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같이 나라가 앞장서서 스타트업들을 도와주고 생태계를 만드는데 이렇게 노력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만한 발전을 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면 나도 가끔 놀란다. 이 발전에 정부가 직, 간접적으로 많은 공헌을 한 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캠페인들이 모두 잘 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잘 안된 것들이 더 많고 그중 일부는 스타트업들을 오히려 죽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중 대표적인 건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 정부과제 및 프로젝트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스타트업 중 정부과제를 한두 개 하지 않은 업체가 별로 없을 정도로 많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정부과제들이 안타깝게도 많은 스타트업들한테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가 된 거 같아서 좀 아쉽다. 일단 대부분 과제를 자세히 보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유행을 따라가는 내용이 더 많다. 예를 들면, 핀테크나 IoT가 요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정부도 이 분야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에 – 그리고 분명히 대통령이나 장관급 레벨에서 “요새 핀테크가 대세인 거 같은데 우리도 뭐 좀 합시다”와 비슷한 말을 회의에서 했을 거다 – 굉장히 모호한 주제의 과제들을 발표한다. 주제도 모호하지만, 담당자들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외부심사위원단을 만드는데, 주로 교수님이나 연구원들을 위주로 구성한다. 안타깝게도 이들도 시장에서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구현되어 서민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과제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포지셔닝 된다. 물론, 거창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매우 좋다. 주제가 모호할수록 보고서는 거창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제이기 때문에 솔직히 목에 걸면 목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들이면 웬만하면 과제에 회사를 끼워 맞춰서 지원이 가능할 거 같다. 과제선정을 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특정 과제와 상관없는 스타트업들이 선정되는 걸 자주 봤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들한테 웬만하면 정부과제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한다 – 회사가 정말로 돈이 없는데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리고 정부과제 외에는 정말로 대책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과제가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대로 아니다. 일단 그 기간 동안 개발하는 제품이 회사의 비즈니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걸 개발했기 때문에 과제 기간 동안의 경험이나 지식을 자산화하는 게 쉽지 않다. 더욱더 중요한 건 그만큼 본업에 충실해야 할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된다. 정부과제를 하면서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들도 상당히 많다(간혹 이런 게 없는 운 좋은 과제들도 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본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노가다를 할 바에야 그냥 다른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여러모로 봤을 때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게 그런데 참 마약같다…..일단 자체 제품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정부과제 하나만 하겠다고 시작한 게, 해보니까 법인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으니 하나만 더 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정부과제로만 먹고 사는 회사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간혹 본다. 그리고 본업과는 상관없는 정부과제 수행 전용인력을 채용하고, 여러 개를 하다 보니 정부과제 관련 문서 작업만 따로 하는 인력을 채용하고 – 주로 hwp 문서작업에 능숙한 – 식구가 늘다 보니 부담감이 늘어서 계속 사업을 유지하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과제를 계속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정부과제를 별로 해보지 않았고 – 2000년도 초반에 한국의 B2B 벤처기업 자이오넥스에서 조금 해 봤다 – 최근에는 전혀 안 해서 정확한 건 잘 모른다. 위에서 말한 시나리오는 그냥 지금까지 만났던 정부과제로 먹고사는 회사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기반으로 그려본 거다. 그리고 분명히 본업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정부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스타트업들도 있고, 충분히 자산화가 가능한 과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이야기하기 싫고, 만나기 싫은 회사들이 있다. “뭐, 정부과제 몇 개 더 하면서 버텨보죠.”라고 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창업자에게 조언 할 자격 – softrocky의 블로그
[…] 정부과제로 먹고 사는 회사들 이런 회사 중 비도덕적이며, 비전 없이 이 일만을 수행해 나가는 회사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을 보고 느낀 실망감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투자하는 입장이거나 또 과제를 주거나 심사를 하는 쪽에서는 늘 언급되며, 문제 제기를 하는 이야기 이다. 투자 받아서 제대로 사업을 할 생각해야지, 정부지원으로 살아가는 좀비 기업이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력순환을 막는 좋지 않은 현상임은 분명하다.(망할 곳은 망해줘야 인력과 돈이 좋은 곳으로 흘러갈 수 있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맞고,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투자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돈에도 붙어 있는 연대 보증이라는 꼬리표와 잘못되면 빚 독촉에 시달려야 하고, 재기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환경에서 그나마 이런 문제를 피해 나갈 수 있는 지원책은 정부의 R&D 자금이며, 지원 과제들이다. 필자도 배고팠던 시기 적지 않은 과제를 했으며,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런 지원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고마워 했었다. 핀란드의 유명한 슈퍼셀도 초창기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았었다. 필자는 스타트업을 하는 후배들에게 종종 이야기 한다. 초창기에는 받을 수 있는 모든 정부지원을 지렛데로 활용하라고. 정부과제 한두껀 더하며 버텨보겠다는 창업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투자자 앞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는 창업자의 마음은 편했을까? 진정 전력을 하고 있는 창업자라면 결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 같다. 머리속으로는 “피봇을 해야하나? 혹은 사업을 접어야 하나?” 와 같이 미래를 걱정하면서 겉으로는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런 글을 보면 비노드 코슬라의 말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편치 않다. […]
신상규
감사합니다.
익명
감사합니다.
창업자에게 조언 할 자격 – Softrocky의 블로그
[…] 정부과제로 먹고 사는 회사들 이런 회사 중 비도덕적이며, 비전 없이 이 일만을 수행해 나가는 회사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을 보고 느낀 실망감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투자하는 입장이거나 또 과제를 주거나 심사를 하는 쪽에서는 늘 언급되며, 문제 제기를 하는 이야기 이다. 투자 받아서 제대로 사업을 할 생각해야지, 정부지원으로 살아가는 좀비 기업이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력순환을 막는 좋지 않은 현상임은 분명하다.(망할 곳은 망해줘야 인력과 돈이 좋은 곳으로 흘러갈 수 있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맞고,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투자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돈에도 붙어 있는 연대 보증이라는 꼬리표와 잘못되면 빚 독촉에 시달려야 하고, 재기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환경에서 그나마 이런 문제를 피해 나갈 수 있는 지원책은 정부의 R&D 자금이며, 지원 과제들이다. 필자도 배고팠던 시기 적지 않은 과제를 했으며,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런 지원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고마워 했었다. 핀라드의 유명한 슈퍼셀도 초창기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았었다. 필자는 스타트업을 하는 후배들에게 종종 이야기 한다. 초창기에는 받을 수 있는 모든 정부지원을 지렛데로 활용하라고. 정부과제 한두껀 더하며 버텨보겠다는 창업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투자자 앞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는 창업자의 마음은 편했을까? 진정 전력을 하고 있는 창업자라면 결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 같다. 머리속으로는 “피봇을 해야하나? 혹은 사업을 접어야 하나?” 와 같이 미래를 걱정하면서 겉으로는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런 글을 보면 비노드 코슬라의 말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편치 않다. […]
Jeankie Kim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힘쓰는 것이 정부과제 지원사업 없이는 독자 생존이 안되는 기업 챙기기에 나서는 것보다 낫다고 봅니다. 정부 과제로 잘 버티는 정직한 회사면 그래도 다행인 편 입니다. 더 나쁜 케이스는 정부 과제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고 그걸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 입니다.
Kihong Bae
저는 가능하다고 보는데요, 아주 extreme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부나 민간에서는 이럴려는 의지도, incentive도 없는거 같습니다. 결국 “좋은게 좋은거다” 로 시작하고 끝나는 판 인거 같습니다.
익명
정부과제로만 먹고하는 좀비 회사가 문제겠지요^^
선웅규
쓰고자 하는 댓글의 내용이 길어서…
페이스북 제 담벼락에다 저의 소견을 써놓았습니다.
읽어보시고 반론을 제기하고 싶으시면 이야기를 해수세요~^^
Kihong Bae
네,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서요…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서 이거에 대해서 열띤 논의는 하지 않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