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미국의 능력 있는 투자자 중 창업이나 벤처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창업가들과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려면 벤처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게 –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 여러모로 좋다고 난 생각한다. 물론,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왜냐하면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조언을 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창업자의 입장에서 현실을 볼 수 있어야지만 회사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평생 대기업에서만 일을 한 임원은 배고픈 벤처기업의 힘든 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교과서적인 좋은 이야기만 할 수 밖에 없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이에 대해서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 할 자격은 없다. 나보다 훨씬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좋은 조언을 주는 벤처 경험이 전혀 없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건 이런 분들의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어리고 경험없는 창업가들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마케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유통만 40년 했다.”, “한국은 그런 시장이 없다.” 등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마치 본인들이 만들어 내고 본인들만 유일하게 경험한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창업가들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노련한 창업가라면 그냥 듣고 흘릴 내용이랑 깊이 기억해야 할 내용을 구분할 수 있는 경험과 내공이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창업가들은 이런 저런 말들에 생각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사업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창업 경험이 없고, 벤처에서 일한 경험이 없고, 창업가들과 오랫동안 같이 눈높이를 맞춰보지 않고, 대기업에서만 충분한 예산과 자원을 가지고 일했고, 벤처를 책으로 배운 분들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이런 이야기들을 아예 창업가들한테 안 했으면 좋겠다. 하더라도 그냥 부드러운 의견으로 제공하지 마치 자기가 모든 걸 다 알기 때문에 미숙한 창업가는 무조건 본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전혀 모르거나 경험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창업가들은 이런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참고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실행 할 때만 비로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못하고 있는 건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장에서 피튀기면서 목숨을 위해 싸우는 건 창업가이기 때문에 남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본인의 소신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결과는 오로지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고 직접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고민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은 게 바로 스타트업이라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바이블에서도 자주 인용했던 말인데 여기서 한번 더 인용해 본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들이 아니다. 공(功)은 실제 경기장에서 먼지와 땀 그리고 피에 뒤범벅되어 용맹스럽게 싸우는 자의 몫이다. 그는 실수하고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또, 가치 있는 이유를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자신을 불태운다.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에 주어지는 위대한 승리와 패배를 알기에, 그것들을 전혀 모르는 차갑고 겁 많은 영혼들과 결코 함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시민의식’ 연설 중. 1910년 4월 23일 파리 소르본 대학. 테오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

<이미지 출처 = http://www.keepcalm-o-matic.co.uk/p/have-a-good-day-and-ignore-all-naysay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