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였지만 실리콘 밸리는 모든 창업가들이 꿈꾸는 꿈의 구장이자 동시에 실패의 계곡 (valley)이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 대학 4학년때 만든 회사가 1년 만에 수천억원에 야후한테 팔렸고, 그냥 사이드로 밤마다 만든 소셜 게임이 앱 스토에서 대박이 나서 얼마 후에 굴지의 게임회사한테 수백억원에 팔린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들. 정말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이야기이며, 나같은 사람은 이런 꿈같은 이야기가 언제 나한테는 현실로 다가올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냉혹하다. 이런 행복한 이야기 하나당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99개, 아니 999개의 실패한 실리콘 밸리의 어두운 스타트업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어쨌던간에 전세계 그 어느 곳보다 실리콘 밸리는 철저한 능력위주의 사회이다 (meritocracy). 이 동네에서는 창업가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그 사람이 남자던 여자던, 백인이던 흑인이던 아시아인이던 이런 성별이나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디어만 좋고, 그 아이디어를 잘 실행한다면 신체적 조건이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게 바로 실리콘 밸리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정말 구역질나게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는게 이 동네의 매력이다.
과연 그럴까? 실리콘 밸리는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그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곳일까? 오늘은 tech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끈임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창업: 남자 vs. 여자”라는 주제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먼저 몇가지 숫자들을 검토해보자. 최근 30년 동안 여성들이 창업하거나 경영하고 있는 사업들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남성들보다 여성들은 이 기간동안 2배나 더 빠른 속도로 창업을 하였고, 이에 따른 고용 창출과 매출 신장은 전반적인 미국 경제 성장 속도와 규모를 능가하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여성들의 비즈니스는 규모면에서 남성들의 비즈니스보다 훨씬 작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2008년도 숫자를 보면 여성 비즈니스의 평균 매출은 남성 비즈니스의 매출의 27%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많은 남성들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숫자들이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절대절명의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고 한다: 즉, 여자들은 유전자적으로 창업의 리스크를 감수할 준비가 안되어 있고, 창업을 해도 남성들만큼 조직 경영 능력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막말로 우리 남자들이 하는 표현인 “기집애들은 안돼. 그냥 살림이나 해야해.” 정도?
그렇지만, 여성들이 유전자적으로 비즈니스와는 맞지 않다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논리와 데이터가 너무나 약한거 또한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년 매출 10억 이상 하는 회사 중 250,000개가 여성이 창업하였거나 CEO이며 이 중 수백억의 매출을 하는 회사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런걸 보면 여성들도 비즈니스를 키우고 운영할 비전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대학교와 대학원 여자 후배/동기/선배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그 중에서는 정말 대차고 똑똑한 여성들이 많이 있었고 지금도 다들 나름대로 모두 한따까리 하는 위치까지 올라간 사람들도 많다.
University of Maryland 교수이자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는 Sharon Hadary 교수는 여성들의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상대적으로 약한 입지는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첫번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남성들로 바글거리는 비즈니스와 정부 시스템에서 여성을 보는 고정관념과 편견이다. 두번째 이유는 바로 여성들이 스스로를 구속하는 굴레와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격지심 때문이라고한다. Hadary 교수는 이러한 이유들을 조금 더 자세히 분석하는데 여성들의 창업을 방해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마인드와 목표 – 남성들이 창업하는 이유와 여성들이 창업하는 이유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남성들은 창업하는 이유가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고 내가 내 스스로의 보스가 되기 위해서 창업을 하며, 일단 창업을 하면 그 순간부터 비즈니스의 목표는 가장 짧은 기간안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성들은 창업하는 이유가 스스로에게 동기유발을 하기 위해서이며, work and family를 적절히 잘 조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일단 창업을 하면 여성 창업가들은 고속 성장보다는 일과 가정 생활이 방해 받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비즈니스를 유지하는데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여성들이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창업하는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이 가장 크다고 한다. 여성 창업 센터나 창업 세미나에 가보면 대부분의 교육 내용은 비즈니스를 키우려면 회사를 어떻게 관리해야하는 점들 보다는 어떻게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시작했으면 어떻게 소규모로 운영하고 관리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창업을 해서 회사가 특정 시점과 규모를 넘어서면 그 이후에는 비즈니스를 어떻게 운영해야하는지 전혀 개념이 없다.
2. 부족한 자본 – 일단 기본적으로 창업을 함에 있어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절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상태로 시작을 한다.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소매업이나 서비스업으로 창업을 하는데, 그만큼 초기 비용이 필요 없는 만큼 이러한 비즈니스들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왜 남성에 비해서 여성들은 자본이 부족할까? Hadary 교수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여성들의 잘못이 크다고 한다. 다양한 연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여성들은 “빚”을 아주 나쁘게만 보는 경향이 있어서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향 후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면 은행으로 가기 보다는 현재 비즈니스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사업 확장에 재투자 하려고들 하는데 이럴 경우 그 한계점은 명확하게 존재한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여성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상대와의 원활한 관계 형성 능력인데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은행원들과의 관계 형성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많은 여성 기업가들은 중소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은행의 융자 상품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거나, 남성들에 비해서 그 활용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 특히 백인들보다는 유색인종의 여성 – 은행에서 융자를 신청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신청을 해도 승인을 받을 확률이 매우 낮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융자 신청을 하지 않는 여성 창업가들이 늘어나고 있고, 융자 신청을 하더라고 최소 금액만을 신청한다. 이렇게 되면 또 자본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사업 확장에 한계가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된다.
3. 시장 접근성의 어려움 – 이 부분에 있어서는 Hadary 교수는 미국 사회와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성장 기회는 대기업의 프로젝트 수주 또는 정부 프로젝트 수주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젝트의 입찰 과정에서 업계의 입장은 여성이 운영하는 회사는 남성이 운영하는 회사에 비해서 performance가 떨어지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항상 남성이 운영하는 벤더한테 수여되기 마련이다. 실제 데이타를 분석해보면 여성이 운영하는 회사의 정부 프로젝트 수주율은 매우 낮다.
보통 이러한 기업 프로젝트들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하나의 벤더가 모든걸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 벤더와 (을) 그 밑에 줄줄이 엮인 용역회사들이 (병) 일종의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는데, 여성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하나의 방도로 미국 정부는 기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컨소시엄에는 반드시 여성이 운영하는 용역회사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칙을 박아놓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주 벤더가 프로젝트를 수주한 후에 여성이 운영하는 용역회사를 컨소시엄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현상이 매우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정부 프로젝트에도 이러한 케이스는 예외가 아니다. 15년 동안 정부 프로젝트의 5%는 반드시 여성들이 운영하는 기업한테 가게 되어 있는데 이 규정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Hadary 교수는 말을 한다.
4. 네트워크의 부재 –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던, 식당을 하던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서 네트워크 만큼 중요한게 있을까? 시장 동향, 영업 소식, 키맨들과의 관계 형성 및 벤처캐피탈/투자자들의 폐쇄적인 커뮤니티로의 진입…이 모든걸 제공하고 가능케 하는것이 네트워크이다. 하지만, 남성들에 비해서 여성들은 이러한 네트워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솔직히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여성들은 이러한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해서 남성들만큼 인식하지 못하는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네트워킹 행사에 –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 – 가면 여자들을 찾을 수가 없다. 항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이렇게 여성들은 네트워킹에 관심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남성들이 갖게 되고, 그 결과로 인해서 여성들이 네트워킹을 하려고 하면 많은 남성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극단적인 케이스는 그냥 대화에서 여성들을 단절시켜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더 많은 여성들이 창업 하고, 더 많은 여성들이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걸 방해하는 요소 중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한계도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문제점들도 있다는게 Hadary 교수의 주장이다. 그래도 전반적인 결론을 내려보면 여성들이 비즈니스 세계에 입문하고 입문한 후에 성장하는걸 방해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말인데 TechCrunch의 창업자 Michael Arrington은 이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 아니, 조금 다른게 아니고 완전히 극단적으로 다른 – 입장을 취한다.
Wall Street Journal의 칼럼니스트인 Rachel Sklar는 실리콘 밸리는 여성들이 창업하는걸 장려하는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수 년동안 해오고 있다. 특히 TechCrunch와 같은 IT 행사의 key speaker나 발표자들을 보면 90% 이상이 남성인점을 지적하면서 IT 바닥의 여성 창업가 부족 현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Michael Arrington의 반박은 (솔직히 논리적인 반박이라기 보다는 거의 면상에 대고 “Fuck You BiAtch!”라고 하는거 같지만):
-여성 스피커를 찾고 싶다.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일단은 스피커할만한 여자들이 없다. 찾는다해도 많은 여성 창업가들이 무대위에 올라가서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걸 꺼려한다.
-우리도 제발 여성 창업가들의 무용담을 TechCrunch를 통해서 공개하고 싶다. 근데 없는걸 어떻하냐고? 눈을 씻고 봐도 제대로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는 여성 창업가들을 찾을 수가 없다.
-여성들은 유전자적으로 risk-taking을 할만한 위인들이 못된다. 이건 여자들 스스로 인정한다.
-Michael Arrington의 여성창업가들에 대한 충고; “Sklar와 같이 실리콘 밸리에 여성 창업가들이 너무 없다는 불평을 하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냥 ‘인생 한번 사는건데’하고 창업을 행동으로 옮기는 여자들이 있다. 실리콘 밸리는 후자의 여성들을 더 필요로 한다. 그리고 여성동지들이 정말로 이런 의지로 창업을 한다면 TechCrunch에 연락해라. Top 기사로 온천하에 공개해 주겠다.”
Gyuchulcho
마이클 애링턴의 말이 참 인상적이에요. 여성계를 향해 저렇게 노골적으로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게 부럽네요.
KB
안녕하세요. 좋고 정성스러운 댓글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때도 캠퍼스는 말씀하신 분위기와 비슷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는게 좀 안타깝습니다. 국내 대학생들의 role model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Trust Hoon
안녕하세요 늘 좋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어느덧 이 블로그를 following한지도 1년이 다 되가는군요 저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며 현재는 미국 California로 교환학생을 와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친구와 함께 창업을 하여 현재 회사는 프로그램개발이 완료단계에 있으며 VC로부터 fund raising을 위해 컨택중에 있습니다. 여성기업가 얘기가 나와서 제 경험을 잠깐 쓰자면 경영학을 전공하기에 주위에 같은 전공의 많은 여성경영학도들을 만나왔지만 창업을 희망하는 친구는 정말 드물었습니다. 리스크를 감수하길 원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구요 특히 사업을 하고자 희망하는 젊은 여성경영학도들도 큰 회사보다는 돈 많이 벌어 몫 좋은데 식당하나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대다수입니다. 물론 걔중에는 저희 회사의 실질적인 CEO를 맡고 있는 친구와 같이 배짱 두둑하여 큰일 한번 벌이고 싶어하는 이도 있지만 정말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실상 미국의 얘기가 아닌 한국의 대학현실을 보자면 소위 한국에서 잘나간다는 대학에 다니는 경영학도들은 성별을 떠나 오히려 더 심할 정도로 employee의 삶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좋은 직장에 대해 조금이나마 유리한 위치에 있기에 그것이 자신의 career goal설정에 안좋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구요. 얘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다시 한번 늘 좋은 글들 잘 읽고 있고 Musicshake US의 화려한 exit과 더불어 더 멋진 글들로 국내대학생들의 role model이 되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