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내 페이스북 친구가 wall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미국에 와서 밤에 일하기를 매우 즐기고 있는데 밤에 일하는 기분이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며 다시 느꼈는데, 여기서는 해가 지면 집중이 되며 정신이 맑아지는 반면 한국은 해가 지면 빨리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한 잔 빨러 가야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만 줄여도 생산성이 30%는 올라갈 거다.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술 권하는 사회고 이로 낭비되는 국민의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내가 이번에 한국에서 느꼈던 점을 그대로 표현하는 글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라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이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본다. 나는 이번에 한국에 약 한 달 동안 머물다 방금 LA로 돌아왔다. 한 달이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오랜만의 출장은 너무나 짧았고 엄청나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하루에 평균 4개의 미팅을 했는데 결국 시간이 모자라서 저녁 약속도 거의 매일 있었다. 서울의 밤거리는 내가 한국에서 일했던 2007년보다 더욱더 술에 취해있었다. 식당이건 술집이건 상관없이 아예 앉자마자 소맥으로 시작해서 완전히 떡이 되도록 마시는 걸 보면서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과 처음으로 조국에 대한 걱정까지 해봤다.
한나라를 지탱하는 척추와도 같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제일 심했다. 도대체 월요일부터 술을 이렇게 퍼마시면 이 사람들은 아직 4일이나 남은 한 주 동안 어떻게 살아남을까? 그리고 일은 언제 할까? 해답은 간단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일을 별로 안 하는 거 같다. 밤새도록 퍼마셔도 어쩔 수 없이 그다음 날 정시 출근을 하면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오전 내내 일을 거의 못한다. 점심때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오후에는 담배 한 대 피고 동료들과 커피 한잔 하면서 노가리까다보면 오후 3시 정도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한다. 그러다 보니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야근해서 피곤하니 집에 가기 전에 간단하게 한잔하고 가면 12시가 훌쩍 넘는다. 이런 악순환이 연속되니 생산성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상을 반영하듯 한국은 모든 게 늦게 열고 늦게 닫는 거 같다. 미국은 스타벅스가 새벽 5시 30분에 열어 8시면 문을 닫는다 (그리고 그 새벽에도 커피 사려고 줄 서 있는 직장인들이 꽤 있다.) 한국은 대부분의 커피 전문점이 8시가 넘어서야 문을 열고 거의 밤 11시까지 영업을 한다. 새벽 6시에 운동가면서 보니 골목골목 그 전날 술 먹고 비틀비틀 귀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엄청나게 많았다. 오히려 2007년보다 더 심했다.
식당이랑 술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청담사거리 뒷골목의 많은 식당은 밤 11시에도 바글거린다. 미혼이라면 모르겠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이렇게 늦게까지 술을 먹고 집에 안 들어가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비즈니스’ 때문에 술을 늦게까지 먹는다는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대부분 다 핑계다. 나도 한국에서 일해봤지만, 술 늦게까지 안 먹고 회식 자리 몇 번 빠져도 회사 안 망하고 세상 안 망한다. 오히려 그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회사 나와서 남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회식을 빠지면 직장상사와 동료들한테 미움 받고 찍힌다고 한다.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이유로 사람 병신 만드는 상사와 동료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이젠 정말로 실력으로 경쟁하는 세상이다.
미국과 유럽의 직장인들이 매우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꽤 많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확실히 말해주고 싶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내가 아는 미국인들, 엄청나게 생산적으로 일한다. 아주 일찍 일어나서 근무시간에는 전혀 딴 짓 안 하고 일만 한다. 한국같이 12시 되면 우르르 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빨리 일하고 집에 가려고 집에서 점심을 싸오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샌드위치 먹으면서 점심시간에도 일한다. 그리고 6시에 정시에 퇴근한다. 회식이란 문화는 미국에는 없다. 신입사원 환영회나 아니면 축하해야 할 일이 있으면 대부분 점심을 하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조촐하게 맥주 한 캔씩 한다(오후). 저녁을 먹을때도 있지만 이건 말 그대로 강제성을 띄지 않는 ‘저녁’이다. 6시에 퇴근해서 이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고 그때부터는 책임감 있는 남편, 아내, 엄마, 아빠가 된다. 그리고 푹 쉬고 스트레스 풀고 그다음 날 다시 일찍 출근한다.
이렇게 일하니까 일 년에 3주씩 휴가를 갈 수 있다. 그만큼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프랑스 사람들 한 달씩 바캉스 가는 거 보면서 “저놈들은 언제 일하냐”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 술을 먹고 술 취해서 허비하는 시간을 더하면 한 달도 훨씬 넘는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회식이나 동료들과 술 먹는 거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직장 문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세계를 상대로 경쟁을 해야 한다. 누가 봐도 한국의 이런 무절제 술 문화는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다. 아직은 이렇게 누수되는 생산성을 코피 터지면서 밤새워 일하는 걸로 땜질하고 있지만, 이런 미봉책이 평생 갈 수는 없다. 근본적인 대책과 변화하려는 의지와 자세가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빛돌
개인보다 조직이 먼저인 다양성 없고 오지랖 넓은, 질질질 끌고다니기 좋아하는 한국식 패거리문화가 사람 진을 홀딱 빼놓는 것 같습니다.
게시글에 많이 공감합니다.
Jihui
뒤늦게 답글 하나..
공장 문화가 오피스까지 온 탓이 아닐까요? 근무 시간 = 생산, 능력. 여기에 직장내 교육이라는 것이 없다보니 도대체 뭘 해야하는지, 어떻게 시간관리를 해야하는지 모르고, 윗사람은 도대체 뭘 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일하고 일하고 있는지 모르니 결국 양쪽 모두 책상에 오래 붙어있는 것으로 눈치보기내지는 평가하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ST
공장문화가 오피스까지 왔다. ..일리 있네요
브이터치 김석중
술먹으면 친해지고 그러다가 인맥되고 필요할때, 어려울때.. 도움주고.. 그렇게 일이 풀리는게.. 가능할까요? 결과란게.. 그렇게 남의 도움으로 쉽게 떨어질까요? 배기홍대표님의 얘기 100% 1000%동감합니다. 농구에서 슛을할때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슬램덩크참조~ ^^) 인간관계는 인맥은 당신의 결과를 만들어낼 줄 아는 실력이 있는 사람일때 유효한 겁니다. '주'와 '부'가 바뀔수는 없으니까요. 술은 인맥은 절대 '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Anonymous
글쎄요..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술도 먹지 않고, 거의 항상 야근하는 직장인들이 꽤 됩니다. 술에 의한 악순환이라기 보다는 그냥 야근하는 문화가 있으니 그 속에서 여러가지 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야근을 하다 힘드니 나가서 술을 마시게 되는 케이스도 있고, 야근을 하니 피곤해서 다음날 일이 잘 진행안되는 케이스도 있고, 야근을 하니 일을 천천히 하는 케이스도 있죠. 문제는 술이 아니라, 야근하는 문화 자체에 있는 것 같습니다.
Anonymous
간만에 처절하게 동감하는 글입니다. 저도 지금은 한국에서 일 않하지만 그전에는 모 회계법인에서 5년 넘게 일했습니다. 정말 짜증나는게 보스라는 사람들이 10시 넘어서 출근해서는 전날 술이 덜깼다고 반쯤 누워서 온게임넷 스타리그나 다운받은 미드보면서 오전을 날려버리는거 보면서 정말 이곳은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사나 동기가 저녁 먹으러 간다고 꼭 눈치볼 의무는 없는거 같은데요? 세번이면 한번 정도는 슬그머니 빠질수 있는 스킬을 갖는것도 하나의 직장생활의 요령인거 같네요.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회식과 술을 권하는 것이 (영업 등의 목적을 제외하고) 회사의 전반적인 문화라면 다른 직장에서 기회를 찾아보시는것도 나을거 같은데요.
Anonymous
지나가다가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한국에서는 잠만 적당히 자면 휴식이 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가서 가족과 저녁 식사한다고하면 아내는 뭐하냐고 물어보고… 가족과 영화보러간다고하면 언제 쉬냐고 물어보고.
창의적인 발상은 충분한 휴식에서 나오는데 말입니다.
Beuchner
오래 전 회사를 떠났지만 소위 S대 출신의 정말 유능한 컨설턴트가 있었어요.
가장 경멸하는 일이 업무 시간엔 노닥거리다 야근하는 것, 그런 관리자가 퇴근 시간이 지난 후 회의를 소집하는 것 등이었지요.
본인은 하루 종일 한 눈 팔지 않고 치열하게 일하고 집에 가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선 쉽지 않지요. 아들도 돌봐야 하고 시어머니도 모셔야 하는데…
100명 중에 90명이 그런 문화에 젖어 있으니 중과부적.
지금은 프리랜서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조직 부적응자라고 생각할 겁니다.
잘못된 패거리 문화의 폐해이지만 그래도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바뀌지 않겠지요.
KB
답글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간과했던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싸움하려는건 아니지만) 저도 그런 한국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 상황이 그랬다면 앞으로 우리 세대부터는 이런걸 바꾸려는 시도를 하면 더 좋아지 않을까 싶습니다.
coin
+1
달리나음
6시가 되었는데 동료와 상사가 저녁 먹으러가는데 퇴근할 수 있습니까?
주말이니깐 점심먹고 출근하세요라고 지시를 받는 사람들이 평일 칼출근 칼퇴근을 할 수 있을까요?
회사에 무조건 10시까지 붙어 있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열심히 일할까요?
생산성이 떨어져서 야근하고 주말 출근해야하는 게 아니라 야근하고 주말 출근해야하니깐 생산성 떨어지게 일하게 되는 겁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 겨우 나온 사람들이 술마시는 것을 보고… 조국을 걱정하신다면 잘못된 근로 문화를 비판해야지 직원들을 비판해선 안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