어들 – 창업자와 투자자들도 “이게 과연 될까”라고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시작하는 그런 아이디어들입니다.

5. 그말은 당신은 대박 나는 아이디어와 그렇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구분할수 있다는 말인가요?
글쎄요…그래서 우리는 투자할때 항상 창업자들한테 투자하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