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이라면 올해 SPAC, 또는 스팩 상장이라는 말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SPAC은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약자인데,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기업인수목적회사’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실은, 나도 스팩상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적은 없어서, 모든 디테일과 실무는 모르지만, 주위 많은 분이 올해 자주 물어봤던 내용이라 그냥 개괄적으로 몇 자 적어본다.

스팩은 1990년대부터 존재하던 개념인데, 올해 이 방식으로 IPO를 하는 회사들이 급증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다. 전통적인 IPO와는 달리 꽤 빨리 상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서, 코비드 19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진 이 시기에 많은 분이 이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검색을 좀 해보니, 작년 대비, 올해 스팩 상장한 회사 수가 4배가 넘는다고 한다.

스팩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회사인데, 딱 한 가지 목적(=special purpose)이 있다. 비상장 회사를 인수하는 게 그 목적인데, 일단 스팩 회사를 만들어 상장시키고, 특정 기간 안에 이 스팩 회사로 다른 비상장 회사를 인수하면, 피인수된 비상장 회사도 상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배기홍이 ‘마일로’라는 법인을 설립한다
2/ 이 회사를 상장 신청하고, 회사의 투자자를 모집한다
3/ 로드쇼를 통해서 만난 여러 투자자가 마일로 주식을 산다
4/ 주식회사 마일로가 IPO를 하고, 배기홍은 전체 주식의 20%를 갖는다(배기홍=스팩 상장 스폰서)
5/ 배기홍은 마일로를 통해 인수할 비상장 회사를 찾는다
6/ 이미 투자를 많이 받은, 탄탄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구루’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로 하고, 이 회사의 경영진/이사회와 인수 조건을 네고한다
7/ 마일로의 주주들 또한 구루 인수에 대해 투표하고 이 딜을 승인한다
8/ 마일로는 IPO로 모집한 자금, 그리고 새로 투자받은 자금으로 구루를 인수한다
9/ 마일로와 구루가 합병하고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10/ 만약, 마일로가 2년 안에 – 2년 이상인 경우도 있다 – 회사를 인수하지 못하면, 마일로를 청산하고 다시 주주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뭐, 대충 이런 방식으로 스팩 상장이 진행된다.

스팩 상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가장 큰 건 상장을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IPO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스팩의 경우 빠르면 3개월 안에도 마무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전통적인 IPO 방식으로 회사를 상장시켜도 주식 가격에는 불확실성이 많이 존재한다. 원래 상장시장의 주가는 시장의 상황과 투자자들의 의향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고, 상장 가격 자체는 주로 투자은행의 뱅커들이 결정하는데, 뱅커들이 정한 가격은 대부분 너무 낮거나 너무 높아서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스팩의 경우 이 가격을 사전에 정하고 인수 작업을 하므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된다.

물론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은 스팩 상장의 성패가 스폰서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위의 예제에서 스폰서는 ‘배기홍’이라는 사람이다. 즉, 마일로라는 스팩 회사는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회사라서, 이 회사의 투자자들은 회사가 아니라 배기홍이라는 사람을 믿고 투자하는 건데, 이 인간이 사기꾼이거나, 인수할 회사를 잘 못 선정하면 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해 스팩 상장 중 사기로 판명된 건 (아직)없지만, 과거에는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스폰서는 본인 돈은 아주 적게 투입하지만, 스팩 회사 지분의 20%를 갖게 된다. 위의 예에서, 배기홍은 마일로 회사의 지분을 20% 갖게 되는데, 마일로가 구루를 인수하게 되면, 이 20%는 구루 지분의 1~5%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인수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항상 돈을 벌게 된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들은 스팩 상장의 스폰서에 대한 실사나 스크리닝을 잘해야 한다.

이런 스팩 회사들은 종목코드도 간단하다. IPOA, IPOB, IPOC – IPOZ 까지 있는 거로 알고 있다 – 등의 이름을 사용한 스팩회사들이 있는데, IPOA는 Virgin Galactic을 인수해서 상장했고, IPOB는 OpenDoor, 그리고 IPOC는 Clover Health를 같은 방법으로 인수해서 상장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스팩상장이 일어나고 있고, 조만간 많은 회사들이 이 방법을 통해서 상장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 광고를 많이 해서 우리한테 친숙한 ‘TS샴푸’를 만드는 TS트릴리온도 12월에 스팩상장을 한다고 발표했는데, 잘 될지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다.

어쨌든 스팩 상장 외,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