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맺고 끊음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맺고 끊는걸 너무 칼 같이 하면 살아가는게 쉽지 않다는걸 많이 느낀다. 자신의 생각대로 소신있게 살기 보다는 남의 눈치만 죽어라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보다는 “내가 이걸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이기 때문에 누군가 너무 확실하게 맺고 끊으면 조금 이상하고 불쾌하게 생각한다는걸 많이 느꼈다.

그래서 이런 맺고 끊는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나한테 이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좀 바쁘고 유명한 분과 연락해야하는 일이 생겨서 주위에 이 분을 아는 사람들을 찾아봤는데,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고 한 다리 걸러서 이 분을 아는 사람을 소개 받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바쁘시겠지만 꼭 소개를 부탁했고, 오늘 중으로 본인이 알아보겠다고 했다. 반나절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내가 급했기 때문에)다시 한번 연락을 해보니까 바빠서 아직 연락을 못 해봤다면서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바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역시 그 다음날도 깜깜 무소식이라서 문자로 연락을 해보니까 계속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다가 결국 연락이 두절됐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분도 자기가 친한 사람이 나를 소개해줬기 때문에 차마 거절은 못했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하기도 싫고 좋은게 좋은거니까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그냥 대충 뭉갰던거 같다. 실은 이런거 너무 싫은데, 혹시나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 하고 있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거절하는게 괜히 껄끄러워서 승낙을 했지만, 막상 하려니까 귀찮거나 내 능력 밖의 일이라서 상대방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무시하고 뭉개지는 않았는가? 안 그랬던거 같지만 혹시 나한테 그런 경험을 했다면 늦게나마 이 글을 통해서 사과드린다.

그래서 역시 확실하게 맺고 끊는게 나한테도 좋지만 남들한테도 훨씬 더 건강한 태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남의 지위나 사정과는 상관없이 과감하게 끊어 버리는게 다른 사람이 더 이상의 미련을 갖지 않고 인생을 생산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지름길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가 해주겠다고 했으면 최선을 다해서 맺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냥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태도를 취하면 서로를 위해서 좋을게 하나도 없다.

위에서 말했던 그 분이 나한테 애초부터 “그 사람을 알고 있지만, 바쁜 사람이라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개를 못 해드리겠어요.” 라고 말을 했으면 나는 더 이상의 미련없이 다른 방법을 찾았을텐데 괜히 며칠 낭비를 했으니까 그 분은 나한테도 손해를 끼친것이다.

도와주기 싫으면 단칼에 거절하고, 도와주겠다고 했으면 진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