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ing

My Philanthropic Pledge – Warren Buffett

이번 글은 영어 원문을 그냥 번역한 수준의 글이다. 빌 게이츠 다음으로 세상에서 돈이 가장 많은 Berkshire Hathaway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Warren Buffett의 “기부의 서약서”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누구한테, 그리고 언제 이 편지가 배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 편지를 전 세계 부호들에게 보내면서 지금까지 이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의 더도 말고 “50%만” 죽기 전에 사회에 환원하고 가라는 심금을 울리는 캠페인을 빌 게이츠/멜린다 게이츠와 함께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앞서가고, 심지어는 어떻게 하면 남을 밟으면서까지도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루에도 수 십 번씩 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서약서이다. 물론, 나는 아직 버핏 회장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남겨둘 전 재산의 1%만큼의 돈도 벌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역량조차 없지만,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오늘도 이 분한테 많은 걸 배우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어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My Philanthropic Pledge
by Warren Buffett

2006년도에 저는 제가 보유하고 있는 Berkshire Hathaway 주식 전부를 단계적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너무나 잘한 결정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Bill/Melinda Gates와 제가 재산의 최소 50%를 사회에 기부하라고 수백 명의 미국인 부호들에게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이 서약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이 부탁을 드리고 싶으며, 제가 이러한 부탁을 드리는 이유와 의도를 설명하였으면 합니다.

제 서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평생 또는 제가 죽은 후에 제 전 재산의 99%를 자선단체와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절대적인 돈으로 환산을 하면 제 전 재산의 99%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많은 일반인이 매일매일, 이 보다 더 많은 걸 사회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과 전 세계인들이 정기적으로 교회, 학교 또는 다른 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들한테 그러라고 시킨 건 아닙니다. 이들은 그 돈을 사회에 기부하지 않고 본인들과 직계 가족들이 잘 먹고 잘사는 데 사용해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용감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구세군이나 United Way와 같은 비영리 단체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하는 재산은 바로 영화관람이나 외식과 같은 여가생활을 스스로 포기하였다는 걸 의미합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제 재산의 99%를 기부하여도 우리 가족은 아직도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 서약을 실행하여도 저는 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기부하지는 않습니다. 제 자식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그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남들을 돕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제가 기부하는 제 전 재산의 99%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든든한 후견인을 만나서 우정과 사랑을 배우면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 우리는 주위에서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제 누님인 Doris 여사 또한 매일매일 그녀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제가 하고자 하는 건 미비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바로 제가 가지고 있는 Berkshire Hathaway 주식을 – 돈으로 환산하면 막대한 자원을 획득하고 사용할 수 있는 – 운이 없게도 가난하고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20%는 이미 사회에 기부가 되었습니다(이제는 고인이 된 제 부인 Susan Buffett의 몫까지 합쳐서). 해마다 저는 주식의 4%를 지속해서 기부할 예정입니다. 모든 주식이 기부된 후 늦어도 10년이면 이 주식들이 현금화되어서 남을 돕는데 사용될 겁니다. 제 재산의 1 달러도 기금(endowment)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제가 힘들게 번 돈이 지금 당장 해결되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사용되는 걸 원합니다.

이 서약으로 인해서 저와 제 가족들의 생활이 바뀌는 점은 없습니다. 제 자식들은 이미 저한테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으며, 앞으로도 더 물려 받을 겁니다. 덕분에 그들은 매우 편하고 생산적인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 또한 제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갈 예정입니다. 저도 인생의 물질적인 즐거움을 때론 즐기면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비싼 전용기를 저는 좋아하지만, 미국 전역에 부동산과 집을 가지는 건 오히려 더 불편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너무 많은 걸 소유하게 되면 사람이 돈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관리하게 됩니다. 건강 외에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재산은 바로 흥미 있고, 다양하고, 오래 사귈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미국에서 살 수 있었던 점, 운이 좋은 유전자와 복리(compound interest) 덕분입니다. 저와 제 아이들은 소위 말하는 “자궁 로또(Ovarian Lottery)”에 당첨된 겁니다(제가 태어났던 1930년도에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신생아가 태어날 확률은 30대 1이었습니다. 제가 백인 남자로 태어날 수 있었던 사실 덕분에 그 당시 많은 미국인을 괴롭히던 장애를 경험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 행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전반적으로는 미국을 잘 굴러가게 하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주는 시장의 시스템 덕분에 배가되었습니다. 미국 사회와 경제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면 훈장으로 보상받고 미래의 주역을 가르치는 우수한 선생님은 부모님의 thank-you note로 보상을 받지만, 잘못된 주식의 가격을 남보다 더 빨리 발견하는 사람들은 수십조 원의 돈으로 보상받습니다. 바로 저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운명의 여신은 매우 변덕이 심한 여신인가 봅니다.

이 서약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회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었던 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저와 제 가족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겁니다. 우리가 재산의 1% 이상을 우리를 위해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저희 생활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제가 사회에 기부하는 제 재산의 99%는 – 98%에 비해서 – 남들의 건강과 복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서 저와 제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갖고, 그 외 나머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위해 환원하자. 바로 이 서약과 함께 시작합니다.

Written by the Angel of Omaha (이거는 내가 쓴거다).

운동이 보약이다

내가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였나…스포츠 신발/의류 제조업체인 아식스(ASICS)라는 회사의 광고에서 다음과 같은 카피를 사용하였던 적이 있었다. “ASICS = Anima Sana in Corpore Sano” – 라틴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건강한 육체 속의 건강한 정신” 정도가 될 것이다. 나도 운동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스포츠 의류를 입지만 – 참고로 나는 나이키 마니아다 – 주로 러닝 전문화를 만드는 아식스의 제품은 아직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도 아식스를 보면 항상 이 광고와 카피가 생각나는 걸 보면 매우 강렬하고 효과적인 캠페인이 아니었느냐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포스팅은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그리고 스타트업에 관해서이다.

2009년도는 나한테 있어서 정말로 힘든 한 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더 작은 구멍가게였던 뮤직쉐이크라는 한국 벤처기업의 미국 operation을 담당하면서 태어나서 가장 career 적으로 힘들었던 한 해였으며, 왜 항상 내가 학교를 나와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경기가 이 모양이 될까를 원망하였던 적도 여러 번 있다 (2000년도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SUN이나 Cisco와 같은 쟁쟁한 기업의 offer를 자신 있게 거절하고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벤처에 취직하였다.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자마자 닷컴 거품은 붕괴하였고 취직 후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나는 다른 직장을 물색해야만 했다). 일을 하면서, 나같이 일을 한번 벌이면 죽기 살기로 덤벼서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적성이 풀리는 성격의 사람들은 – 대부분의 hardcore 영업사원들이나 entrepreneur들이 이런 부류에 포함된다 – 불경기와 같이 자신의 힘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경기가 좋을 때는 한 가지 일이 안 풀리면, 벌려놓은 다른 일들을 성공시키면서 이러한 정신적인 밸런스를 맞추게 되는데 2009년은 10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0개가 다 안 풀리는 한 해였다. 이로 인한 막중한 스트레스와, 돈을 아직 제대로 벌지 못하는 스타트업의 힘들고 지루한 펀드레이징 과정에서 오는 불안감과 좌절감으로 인해서 나는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라는 걸 경험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인해서 잠을 자다가도 새벽에 몇 번이나 벌떡 일어났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자신을 machine이라고 불렀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부를 만큼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였던 나한테는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나를 괴롭힐 만큼 내가 나약한 인간이었구나”라는 생각 자체가 어떻게 보면 더욱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거 같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내가 잘 극복해서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3가지의 큰 축복이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첫번째는 당연히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은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전화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거는 나한테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항상 내 옆에서 나를 묵묵히 지원하고 사랑해주는 와이프 지현이와 충견 마일로는 나를 더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두번째는 친구들이었다. 친구 중에도 믿음이 강한 친구들이었다. 나랑 뮤직쉐이크에서 한솥밥을 먹는 철이와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John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신앙심이 강한 친구들이다. 나는 솔직히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약간은 부정적이지만, 이 친구들을 보면서 인생을 살면서 신앙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다.
마지막으로 정기적인 운동이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웬만한 운동을 다 해본 나로서는 이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조금 더 육체적으로 과격하고 집중력을 요구하는 운동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으며 그때 내가 선택하였던 운동이 킥복싱이다. 정기적으로 웨이트와 복싱을 잘 혼합해서 해보니 다시 자신감을 회복할 수가 있었고 모든 사물을 더욱더 clear하고 명확하게 볼 수 있는 laser focus가 생겼다.

물론, 우리는 정기적인 운동은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필수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경험을 통해서 정기적인 운동은 육체적 건강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과 well-being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entrepreneur는 운동 마니아들이다. 그중에는 거의 프로수준으로 싸이클링, 수영, 요가,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특정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최소 3번은 헬스클럽에 가서 2~3시간 트레이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Entrepreneur들이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정기적으로 육체적 트레이닝을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대부분은 단순히 체중을 줄이거나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운동을 한다는 거, 특히 정기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거는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의식과도 비슷하다. 엄격한 규율(discipline)과 동기유발(motivation)이 필요한 프로세스인데, 이는 흥미롭게도 모든 entrepreneur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2개의 자질이다. 맨땅에 헤딩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업가들은 육체적으로 튼튼해야 한다. 하루빨리 돈을 만들어야 하는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창업가가 한 시간이라도 아프면 비즈니스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다. 또한, 그들은 한 기업의 리더로서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투자자들과 고객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심을 얻어야 한다.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는 창업가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래서 육체를 잘 관리하는 창업가가 주로 이러한 믿음과 신념을 줄 수 있다.

비즈니스의 성공에 있어서 집중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지마는 내 주위의 많은 entrepreneur는 본능적으로 산만한 사람들이 많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중 많은 창업가들이 집중력 결핍증세인 ADD나 ADH 증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런 정신병들을 해결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체계적인 운동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체계적인 운동은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이러한 스트레스는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산만함을 분산시킨다고 한다. 정신 과학적인 면에서 보면 운동은 norepinephrine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서 집중력을 생성하고 이렇게 생성된 집중력을 강화하는 도파민을 다시 생성한다. 정기적인 운동은 육체적 건강뿐만이 아니라 뇌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들도 있다. 2007년에 수행된 실험결과에 의하면 러닝머신에서 35분 동안 한 번만 뛰어도 뇌인지 적응 능력이 (cognitive flexibility) 향상된다고 한다. 참고로 요새와 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세계에 적응하려면 창업가들한테 가장 필요로 하는 능력은 바로 이러한 뇌인지 적응 능력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이미 70살을 넘긴 entrepreneur들을 몇 명 만난 적이 있다. 솔직히 자기 사업을 하는 owner라면 정년퇴직 나이라는 건 무의미하며, 이런 분들은 더욱더 행복하고 오래 살려면 죽는 그 날까지 뭔가를 만들고 시작하는 창업의 즐거움을 만끽하셔야 한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그들보다 젊고 육체적으로 강한 청년 창업가들보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지속해서 변화하는 주위 세상에 적응을 더 잘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비법은? 바로 평생을 거르지 않고 해온 규칙적인 운동이다. 아주 격렬한 운동은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을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아마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여자친구랑 헤어진 후, 한 사람은 2달 동안 맨날 술만 처먹었고, 다른 사람은 우울함과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해서 미친 듯이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렸다. 결과는 안봐도 비디오다. 운동한 사람은 2달 후에 건강한 육체와 말끔히 치유된 정신을 바탕으로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이쁘고 현명한 여자를 만났고, 술만 처먹던 사람은 지금도 술 먹으면서 이미 남의 여자가 된 그 여자를 욕하면서 살고 있다.

스타트업을 고려하고 있는 예비 창업가라면 긍정적인 자세와 자신감은 필수이다. 일하면 할수록 이러한 긍정적인 자세와 자신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가득 충전을 해놓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좋은 분위기와 mood를 지속해서 유지하는 데는 정기적이고 때론 격렬한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 대부분의 의사는 항우울제를 처방하기 전에 유산소 운동을 먼저 권유하고 있다.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광고지를 보면 “Exercise Is Medicine“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는데 정말로 맞는 말인 거 같다. 운동은 어떻게 보면 매우 쉽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으며, 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거는 모든 걸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거와 같이 창업가들은 성격상 일단 한번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 한다. 대충하거나 반쪽짜리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없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한번 시작하면 항상 과하게 하므로 육체적/정신적 손상은 피할 수가 없는 현상일 것이다. 물론, 그러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work and stress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훌륭한 창업가들도 내 주위에는 많이 있다. 아마도 운동을 함에서도 이런 그들의 끝을 보는 성격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시작해서 점점 더 그 과격함을 늘리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를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자신의 맨탈이 향상하는 걸 느끼면서 운동을 즐기면 더욱더 성공적이고 장수하는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모두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창고에 처박아 놓은 운동화를 다시 꺼내서 한번 뛰어보자.

빌 게이츠의 소아마비 퇴치 작전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직은 매우 크고 복잡하다. 워낙 많은 제품을 다양한 시장에 공급하기 때문인데, 특히 마케팅은 다른 조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vertical & horizontal 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제품을 담당하는 product marketing 조직 – 즉, Windows OS, Office, Windows Server, SQL Server 등 – 이 있는가 하면 모든 제품을 특정 시장에 마케팅하는 조직 –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Small and Medium Marketing,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Enterprise Marketing – 이 존재한다. 나는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Mid Market Marketing Manager(M4)라는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매우 challenging하고 회사의 매출과 직결된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그런 직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조직을 분석하려면 제품별 숫자만을 봐야 하는 게 아니라, 특정 market 별 숫자 또한 자세히 분석을 해야 한다. Bill Gates 회장은 임원 미팅에서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경영진들에게 하였다. “내년에 우리가 더 성장하려면 Office나 SQL 서버와 같은 구체적인 vertical 시장에 더 투자 해야 할까요 아니면 특정 제품보다는 대기업, 교육, 공공 분야와 같은 전반적인 horizontal 시장에 집중해야 할까요?”

매우 재미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2008년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손을 뗀 후 340억 달러라는 막대한 기금과 대통령보다도 더 유명한 슈퍼파워를 이용해서 개발도상국의 질병 퇴치와 보건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게이츠 회장이 바로 똑같은 질문을 세계 보건기구에 얼마 전에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아마비와 같은 개별 질병을 퇴치하는 데 집중해야 할까요? 아니면 전반적인 건강과 위생 개선책을 – 위생 상태 개선, 예방 접종 확산, 식수 정화 – 추구하는 게 맞을까요? 어떤 게 인류의 건강을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일까요?”라는 질문이었다. 정답은 둘 다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빌 게이츠 회장과 같은 자선사업가들의 돈을 무기로 세계 보건 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을 불구로 만들고 있는 무서운 병 소아마비에 이러한 총체적인 접근방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질병 퇴치를 하려면 특정 질병을 1대 1로 공격해야 한다는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총체적인 방법은 특정 질병을 퇴치하려면 전반적인 보건 시스템의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약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세계 보건 전략은 이러한 총체적 전략을 토대로 운영될 것이지만, 실패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인류 보건 역사상 가장 비싼 수업료로 기억될 것이다. 소아마비 하나에만 이미 20년 동안 82억 달러라는 예산이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기부자는 그동안 vertical 전략을 선호하였다. 즉, 일정 금액의 기부금을 가지고 특정 질병을 퇴치하는 데 집중하는걸 좋아했다. 이 전략이 성공한 사례가 바로 1979년도에 인류가 유일하게 완벽하게 퇴치할 수 있었던 수두 사례였다. 이와는 반대로 horizontal 전략은 조금은 모호한 접근 방법과 당장 수치화할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며, 그 결과 또한 장기적으로 보고 접근을 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vertical 전략으로 시행된 소아마비 퇴치는 참담하게 실패했고, 빌 게이츠와 세계 보건 기구는 이번에는 vertical & horizontal 전략을 적용하는 모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2010년 초,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 보건 기구(WHO)를 방문했다. WHO의 지하벙커에서 진행된 미팅에서 그가 접한 소식은 전 세계 질병을 퇴치하려는 그의 노력에 브레이크를 거는 나쁜 소식이었다. 바로 그가 8,500억 원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퇴치하려고 하였던 소아마비 질병이 아프리카에서는 계속 번지고 있다는 비보였다. 작년 여름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소아마비가 2010년 4월에는 19년 동안 소아마비 사례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던 타지키스탄에서 재발하면서 소아마비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추방하려는 세계 보건 기구들의 노력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현재 소아마비를 퇴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기관은 WHO, UNICEF, Rotary International과 U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과 같은 헤비급 단체이고, 빌 게이츠가 가장 많이 기부한 분야이기도 하다. 2009년도에 빌 게이츠는 소아마비가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아프리카에 여러 번 방문하여 의사, 간호사, 자선단체 담당자 및 부족장들과의 회동을 통해서 이 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의 아프리카 방문 일정에는 나이지리아의 Sokoto라는 도시 족장과의 간담회가 잡혀 있었다. 아이패드로 책을 보는 세상에서 웬 족장이라고 묻겠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각 마을의 족장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2003년도에 북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리더들은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하면 무슬림 여자들의 생식기능이 없어진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퍼졌고 궁극적으로는 20개의 다른 개발도상 국가들에 퍼졌다고 WHO는 발표하였다. 전 세계 1,600건의 소아마비 케이스 중 과반수가 나이지리아에서 발병하였으며, 바로 Sokoto의 족장과 같은 사람들과 협심하여야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질병 퇴치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족장 또한 소아마비만을 공략하는 vertical 전략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다른 보건과 위생 문제들도 같이 검토가 되어야 합니다. 소아마비를 퇴치하려면 결핵, AIDS, 말라리아, 콜레라 등과 같은 질병들도 같이 총체적으로 퇴치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빌 게이츠 회장한테 충고하였다.

30년 전 성공적인 수두 근절 이후 대부분의 질병 퇴치 프로그램들은 vertical 전략을 택하기 시작하였으며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 또한 이렇게 진행되었으며 초기에는 대성공이었다. Rotary 클럽의 기부금을 가지고 WHO가 진두지휘하였던 이 캠페인은 1988년 350,000건이나 발생하였던 소아마비 발병 수를 2000년도에는 1,000건 이하로 줄였으며 곧 수두와 같이 소아마비 또한 교과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역사 속의 질병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소아마비는 오늘도 개발도상국에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발병 건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Sokoto의 한 보건소를 빌 게이츠가 방문할 때 발생한 일이다; 한 아프리카 아이의 예방접종 기록표를 보면서 그는 “이 아이가 디프테리아 접종을 하였나요?”라고 물어보자 보건소 당국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보건소에는 B형 간염 접종약도 없었고 황열병 접종액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보건소 밖에서는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고, 소아마비 접종액도 부족함 없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었다. 그다음 날 나이지리아의 보건당국 국장인 Pate 박사는 이러한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한 vertical vs. horizontal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를 하였다. 그의 주장은 아무리 소아마비 발병률을 줄여도, 전반적인 위생과 보건 상태를 강화하지 못하면 이러한 노력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아마비 또한 ‘교육’ , ‘질병 관리’ , ‘위생’ 등과 같이 아프리카가 해결해야 하는 큰 그림 중 하나일 뿐이지 소아마비 질병에 모든 돈과 자원을 투자하는 건 매우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라고 지적하였다.

빌 게이츠는 이러한 vertical & horizontal 전략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의 소아마비 발병 건수가 이제 거의 바닥인 이 시점에서 아프리카는 소아마비 퇴치에 모든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게 맞다고 반박하였다. 일단 시작한 거는 끝을 봐야 하며, 끝이 이렇게 가까운 시점에 중단하는 건 옳지 않으며 소아마비가 완전히 퇴치되면 그만큼 다른 질병과 전반적인 보건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이 풀릴 거라고 하였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아프리카 순회를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이미 퇴치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소아마비가 다시 발병하면서 특정 질병만을 공략하는 vertical 전략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8월에 WHO가 엄선한 질병 전문가들이 앙골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와 나이지리아에 파견되어서 소아마비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를 하였다. 전문가들의 결론은 소아마비라는 질병 자체가 인간의 배설물과 오염된 물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위생과 영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빌 게이츠를 비롯한 소아마비 퇴치에 앞장서왔던 많은 단체와 담당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과연 vertical 소아마비 전략이 최상의 방법인지를 모두 다시 한번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0월에 Gates 재단은 UNICEF, 질병관리국과 로터리 재단이 포함된 소아마비 퇴치 운동 기부자들을 시애틀 본사로 긴급 소집하여서 전략회의를 열었으며 이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곧 WHO의 새로운 전략에 반영될 것이다. 새로운 전략은 2012년 말까지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하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였으며 vertical 전략과 horizontal 전략을 적절하게 혼합한 형태의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큰 축이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전략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testbed는 나이지리아가 될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나이지리아와 인접 국가들에서 소아마비가 퇴치되느냐에 따라서 vertical & horizontal 전략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이 새로운 소아마비 퇴치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예산은 대략 26억 달러인데 현재 게이츠 재단에서 할당한 예산은 12억 달러밖에 안 된다. 물론, 빌 게이츠한테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한다면 개인 재산을 더 투자해도 되고 안 된다면 다시 모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 회장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려 하고, 이를 위해서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기꺼이 재산을 기부할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영리 프로그램을 운영함에서도 영리조직의 경영 방법과 전략들이 적용된다는 게 참으로 재미있는 거 같고 빌 게이츠같이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계속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행동하든지. 닥치든지. – Part 2

행동의 아름다움을 몸소 실천하셔서 나한테 감동을 주신 또다른 분은 내가 지금까지 블로깅을 하던 내용들과는 완전 상반되는 상당히 low-tech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맨손으로 일구어내신 분이다. 이 분에 대한 소개를 하기전에 내가 과거에 하였던 비즈니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거 같다. 뮤직쉐이크에서 일하기전에 나는 불알친구 John Nahm과 투자자문/브로커 회사인 Oceans International을 운영하고 있었다. 실은 뮤직쉐이크도 Oceans의 고객사 중 하나였는데 운이 좋아서 이렇게 엮이게 된것이다. 지금은 뮤직쉐이크때문에 잠시 나는 Oceans에서 손을 땠지만 잘나갈때 우리는 한해에 5-6개 회사의 투자 성사 및 미국 진출을 도와주고 있었다. 브로커라는 일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이걸 하면서도 나는 한국과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캘리포니아의 호두/아몬드 재배업체와 연결이 되면서 – John이 은행에서 잠시 일했었는데 그당시 고객사 였다 – 이 업체의 한국 진출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IT라는 무형자산과 넛트라는 유형자산이라는 차이가 있을뿐 본질은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을 연결해주는 업무였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두려움은 없었다. 좌충우돌하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정말로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이 우연한 기회에 대해서 또 이야기하자면 책 한권 정도 분량이 나온다 ㅋㅋ) 한국 호두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의 사장님과 연결이 되어서 우리는 캘리포니아 호두/아몬드를 한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브로커 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Oceans International과 구분을 두기 위해서 무역업무만을 처리하는 자회사인 Oceans Exports를 설립하여 이 브랜드를 통해서 무역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조금 현실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당시만 해도 우리는 Oceans란 브랜드를 삼성과 같은 문어발식 재벌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꿈을 꾸고 있었다 ㅎㅎ (물론 그 꿈은 지금도 매일매일 꾼다. 그러다가 매일 또 깨어난다.)

Anyways, 그렇게 장난삼아 시작하였던 넛트 무역 비즈니스는 해마다 double growth를 기록하였다. 첫해 우리는 한국 시장에 호두와 아몬드를 25만 파운드 정도 수출하였고 작년에는 1백만 파운드를 돌파하였다. 참고로 1백만 파운드는 대략적으로 컨테이너 40개 정도의 분량이다. TV나 자동차와 같이 크고 무거운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즐겨 먹는 너트로 40 컨테이너이니 상당한 분량이다. 아마도 알게 모르게 독자분들이 드시는 호두, 아몬드, 빠리바게트 제품 중 호두가 들어간 빵들, 호두과자 등등에 Oceans가 브로커링을 한 포션이 꽤 될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나는 길림양행 이라는 회사의 창업자이신 윤태원 사장이라는 amazing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윤태원 – (주)길림양행 창업자 및 대표이사
내 나이 또래 분들은 아마도 이 CM 송을 기억하실거다. “블루~블루~다이아몬드~~.” 가수 조영남씨가 기타를 치면서 부르던 캘리포니아 블루 다이아몬드 아몬드 선전 CM 송이다. 블루 다이아몬드사 (Blue Diamond Growers)는 미국에서 가장 큰 농업혐동조합 중의 하나이자 세계 최대의 아몬드 공급사이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위치한 본부는 11만평 규모로 20개의 빌딩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일 5천500톤 이상의 아몬드를 생산하며 매년 9만톤 이상이 세계 95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주)길림양행은 블루다이아몬드의 한국독점 에이전트이며 대한민국에 아몬드라는 제품을 처음으로 소개한 무역상사이다. 국내최초로 아몬드를 수입하며 견과류 업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호두, 건포도 등의 다양한 견과류를 수입 및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는 길림양행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오늘날 호두나 아몬드와 같은 넛트를 이렇게 다양한 맛과 형태로 즐기지 못할것이다.

때는 1982년도. 길림양행 설립자 윤태원 사장은 국내 선박회사에서 젊은 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당시 그는 회사내에서도 일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직원으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자신만의 사업을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고, 좋은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항상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농림수산부에서 근무하는 선배한테 오랜만에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왔다. 그날 저녁 그 선배는 윤사장한테 다음과 같은 귀뜸을 해주었다. “앞으로 미국과 무역관계가 개선되면서 ‘아몬드’라는 제품에 대한 수입허가가 곧 떨어질거 같다. 땅콩이랑 비슷한 넛트인데 캘리포니아에서 많이 재배되며 이미 서양에서는 고단백 저칼로리 저콜레스테롤 건강음식으로 매우 인기가 좋은 제품이다. 너 이거 한번 해볼 생각 없냐?” 재미있는 사실은 그당시 윤사장은 ‘아몬드’라는 제품을 구경한번 해본적이 없었고, 선배가 가져온 사진을 통해서 처음으로 이 요상스럽게 생긴 넛트를 봤다고 한다.

그날 밤 윤태원 사장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수년간 선박회사에서 일한 직감에 의하면 이건 하늘이 자신한테 주신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누가봐도 위험하고 미친짓임에도 틀림없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제품을 – 그것도 사람들이 먹는 식품을 – 수입해서 판다는거는 리스크 그 자체였고 한국 시장이 아직 개방된것도 아니고 아몬드를 미국 어디에서 수입을 해와야하는지도 막막한 미지수 투성이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잘만 된다면 이건 바로 일생일대의 대박기회가 아닌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건강 식품을 수입해서 time to market을 극적으로 줄일 수만 있다면 후발업체들보다 최소한 수개월 앞서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임을 또한 부인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미국 아몬드 업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있었던때가 아니라 그는 미국에 국제전화를 해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아몬드 재배업체가 Blue Diamond Grower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회사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밤을 꼴딱 새고 그 다음날 윤태원 사장은 선박회사에 시골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고 일주일 긴급 휴가를 신청하였다. 같은날 몇 시간 후 그는 서울발 캘리포니아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운전해서 새크라멘토 블루다이아몬드 본사로 찾아간 윤사장은 본인 소개를 하고 앞으로의 한국 시장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블루다이아몬드 아몬드에 대한 한국 독점 유통권을 다짜고짜 자신한테 달라고 하였다. 솔직히 지금같으면 100% 문전박대 당해야하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 당시 미국인들한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지금과 같이 눈부신 발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블루다이아몬드 사장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한국에서 단숨에 미국으로 날라온 이 젊은이한테 흔쾌히 한국 독점 유통권을 주었다. 윤사장은 이 계약서를 가지고 한국으로 귀국해서 향 후 몇개월 동안 선박회사를 다니면서 밤에 회사 설립 준비와 아몬드 시장 공부를 틈틈히 하였으며, 선배의 말대로 얼마 안있어 한국은 1982년도에 캘리포니아 아몬드에 대해서 시장을 개방하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윤사장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길림양행의 모체가 된 (주)길상사를 설립하고 블루다이아몬드로부터 아몬드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시장이 개방되었지만 전면개방이 아닌 quota 기반의 개방이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양의 아몬드를 수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직 조성되지 않았었다. 그해 길상사는 미국으로부터 블루다이아몬드 아몬드 5 컨테이너를 대한민국 최초로 수입을 하였다.

자, 이제 28년을 앞으로 돌려보자. 2009년도 길림양행은 캘리포니아로부터 약 300 컨테이너의 아몬드를 수입하였고, 매출 400억원을 달성하였다. 아몬드가 땅콩인지 호두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던 젊은이가 28년전에 맨땅에 헤딩해서 설립한 작은 무역상사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결과가 아닌가?

Part 1의 호리 회장도 대단하시지만 길림의 윤사장님은 어떻게 보면 더욱 더 우리에게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걸 잘 시사해주시는 분이다. 지금은 건강상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셨고 그 아드님이 길림을 경영하고 있는데 올해 매출 500억원은 무난히 달성할거라는 귀뜸을 전에 한번 해주신 적이 있다. 우리 주위에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더욱 많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배울점이 많은 분들도 간혹 만날 수 있다는게 인생의 묘미이자 축복인거 같다. 솔직히 넛트 수입해서 가져다 파는건 나나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독자분들이 involve되어 있는 최첨단 산업과는 완전히 다른 low tech industry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이런 무역업을 하시는 분들을 무식하고 못배웠다고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어릴적에는 그랬으니까. 연봉 1천만원 받아도 무역상사보다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는게 내 명예나 가오를 위해서는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을때가 있었으니까…

대한민국은 Yoshito Hori나 윤태원같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요새같은 시대에는 양놈들이 말하는 소위 “walk the walk”를 할 줄 아는 진국들이 더욱 더 필요하기에 이 두분들의 개인적인 인생 스토리를 이 미약한 블로그를 통해서 살짝 소개해봤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겨라. 그렇게 못할거 같으면 정말 제발 잘난 주둥이는 닥치는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행동하든지. 닥치든지. – Part 1

2008년도 초,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US를 맨땅에서 시작했다. 매출 빵원 회사를 2년만에 월매출 수천만원 회사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super team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점과 아직 그 팀원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게 오늘따라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미국에서 2년 반동안 뮤직쉐이크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인터넷 비즈니스와 엔터테인먼트 분야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만났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걸음마 단계의 비즈니스를 두발로 일어설 수 있게 하려고 이사람 저사람 닥치는 대로 연락도 해보고 소개도 해서 만났던 수천명 사람들의 명함을 얼마전에 쫙 정리를 하였다. 그 중에는 지금은 실리콘 밸리에서 상당한 슈퍼스타들이 된 Zynga의 Mark Pincus, 구글의 Marissa Mayer, TechCrunch의 Michael Arrington, imvu의 Cary Rosenzweig, Smule의 Jeff Smith, AdMob의 Omar Hamoui,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흑인 가수 MC Hammer 등이 포함되어 있다. 2년전만해도 즉석에서 연락해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연락 조차 잘 안되는 잘나가는 유명인사들이 된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나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평가를 요 몇일동안 상당히 많이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내가 미국에서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 부류는 입으로 일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즉, 말만 많고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들과 겉으로는 show off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알짜배기 사람들이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내 주위의 99% 사람들은 주둥이만 놀리는 놈들이다. 아마도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거 같다. 인생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만 하지 직접 뭘 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들로 바글바글하니까…오늘도 나는 이런 쓰레기 2명과 미팅을 하였다 (아 씨…시간 아까워).

Mr. A: 아 그사람? 제가 잘 아는 사람이죠. 제 대학 동긴데 학교 다닐때는 별거 아니었는데 지금 엄청 잘 나가요. 우리 외삼촌이 그회사 부사장이라서 그 회사에 대해서는 제가잘 알죠.
(A씨는 주위에 잘나가는 사람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거 같다. 문제는 본인은 전혀 못나간다는 점이다. 즉, 지는 별볼일 없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잘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데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다.)
배기홍 (속으로): 씨발. 근데 어쩌라고? 너는 모하는데?

Ms. B: 지금 개네가 하는 비즈니스를 내가 5년전에 생각했던 건데. 아 진짜 아깝네…누가 그렇게 잘 될줄 알았을까. 내가 학교 다닐때 친구들이랑 생각했던 아이템이 이건데 바로 똑같은 아이템으로 지금 이 회사가 수백억월을 벌고 있다니까..
(B양은 무슨 회사 이야기만 나오면 그 회사의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자기가 전에 생각했던거라고 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즉, 지는 뭐하나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배기홍 (속으로): 씨발. 근데 어쩌라고? 그럼 니가 해보지?

내 주위 99%의 사람들이 A씨와 B양과 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솔직히 짜증이 좀 많이 난다. 그 잘난 주둥이를 나불나불 거릴 시간에 하나라도 한번 직접 몸으로 해봤으면 지금쯤 훌륭한 사람들이 됬을텐데…오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행동하는거란 과연 무엇인가를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나랑 각별하게 친한 두 사람에 대해서 몇마디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이 사람들 말고도 이 세상 1%의 행동가 중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entrepreneur들이 다 이 1%에 속한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내가 아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여기서 내가 소개하는 이 두분들이야말로 행동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아주 생생하게 나한테 보여준 분들이며 지금도 나는 일을 할때 항상 이 분들의 젊었을때의 용기와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inspiration을 많이 받곤 한다.

Yoshito Hori – Founder and CEO of the Globis Group
나는 요시토 호리 회장을 2000년도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스탠포드 대학 아시아 학생회에서 돌아가면서 아시아 출신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맨들과 entrepreneur들을 초청해서 강연의 자리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의 스피커 중 한명이었다. 그당시에는 글로비스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이분의 몇가지 강연 내용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었다. 그 중 하나가 글로비스가 일본 회사지만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진출할 기회가 생기면 본사를 일본이 아닌 한국에 설립하겠다는 주장이었다. 그당시 대부분의 회사들은 아시아 본부를 싱가폴이나 홍콩에 설립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한국과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dynamics에 대한 예찬을 하였다. 한국 사람을 칭찬하는 일본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라서 나는 강연이 끝난 후 호리 회장한테 다가가서 나를 소개하고 그 이후 계속 이메일로 연락을 하면서 지냈었다. 그리고 세상이 참으로 좁다는걸 다시 한번 느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근무하였던 자이오넥스라는 한국의 벤처 기업의 최대 투자자가 요시토 호리 회장이라는 점이었다. 하여튼 호리 회장과 나는 그동안 약 10년동안 알고 지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였고 서로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직간적접으로 아는 사이고 뭐 이렇게 엮인 부분들이 많았던 분이다.

Anyways, 요시토 호리는 1992년도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MBA를 땄다. 그는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를 공부하면서 대부분의 수업에서 활용되는 Harvard Case Study에 상당히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 상황에서 벌어졌던 비즈니스 케이스들을 전략, 마케팅, 영업, 리더쉽 등등의 각기 다른 분야로 분류한 후에 학생들한테 케이스를 읽게 만들고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니?”라는 질문을 하면서 학생들을 실제 경영자 입장의 위치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방식이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그로써는 매우 신선하였으며 그는 이러한 케이스 방식을 일본의 교육에 접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하게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HBS 관계자들을 찾아가서 일본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 분교를 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였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하였다. 하지만 HBS는 호리에게 하버드의 case study에 대한 일본 유통권을 주었다. 물론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HBS에서 분교를 만들기 싫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는 미국의 케이스 방식을 활용한 자신만의 일본식 경영대학원을 일본에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쭈욱 할 계획이면 해외유학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학교를 계속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본에서 인맥을 쌓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인이나 한국인들같이 해외 유학을 가는 일본인들은 그렇게 많지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나도 스탠포드나 워튼 다닐때 한국 유학생들에 비해서 일본인들의 수는 매우 적었던게 기억나는데 아마도 이러한 이유때문인가 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굳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고 유학의 길에 오르는거 보다는 일본 현지에서 full-time 또는 part-time으로 다닐 수 있는 MBA 프로그램이 일본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더 맞을거라는 생각을 그는 하였다.

하지만 졸업 후 일본으로 귀국한 호리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MBA 학위와 하버드 케이스 스터디 유통권을 제외하고 그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달랑 $7,000이었다. 특히 시대적으로는 일본의 경기는 망가질대로 망가졌고 젊은이들한테는 꿈조차 없던 암울한 시대에 그는 귀국을 한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일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 본인의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선배의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하며 Globis MBA (Globis Management School – GMS) 경영 대학원에 대한 찌라시와 브로셔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당시 일본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한테 우편으로 보내고 전화로 follow up을 하였다. 초기 반응은 당연히 매우 부정적이었다. 듣도보지도 못한 젊은이가 경영대학원을 운영한다며 일본 유수 대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니 나같아도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었을거다. 인사담당자들은 유명한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하버드 케이스 스터디를 가지고 실전경영학을 가르쳐줄거라고 예상을 하였지만 막상 강사진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면, “제가 직접 가르칩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브로셔 발송과 cold call을 한 지 몇개월이 지났다. 한명의 학생이라고 나타나기면 하면 성심성의껏 본인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모두 가르쳐 줄 준비가 되었지만 아직 그 누구한테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물론, 초기 자본금 $7,000은 거의 바닥이 났다. 그래도 호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브로셔와 커리큘럼을 잘 포장하여 대기업 인사담당자들한테 보냈고, 전화를 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열성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렇게 몇개월을 노력하니…하늘도 이 젊고 포기를 모르는 일본인을 가엽게 여기셨는지 일생일대의 기회를 주셨다. 마침 일본 최대의 통신회사인 NTT의 인사 담당자가 NTT의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미국식 MBA 야간 교육 과정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와중에 호리가 보낸 찌라시를 우연한 기회에 보게되었고 그는 Globis에 문의전화를 하였다. 호리가 믿을만한 젊은이임을 확인한 후에 흔쾌히 NTT 중역 20명을 Globis Management School의 첫 수강생으로 등록을 시켰고 호리는 동경 시부야의 작고 허름한 강의실 빌려서 2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그가 지금까지 HBS에서 배운 내용을 죽을 각오로 자신보다 20~30살이나 더 많은 일본 노인네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였다. 아시아 스타일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던 NTT의 일본 중역들은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케이스 방식을 접하게 되었으며 호리는 강의실 중앙에서 아주 훌륭한 orchestrator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시부야의 허름한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던 글로비스의 첫 수업은 대성공이었고 NTT의 인사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회사 간부들의 글로비스 경영대학원 장기 계약을 하였다. 글로비스 MBA 프로그램에 대한 입소문이 드디어 일본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우리가 영어로 흔히 말하는…and the rest is history 이다.

그 이후로 10년을 fast forward 해보자. 2006년도 말 Globis Management School은 한 학기에 2,000명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대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학교를 다니지만 학생 중 10%는 full-time으로 학교를 다니는 개인 사업자들이다. GMS의 학생들은 첫 고객인 NTT를 포함한 약 250여개 일본 대기업의 직장인들이다. 나도 동경 한복판의 금싸가리같은 땅에 위치한 글로비스의 본사를 2번 방문하엿는데 빌딩 시가만해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내가 갔을때는 MBA 수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미국 MBA 강의실을 본떠서 만든 계단형 원형 강의실에서 직접 강연하는 호리 회장과 그를 아주 열정적으로 청강하고 수업에 참여하였던 일본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호리 회장은 그동안 MBA 프로그램과 더불어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벤처 캐피탌업이다. 그는 글로비스의 브랜드하에 1996년도에 50억원 규모의 Globis Capital Partners라는 VC을 launch하였고 1999년도에는 영국의 Apax Partners와 공동으로 2,000억원 규모의 fund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Globis Capital Partners는 1999년도에 일본식 회계 소프트웨어 벤처인 Works Application에 40억원을 투자하였는데 이 회사가 2002년도에 JASDAQ에 상장하면서 투자금액을 11배수에 회수하면서 초대박이 났다. 그외에 Globis Capital Partners는 Afro Samurai 애니매를 제작한 Gonzo Digimation, 일본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Gree 및 Clara Online과 같은 다양한 벤처기업들에 투자를 하였다. 호리 회장은 Globis의 벤처 투자와 성공 케이스를 통하여 더 많은 학생들이 Globis MBA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MBA 학생 중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MBA 강의실 바로 위층에 있는 Globis Capital Partners를 통해서 투자를 받을 기회를 갖을 수 있게 된다. 참고로 그는 MBA와 관련된 책을 또한 몇 권 출간하였는데 이 책들이 모두 일본에서 best seller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entrepreneur 중 한명이자 VC 이기도 하며, 아시아의 경제 발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visionary로 인정받고 있다.

호리 회장의 창업 스토리는 나한테 정말로 많은걸 느끼게 하였다. 인생은, 특히 비즈니스는 이렇게 해야하는거 같다. 호리 회장은 말을 많이 아낀다. 항상 남이 말하는걸 듣는편이지 본인은 정작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우리에게 많은걸 보여준다. 1992년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불가능하다고 욕을 하였던 일본식 경영 대학원의 설립을 혼자서 맨손으로 성공시켰던거와 같이…

나도 맘먹은게 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 전에 블로그에서 한번 mention하였지만 한국에서 나는 미수금을 받기위해서 거래처 사장의 면상에 식칼을 들이대민적도 있다. 가끔씩 와이프가 우스개소리로 (I really hope it’s 우스개소리..)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오빠가 내편인게 참 다행이다. 내 매니저나 또는 적이었다면 인생 피곤할거야…”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가끔씩 이런 말을 한다. “I am glad we are on the same boat. 너를 적으로 두고 비즈니스 해야한다면 인생 정말 우울할거야…”

이 말들이 과연 좋은 말들인가? 좋게 보면 좋은 말들이지만 어떻게 들으면 내가 인생을 참 냉정하고 병신같이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들이기도하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뭔가를 보여주고싶다면 행동으로 보여줘라. 그렇게 못할거 같다면 잘난 주둥이는 영원히 닥치고 있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