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가 사업을 시작할 때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을 하는데, 시장의 크기가 그중 하나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라도 팔아야 할 시장이 너무 작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투자자들도 창업가들에게 가장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시장의 크기에 대해서이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가 엄청난 제품을 만들어도, 이걸 살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10명 밖에 없다면,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크기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이진법적으로 현재의 시장이 작으면 무조건 나쁘고, 시장이 크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자주 주장하고, 실은 직접 그동안 경험한 것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시장 크기 또한 유기적으로 변한다. 지금은 작은 시장이 앞으로 엄청나게 커질 수 있고, 지금은 너무 큰 시장이지만, 갈수록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능력 있는 회사라면, 태생적으로 작은 시장을 직접 키울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시장 크기가 중요하다곤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너무 연연하진 않는다.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이 수십조 원짜리면 엄청나게 큰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조금만 잘하면,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이렇게 시장이 크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관심을 두고, 결과적으로 경쟁이 살벌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시장점유율 1% 먹는 것도 힘들다(하지만, 수백조 원짜리 시장에서는 1%만 점유해도 수조 원이다). 그래서 우리도 회사를 검토할 때, 엄청난 시장 크기만 강조하는 창업가들은 조금은 경계한다. 아무리 시장이 커도, 그 시장의 0.001%도 못 먹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면, 정말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이 너무 작다면, 이 시장이 태생적으로 작고, 앞으로도 성장하지 않을 작은 시장인지, 또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시장인지 아주 잘 생각해봐야한다. 만약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는 성장할 시장이라고 판단을 한다면 – 실은, 이런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작은 시장이 앞으로 커질 시장인지는, 예측하기가 힘들다 – 이런 회사에는 투자하는 게 맞다. 현재는 시장이 워낙 작아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특히 경쟁사가 거의 없다. 시장이 너무 작으니, 이 분야에 있는 소수의 회사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도 거의 없어서, 모두 다 고만고만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 시장은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고, 5년~10년 안으로 시장이 커질 수 있다면, 지금 이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창업가는 상당히 유리할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초반에는 시장이 매우 천천히 성장하기 때문에, 잠재 경쟁사나 투자자들이 전혀 눈치를 못 챌 것이고, 그동안 시간을 많이 벌 수 있다. 여러 가지 실험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고, 대부분 안 될 것이지만, 이에 따른 실패할 수 있는 시간 또한 벌 수가 있다. 이렇게 시간을 벌면서, 시장이 커지길 기다리거나, 또는 내가 시장 자체를 키우면 된다.

물론, 이런 현상 또한 이렇게 제삼자의 입장에서 글로 쓰는 건 쉽지만, 직접 실행하고, 그리고 시장이 커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벌면서, 잘 살아남았는데,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면, 웬만한 경쟁사가 진입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