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이제 정말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다시 많이 듣기 시작했다. 실은 과거에도 비트코인은 죽었고, 다시는 예전같이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 말이 모두 다 사실이었다면 비트코인은 최소 5번은 죽었을 것이다. 나도 전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로 이번엔 비트코인이 끝났다는 의심을 한 적도 있는데, 이젠 그렇게 신경 쓰진 않는다.
최근에 이 말이 다시 나온 이유를 자세히 보면, 정말로 이번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자산에 큰 위기가 온 것 같고, 비트코인 사망설이 안 나오면 이상할 정도로 시장은 바닥을 향해서 가고 있다. 권도형 씨의 테라-루나 참사를 시작으로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인 Celsius Network가 파산했고, 이후에 암호화폐 헤지펀드 3 Arrows Capital도 파산했다. 모두 다 깊게 연관된 사업이라서 줄줄이 파산했는데, 그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파악 중이지만, 그냥 사업을 잘 못해서 파산한 것 이상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결정적인 파산 원인은 투명성의 부재, 창의적인 회계(=회계 부정), 그리고 경영진의 탐욕이다.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이 되고, 작은 실수가 큰 사기가 된, 전형적인 폰지 스킴의 냄새가 나는 사기성이 짙은 경영진의 부도덕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세계 3대 거래소인 FTX가 파산했는데, 이건 타격이 큰 사고다. FTX의 대표 SBF(Sam Bankman-Fried)가 이 분야에서 워낙 영향력이 있었고, 재계와 정계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제2의 JP Morgan이 되려는 꿈을 하나씩 실행하는 걸 보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사건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데, 불투명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를 하나씩 풀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다. 다만, SBF는 언론에 비쳤던 그런 인류의 구세주가 아니라 세기의 사기꾼으로 점점 더 몰리고 있고, 정황을 대략 보면 그의 FTX 왕국에서는 일어나선 안 될 말도 안 되는 부정, 부패와 사기가 판을 쳤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여파는 계속 커질 것이다. 이미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의 큰 손 Genesis가 파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고, 더 끔찍한 건 Genesis를 소유하고 있는 DCG(Digital Currency Group) 또한 위험하다는 소문이다. DCG가 만약에 망하면, 암호화폐 시장은 겨울에서 빙하기로 바뀔 것이고, 다시 봄이 오기까진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보면, 이제 정말로 비트코인은 끝났고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 생각은 실은 그 반대이다. 위에서 나열한 사건, 사고들은 암호화폐의 문제라기보단, 특정 회사와 그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들의 문제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중앙화/탈중앙화된 새로운 형태의 금융 비즈니스 모델의 실패이자, 비즈니스 투명성의 실패이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금융 사기의 문제이다. 최근에 워낙 큰 사고들이 많이 터져서, 이렇게 비트코인과 이런 사고들을 분리해서 보는 게 쉽진 않지만, 명확하게 분리해서 볼 수 있는 냉정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음주하고 운전한 드라이버를 탓해야지, 자동차 자체를 탓하면서 자동차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그건 이해가 가는데, 왜 맨날 암호화폐 쪽에서만 이런 대형 사고가 터지나요?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는데, 왜 이 바닥에서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가 반복되나요?”라고 물어보면, 나도 할 말은 없다.
Yong-Luna (@hm6031FxWnhhPe4)
제도없이 급격하게 성장한 만큼 틈이 있었고 결국 무너졌죠. 하지만 이를 반면교사 삼아 다음 봄을 더욱 견고하게 준비할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Kihong Bae
저도 굳게 믿습니다 🙂
익명
비트코인 좀 더 죽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더 사게 ㅋㅋ
Kihong Bae
저도 더 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생각보다 resilient 하네요 🙂
Ajotsee (@ajotsee_kr)
금은방이 몇 개 망했다고 금이 망하는건 아닌거죠 ㅎㅎ 좀 금은방 규모가 크긴 했습니다만. 비유입니다.
Kihong Bae
네, 굉장히 큰 금은방입니다 🙂
익명
늘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또한 이번 사건이 블록체인 산업의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난 2018년 기사/글을 읽더라도 지금과 정말 똑같은 반응와 이야기 뿐이더라구요.
다만, 왜이렇게 암호화폐 쪽에서만 이런 대형 사고가 많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화폐”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기술에 대한 Hype이라면 AR/VR 또는 최근의 AI와 같이 몇 몇 기관만 투자금 날리고 끝났을 것 같은데, 금융에서 출발했다 보니 금융의 역사에서 보았던 수많은 사기들이 모두 관찰되고 있습니다. 다만 수 백년간 축적되어온 금융 사기가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단 10년 동안 모두 벌어지고 있고, 이전의 상처가 씻기기도 전에 (규제가 없어) 또다른 사기를 만들기가 너무도 쉬운 환경입니다.
또한 금융 사람들이 처음에 진입했다 보니, 파생상품의 세계마냥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보입니다. 100억을 넣었을 때, 다른 기술회사라면 2년 정도에 100억 날리고 끝났을 것을 암호화폐 시장은 100억을 가지고 100배 레버리지, 또는 또다른 public initialing을 하다가…. 더 큰 피해를 만들 수 있어 보입니다.
특히나 리테일과 엮여 있기 때문에 더 빠르게 많은 자금이 들어왔다가 날아가는게 실시간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Kihong Bae
좋은 의견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화폐” 부분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합니다. 다만, 아직 화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고, 지금은 오히려 어정쩡한 화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damage가 큰 것 같네요. 제대로 된 화폐면, 제대로 규제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사고가 터져도 조금은 더 관리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태/사고/범죄로부터 배움을 얻고, 이 분야가 계속 깨끗하게 정화되길 바랍니다!
익명
국가란게 왜 생겼고, 법이란게 왜 생겼는지 생각해보면, 탈중앙화된 시스템에서 사기가 없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