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최근에 첫 번째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를 시작한 남미 VC와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대화하다가 서로 활동하는 지역에서 좋은 회사를 발굴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는 주로 직접 발굴해서 남보다 먼저 투자하는 걸 선호하기도 하지만, 다른 투자자한테 소개받는 경우도 요샌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이 VC는 본인은 다른 VC가 소개하는 회사는 대부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금 더 설명해달라고 하니, 그 동네에서는 한국만큼 좋은 창업가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투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스타트업이 몇 개 없고, 이렇다 보니 정말로 괜찮은 회사가 있으면 웬만한 VC는 그냥 혼자서 라운드를 다 소화한다고 한다. 솔직히 한국이나 미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고, 우리도 좋은 회사를 발굴하면 가능하면 단독으로 다 투자하고 싶다. 하지만, 회사가 필요한 금액이 스트롱이 주로 투자하는 금액보다 더 큰 경우도 있고 – 그리고, 갈수록 회사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면서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 – 이런 회사는 우리가 잘 아는 몇몇 VC와 같이 공동투자한다. 이 남미 VC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만, 회사가 정말로 좋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전체 금액을 본인이 단독으로 다 투자한다고 한다.
실은 이 분도 다른 VC와 공동투자한 경우가 있고, 본인도 남한테 회사를 소개한 경우가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가 100% 확신을 갖지 못하는 회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나쁘지 않고, 가능성이 많은 회사지만, 왠지 모르게 뭔가 리스크가 존재하고, 100%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에, ‘위험 분산’이라는 명목하에 다른 VC에 소개하고 이들과 같이 투자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각에서 봤을 때, 다른 VC가 소개하는 딜은 그도 확신을 갖지 못해서 같이 투자하고 싶어 하는 회사라서 대부분 잘 안 본다고 하는 그런 논리인 거 같다. 즉, 내가 투자하고 싶지 않으면, 남도 투자하고 싶지 않는다는 논리다.
나도 다른 VC한테 회사를 많이 소개한다. 우리 투자사의 후속 투자를 위해서 스트롱보다 더 큰 펀드를 가진 VC한테 소개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우리 펀드 규모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후속 투자를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개하는 경우, 금액은 많지 않지만, 우리도 항상 후속 투자에 조금이라도 참여를 한다. 또 다른 사례는,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좋은 회사를 우리가 발굴하긴 했지만, 이 회사가 필요한 금액이 너무 커서 다른 VC와 공동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많진 않지만, 우리가 검토해 봤는데 우리 펀드와는 성격이 맞지 않아서 이런 회사를 좋아할 만한 다른 VC한테 넘기면서 소개하는 적도 가끔 있다.
그런데 위의 대화를 한 후에, 우리가 투자하지 않거나, 투자 못 하는 회사를 다른 투자자한테 소개하는 경우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봤고, 앞으로 가급적이면 이런 소개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우리는 투자 못 하지만 남한테 소개한 회사는 게임 스튜디오, 하드웨어 회사와 동남아 스타트업이 있다. 게임 스타트업은 우리가 투자를 몇 번 해봤지만, 내가 게임을 잘 하지 않고, 게임업계의 생리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투자해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을 좋아하는 다른 VC한테 소개했다. 하드웨어도 비슷한 논리다. 몇 번 해보니까, 초기자본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해서 스트롱이 하는 1억~3억 원의 투자금으로는 시작도 제대로 못 하는 걸 많이 경험했다. 하지만, 하드웨어에 특화된 펀드가 있고, 이런 VC는 우리보다 하드웨어 회사들을 잘 알기 때문에 소개했다. 동남아 스타트업은 실은 시장도 관심가고, 창업팀도 좋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시장이라서 이 지역을 잘 알고, 이쪽에 투자하는 다른 VC한테 소개를 했다.
이렇게 소개를 한 VC들이 모두 꽤 친한 분들이고, 우리랑 가끔 공동투자를 하므로 문제가 되진 않지만, 위에서 말한 남미 VC의 시각에서 보면 내가 투자하기 싫은 회사는 – 또는, 투자하지 못 하는 – 남들도 투자하기 싫기 때문에, 이런 회사는 그냥 아예 소개하지 말아야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어쩌면 내가 회사를 소개하는 VC는 속으로는, “회사가 정말로 그렇게 좋다면, 스트롱이 투자를 해야지, 본인도 안 하면서 나한테 왜 소개할까? 나 같으면 정말 좋은 회사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자할 텐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래서 요샌 우리가 투자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가능하면 다른 VC한테 소개를 하지 않는다. 만약에 소개를 하더라도, 여러 번 고민을 한 후에, 소개하는 게 정말 맞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