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계속하기 위해서 계속 새로운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 같은 VC는 연중 내내 투자자들과 미팅한다. 투자 실적이 제일 중요하지만, 투자자들과의 장기적인 관계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를 해야지 계속 새로운 펀드를 만들 수 있는데, 얼마 전에 어떤 잠재 투자자가 나한테 오랜만에 내가 깊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을 했다.

스트롱이 투자할 때 파트너인 내가 투자 결정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고 나는 우리 투자팀 4명 모두 동일하게 한 표씩 행사할 수 있고, 만장일치로 승인해야지 투자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후속 질문은, 스트롱 투자 인력은 나와 조지윤 이사님과 같이 경험이 많은 분들과 이제 막 투자를 시작한 젊은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모두 동일하게 한 표씩 갖는 게 올바른 투자 결정을 위한 이상적인 구조인가였다.

실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최근 3년 동안 많이 생각하면서 정답을 찾아가고 있어서 이분들이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는 주니어 심사역도 투자 결정에 한 표 행사할 수 있고, 나 같은 파트너도 투자 결정에 한 표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표의 영향력은 동일하다. 어떤 VC 파트너는 우리의 이런 구조를 듣고 경악했다. 어떻게 펀드를 설립하고 투자 경력이 11년이 넘는 파트너와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하고 투자를 시작한 20대 심사역이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냐가 이분의 논지인데, 난 이분은 VC 업에서 장수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VC 업의 매력은, 내가 아는 그 어떠한 산업보다 공평하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좋은 회사를 발굴하고 투자하는 VC의 가장 중요한 기능만을 봤을 땐, 투자하는 사람의 성별, 경력, 학벌, 과거 실적 등이 성공적인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적다는 뜻이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 맥락과 일치하는데, 초기 벤처 투자의 성공은 실력보단 운과 타이밍의 함수이며, 이 운과 타이밍의 함수를 풀 수 있는 능력은 20년 경력의 벤처투자자나 1년 경력의 벤처투자자나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험이 없는 투자자들이 더 좋은 창업가를 발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더 빠르게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DNA를 타고났고(=젊다), 경험이 없지만 반대로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어서 소위 말하는 crazy idea에 거부감 없이 투자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해보면, 나는 투자자로서 경험이 쌓이지만 매일 더 늙고, 우리가 투자해야 하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창업가들은 계속 더 젊어지고 있다. 이 나이 차가 크지 않다면, 어떻게든 극복을 해보겠지만, 투자자와 창업가의 나이 차가 20년 이상 나기 시작하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정말 어려워진다. 이런 어려움을 나는 요새 가끔 경험하는데, 나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지만, 젊은 친구들이 봤을 땐 굉장히 유망한 스타트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이해를 못 한다고 실패할 비즈니스일까? 이런 생각으로 투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후회하는 VC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젊고, 더 세상을 잘 이해하는 팀원들이 필요하고, 이들에게 투자에 대해서는 나랑 동일한 권한을 부여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인 투자사가 아니다. 조직의 종합적인 경험과 지능을 이용해서 최적의 투자 결정을 내야 하는 팀이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맞는 투자를 해야 한다. 내가 항상 맞을 수도 없고, 내가 항상 맞을 필요도 없다. 내가 맞지만, 우리가 틀리는 결과를 리더들은 경계해야 한다. 내가 틀려도 우리는 맞는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