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 글에서 사람과 팀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말 나온 김에 사람에 대해 또 몇 자 적어본다. 우리 속담에 “회사가(또는, 자리가) 그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실은, 이 말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좀 다르다. 한쪽에서는, 능력이 별로 특출나거나 머리가 막 뛰어나지 않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좋은 회사에 입사해서, 이 분들로부터 일을 배우고, 좋은 동료들과 교류하다 보면, 그 사람도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동화돼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즉, 회사가 사람을 만드는 게 맞다고 한다. 다른 쪽에서는, 회사가 사람을 만드는 건 아니고, 원래부터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만든 회사면, 회사가 잘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마치 회사가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회사를 만드는 게 맞다고 한다.
나도 요새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잘 되는 회사의 사람들을 보면, 모두 다 너무 능력이 뛰어난 거 같은데 과연 이 모든 사람이 원래 이렇게 특출난 사람들인지, 아니면 좋은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가진 회사라서, 이 회사에는 그냥 웬만한 사람이 들어가도 모두 좋은 시스템을 통해서 기계적으로 좋은 아웃풋이 나오는 것인지. 자세히 찾아보진 않았지만, 조직 행동론적으로 이런 현상을 분석한 논문도 있고, 학문적으로도 다양한 설이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조직이 사람을 만드는 게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을 한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보였던 조직이 페이팔, 그리고 페이팔보다 더 오래된 SUN Microsystems 인거 같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이야기는 이 분야에서 일하면 누구나 다 들어봤을 것인데, 페이팔 출신 사람들이 – 창업가 및 초기 직원 – 모두 쟁쟁한 tech 기업을 만들어서 서로 같이 투자하고 도와주면서 tech 생태계를 형성하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마피아 조직원으로는 LinkedIn의 리드 호프먼, Tesla의 일론 머스크, Founders Fund/제로투원의 피터 틸, YouTube 공동창업자 스티브 첸, Yelp의 제러미 스토플먼, 여러 회사를 만든 천재 엔지니어 맥스 레브친 등이 있다.
Sun Microsystems는 페이팔 마피아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이 회사 출신 동문도 엄청나다. 일단 나도 자주 이야기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VC 중 한 명인 비노드 코슬라가 썬의 공동 창업가였고, 비노드가 직접 채용한 썬의 초기 직원은 다음과 같다. 구글의 대표를 오랫동안 지낸 에릭 슈미트, 오토데스크와 야후!의 대표였던 캐롤 바츠, 그리고 저명한 컴퓨터 학자/작가 빌 조이 등이 모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출신이다.
실은 페이팔과 썬의 초기 직원 모두 개인적으로는 아주 능력 있는 분들인 거 같다. 하지만, 이 사람들만큼 개인적으로는 능력 있는 사람 또한 나는 많이 봤지만, 페이팔과 썬 동문만큼 잘 하고 있진 않은 거 같다. 이런 단순한 시각으로 보면, 잘 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그리고 하는 것도 뭔가 다르고, 뛰어난 사람들과 항상 뛰어난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이 오래 지속적으로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업무 능력도 비약적으로 좋아지고,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바뀌는 거 같다. 즉, 회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어느 정도 맞는 거 같다.
정리를 하면,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회사를 만들고, 좋은 회사를 만들어 놓으면 또 좋은 사람들이 채용될 확률이 커지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는 웬만한 직원들은 회사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나중에 회사를 나가서, 지금까지 보고 경험한 걸 기반으로 또 좋은 회사를 만들거나, 다른 회사에 가서 이 회사를 더욱더 좋은 회사로 만드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