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lean 스타트업을 과할 정도로 찬양하고, 모든 스타트업이 린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lean 하다는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름기가 빠졌다는 의미인데, 모든 창업가들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을 정기적으로 저울에 올려서 무게와 지방을 재야 한다. 절대적인 몸무게도 중요하지만, 체지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비만이라고 판단되면 기름기를 빼는 노력을 상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많은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아주 lean 하게 운영된다. 워낙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고, 이런 내, 외부 환경 때문에 본질이 뭔지 잘 파악하고, 이 본질에만 집중한다. 즉, 해야 할 일만 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안 한다. 초기 스타트업은 이걸 잘하므로 기름기를 뺄 필요가 없다. 이 단계에는 체지방률이 거의 운동선수 수준이다.

하지만, 이렇게 린하게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창업 당시엔 상상도 못 했던 기업가치에 엄청난 투자를 받은 후부터 몸집이 커지면서 지방이 빠르게 축적된다. 돈이 넘쳐흐르면, 대부분의 창업가들이 하는 게 쓸데없이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이후엔 본인들이 사업하고 있는 분야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슈퍼 앱이 되기 위해서 계속 몸집을 불린다. 이 몸집 불리는 것도 린하게 해야 하는데, 많은 스타트업이 근력을 늘리면서 건강하게 몸을 키우지 않고, 기름기를 섭취해서 지방으로 몸을 키운다. 여기서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회사들이 몸에 기름기가 축적되면서 온갖 성인병(=스타트업병)에 걸려서 무너지는 걸 너무 자주 보고, 듣고, 읽는다.

멀리서 보지 않고, 가까운 우리 투자사들에도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좋은 소프트웨어 DNA를 가진 창업팀이 아주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서 특정 분야에서 조금씩 인지도가 생기고 있고, 꽤 괜찮은 조건에 대규모 투자를 받으면, 원래 본인들이 잘하는 소프트웨어를 더욱더 뾰족하게 만들어서 그 시장에서 압도적인 1등 회사가 되는데 모든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돈이 넘쳐흐르고, 사람을 대규모 채용하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 걸 자꾸 하고, 안 써도 되는 곳에 돈을 쓰게 된다. 다른 회사가 만든 하드웨어에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해서 사업하던 회사가 갑자기 하드웨어를 본인들이 만들기 시작하거나, 남이 잘 만든 소프트웨어 API를 이용해서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효율적인 운영이 사업의 핵심인 회사가 갑자기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기 시작하는 게 이런 대표적인 현상이다.

돈과 인력이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위에서 말 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하드웨어 개발에 엄청난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결국엔 원래 사용하던 남의 하드웨어로 다시 돌아갔다. 남의 API를 사용하던 회사도 본인들이 직접 개발을 시도했지만, 역시 엄청난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다시 원래 사용하던 남의 소프트웨어로 다시 돌아갔다. 옆에서 보기엔 쉬워보였고 – 왜냐하면, 본인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 돈과 사람만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아주 비싸게 배운 것이다.

이렇게 회사에 기름기가 쌓이다 보면, 잘 나가던 회사가 고꾸라지는 건 정말 시간문제다. 다행히 지난 몇 년 동안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원래 본인들이 하던 본질로 돌아왔고, 꼭 해야만 하는 일만 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다들 몸에서 기름기를 확 뺐고, 린한 생활을 완벽하게 일상화했다. 불경기가 좋은 계기가 돼서 앞으로 모든 스타트업들이 린한 운영을 일상 생활화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