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정말 덥고 습하지만, 이 무더위 속에서도 좋은 회사들은 계속 창업되고 있다. 나는 아주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 B2B 회사들의 무덤인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괜찮은 기업용 솔루션을 만들고 있거나, 만들려고 하는 스타트업들이 출현하고 있다. 우리도 B2B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는 분야이다. 총 4개의 B2B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의류도매를 위한 플랫폼 Brandboom, MCN 용 분석툴과 대시보드 ChannelMeter, 실내위치 플랫폼 로플랫, 그리고 Sarbanes Oxley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인 SoxHub 이다. 이 중 로플랫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미국의 스타트업들이다.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자주 경험하는 현상인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B2B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투자하는걸 꺼린다. 그 이유야 투자자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섹시하지 않다 – 왠지 B2B 딱지가 붙으면 비즈니스가 굉장히 unsexy 해 보이고, 재미가 없는 거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일반 고객 시장에(=B2C) 비해서 느리고 변화가 거의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이미지가 생긴다.
2/ Scale의 문제 – 잘 만든 소셜앱이나 사진앱들은 폭발적인 속도로 바이럴하게 번져서 기본 수 백만 명의 유저를 단시간 안에 확보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네트워크 효과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B2C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B2B 제품들은 기업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객 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나 바이럴 효과보다는 기업 내부의 다양한 요소에 도입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 시간내에 엄청난 성장이 상대적으로 힘들다. 슬랙 같은 B2B 제품의 급성장은 예외라고 보는 게 맞다.
3/ 긴 영업 주기 – B2C 제품의 경우, 내 친구가 재미있는 앱을 사용하면 나도 앱 스토어에 가서 받아서 설치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B2B 제품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개인적이 아니라 기업의 업무 효율을 위해서 도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기업의 승인과 결제가 있어야지만 제품이 설치된다. 기업의 승인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B2B 제품들의 특성상, 중요한 기업 프로세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간소화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여러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영업사원들은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 사장부터 실무를 담당하는 말단 직원들 모두를 대상으로 영업해야 한다. 나도 2001년 부터 2004년까지 제조업의 기간 업무인 생산계획을 효율화하는 공급망관리(SCM = Supply Chain Management) 솔루션을 한국의 중소제조업체 대상으로 영업한 경험이 있는데,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B2B 제품들은 나름 확실한 매력이 있다. 팔기가 어렵고, 계약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을 위한 인력을 유지해야하는 부담이 따르지만, 일단 한 번 팔아 놓으면 꽤 오랫동안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한다. 위에서 말 한대로 B2B 제품은 기업의 많은 부서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간소화하기 때문에 한 번 도입하면 웬만하면 걷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설치된 제품은 지속적인 사용료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유지보수 매출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심플하고 좋은 비즈니스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에 우리가 투자한 B2B 스타트업 Brandboom에 대해서 몇 번 블로깅 한 적이 있다. 이 회사가 연 매출 100만 달러에 도달하는 데에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의류업계에 새로운 기업용 솔루션을 판매하는 건 힘들었다. 얼마 전 LA에서 Brandboom을 방문했을 때 이 회사는 연 매출 200만 달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2년 만에 매출이 100% 성장했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모바일 앱도 아니고, 화려한 B2C 앱도 아니지만, 제대로 돈을 벌고 있는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섹시한 비즈니스는 겉만 화려하고,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수천만 명의 사용자들이 달라붙지만, 구체적인 비즈니스모델이 없거나 단순히 광고에만 의지하는, 그런 비즈니스가 아니다. 우리 제품의 본 기능들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급하는 비즈니스가 바로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이미지 출처 = http://b2bcon.asia/why-b2b-startups-are-suddenly-so-sexy/>
익명
좋은 글 감사합니다 B2B 사업을 하는 저에게는 힘나는 글입니다. B2C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 B2B는 세상은 움직이는 매력이라고나 할까요?
Kihong Bae
세상을 움직이는 매력…아 이거 정말 좋네요^^
HJ
잘 읽었어요. B2B가 참 시작하기에는 cycle 도 길고 변화를 추구하기가 힘들어 재미 없기는 한데…그래도 한번 길을 트면 나름의 매력은 있는 것 같습니다. 길 트기까지가 너무 괴롭다는…흑 ㅋㅋ 그리고 저리 cool 한 b2b 업체가 많은지 오늘 또 새로 배우고 가네요!
Kihong Bae
돈 버는 비즈니스가 섹시한 비즈니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