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다시 LA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몇 자 적어본다. 한국에 있는 동안 서점에도 가보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태블릿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유심히 관찰도 해봤는데 미국과는 많이 다르게 이북을 읽는 광경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라는 말까지 있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토록 편하고 ‘가벼운’ 이북이 아직 보급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는 약간은 알 것 같다. 몇 일 전에 YES24를 통해서 이북 구매를 시도해본 나의 불편했던 이야기를 공유해 본다.

[스타트업 바이블]이 YES24에 이북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출판사를 통해서 들었다. 이제 왠만하면 종이책을 구매하지 않는 나로써는 당연히 스타트업 바이블 이북은 어떨까라는 호기심에 바로 구매해 보기로 했다.
일단 이북 독서를 위해 최적화되어 있는 iPad용 YES24 이북 전용 리더가 없다는 점에 매우 실망했다. 갤럭시탭용 이북 리더는 있으면서 아이패드 앱이 없다는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뭐 한국이니까 그렇겠지 하고 아이폰용 YES24 앱을 설치 하고 이 앱을 통해서 이북을 구매해봤다. 경험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아니, 결제하기 전까지의 경험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신용카드 결제를 하려고 보니 사용가능한 카드가 ‘BC카드’ ‘국민 카드’ ‘삼성카드’ 등 국내 카드 몇가지 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한국 카드인 ‘외환 마스터카드’도 카드 리스트에 없었다. “이런 제기랄…역시 이런식으로 밖에 못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해외 카드는 전혀 없고, 심지어는 국내 카드도
다 나열되어 있지 않다

다른 이북같으면 여기서 욕하고 그냥 안 샀을텐데 그래도 내 책이니까 사야겠다는 집념에 노트북을 켜서 브라우저를 열고 YES24 사이트에 접속했다.
일단 회원 가입을 해야했다. 실명확인이야 우리나라 법이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이 또한 유저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매우 귀찮고 짜증나는 단계이다. 인터넷 비즈니스나 웹서비스를 잘 사용하지 않는 정부 담당자들이 만든 불필요한 정책이라는게 매번 느껴진다.

그리고 나서 아이디 만들고 해야하는 ‘아이디 중복확인’에 다시 한번 짜증이 났다. 아이디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확인해주는 흐름을 타야하는 대신 유저가 아이디를 입력하고, 다시 한번 수동으로 ‘중복확인’ 버튼을 눌러야 한다. 유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런 user experience 디자인이 도대체 어떻게 나왔을까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뻔하다. 웹서비스 기획하는 인간들이 아무 생각도 없고 게을러서이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까?”를 24시간 내내 생각하는 미국의 product manager들과는 달리 YES24 기획자들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매우 힘들고 귀찮게 여러가지 정보를 입력하고, 회원등록을 마친 후 나는 드디어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창이 떴다.

카드사 및 PG사의 사정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 외 브라우저에서의 카드결제 서비스가 일시 
중단됩니다. 카드결제 주문을 원하시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이용해 주세요.

과연 일시 중단일지 아니면 원래 안되는건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이 또한 서비스 기획자들의 아무 생각없고 나태한 자세 때문이다.

아씨…이제 오기가 생겨서 IE를 열었다. 결제를 하려고 하니까 ‘안심클릭 플러그인’ 설치 팝업.

설치하니 이번에는 ‘이니시스 플러그인’ 설치 팝업.

자, 그러고 나니 브라우저를 다시 refresh/resend함. 당연히 지금까지 입력했던 정보 다 날라가서 다시 입력.

[Retry] 누르니 다시 한번 ‘안심클릭’과 ‘이니시스’ 플러그인을 설치하라는 창이 떴다. 화가 정말 났지만 꾹 참고 다시 설치했다.

[OK] 누르니 영문 Windows에서는 보이지 않는 깨진 글씨로 뭔가 깔렸다.

‘이니페이’ 설치 하니 뜨는 다음과 같은 팝업.

드디어 신용카드 정보 입력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었는데 역시 영문 Windows라서 그런지 글씨가 다 깨졌다. 정보 입력하는 칸들도 다 밀려서 글씨가 잘 안보였지만 몇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냥 대략 guess하면서 계속 진행시켰다.

아, 그러자 또다시 뜨는 팝업 창.

이 후 또 뭔가를 설치했어야 한다면 나는 아마도 포기하고 몇일 후에 다시 한번 시도를 했을텐데 다행히 이 정도 하니 구매에 성공했다.

iBooks와 Kindle에 익숙한 나로써는 2-3번 클릭을 통한 쉬운 구매를 예상했었는데, 소중한 휴식시간의 45분을 이북 구매에 허비한 것이다.
그런데 이북 하나 구매하는게 정말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워야 하는 것일까? 돈을 쓰겠다는 고객을 이런식으로 짜증나게 하고 열었던 지갑을 다시 닫게 만드는 YES24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eCommerce 서비스들은 정말로 반성을 해야한다.
솔직히 좋은 사용자 경험 환경을 제공한다는게 그리 어려운거는 절대로 아니다. 본인들이 유저의 입장에서 물건을 한번만 구매해 보면 답이 나오는건데 내 생각에 YES24.com 서비스를 만든 기획자/엔지니어/디자이너들은 사이트를 만들어 놓기만 했지 실제로 사용해보지는 않은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허접한 구매 프로세스가 구현되었을리가 없다.
YES24와는 달리 Amazon을 이용하면 이북 구매에 걸리는 시간은 3분이 채 안된다. 참고로, 이북 구매는 아니지만 아마존 UI/UX의 훌륭함은 조성문씨의 블로그 ‘아마존(Amazon) 유저 인터페이스 분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추가하자면, 이북 자체의 quality 또한 Kindle용 이북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

전세계에 가장 많이 보급된 태블릿인 iPad용 이북 전용 리더의 부재  (제3자가 아닌 YES24나 교보문고 같은 서점에서 직접 제공하는), 매우 불편하고 복잡한 이북 구매 프로세스, 그리고 종이책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이북의 quality.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직 한국에서는 이북이 대중화되지 못한거 같다.
하지만, 전에 내가 쓴 ‘종이책의 종말 – Get Ready for eBooks‘에서 강조하였듯이 종이책에서 이북으로의 전환은 기정사실이며, 단순한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YES24는 이북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재디자인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