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요새 새 펀드를 만들고 있고, 아무리 업력이 좀 있고, 숫자가 나쁘지 않아도, 역시 남의 돈 받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거라는걸 매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도 어렵지만, 투자하기 위해서 남의 돈 투자 받는 거에 비하면, 투자는 오히려 쉽다는 생각도 가끔 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피칭할 때 느끼겠지만, VC도 매우 다양하다. 모두 성향이 다르고, 투자 분야, 스테이지 등에 따라서 선호하는 회사와 창업가가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하는 LP들도 모두 다르다. 이건 LP들 개인적인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회사의 역사와 색깔 등에 따라서도 아주 다르다는 점을 항상 느낀다. 예를 들면,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손실을 보호하는데(=downside protection) 너무 신경 쓰진 않는다. 초기 투자의 성격상 리스크가 크고 어차피 손실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모든 노력과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손실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초기 투자에서 홈런을 친다면 이 손실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좋아하는 LP도 있지만, 엄청나게 싫어하고 이런 투자를 이해하지 못 하는 LP도 있다.

한국과 외국 LP 간에도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한국 LP는 거의 물어보지 않지만, 해외 LP는 항상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벤처스 파트너들의 파트너십이 정말 strong 하냐? 내가 돈 맡겼는데, 너희 둘이 싸워서 파트너십이 깨지면 어떻게 하냐?” 이다. 우리 회사와 펀드의 수익률 등의 정량적인 수치도 당연히 중요시하지만, 내가 요새 느끼는 건, 큰 해외 LP는 수치보단 이런 파트너십의 역사와 견고함에 엄청 신경 많이 쓴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은 VC가 만들어졌다가 다시 해체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VC의 실적보단, 파트너십의 문제 때문이다. 파트너들이 서로 싸워서 헤어지면서, VC가 해체되는 걸 나도 꽤 많이 봤는데, 결국 이들을 믿고 돈을 맡긴 LP 한테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된다. 또한, 담당 파트너가 만약에 회사를 나갔다면 투자사들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서 곤혹을 치르는걸 많이 봤다(전문용어로는 ‘고아’가 됐다고 한다).

실은, 이 질문을 받으면 나랑 존의 파트너십은 아주 탄탄하다는 걸 뭔가 정량적으로 증명하는 게 쉽진 않지만, 내가 강조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긴 하다. 일단 우리 둘을 모두 아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우린 정말 다르다. 성향도 다르고, 회사에 대한 시각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성격 자체도 아주 다르다. 이런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하다 보면 엄청 많이 부딪히고, 엄청 많이 싸우는데, 우리도 실은 그렇다. 8년 동안 맨날 싸웠고, 서로 동의하지 못했고, 요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파트너십은 더욱더 strong 해졌고, 앞으로 더 strong 해질 것이다. 여기엔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우린 비즈니스 동료이기 전에 초등학교 친구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는 거 같다. 워낙 어릴 적부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자랐기 때문에 – John은 내 세컨드 와이프라는 농담도 자주 한다 – 아무리 의견 차이가 커서 대판 싸워도, 파트너십이 안 깨진다. 그리고 올해로 우리가 8년째 스트롱을 같이 운영하다 보니, 이미 그동안 너무 많이 의견충돌하면서 서로를 솔직하게 경험했고, 이게 8년 동안 지속하다 보니까 이젠 웬만하면 금이 가지 않는 파트너십이 만들어진 거 같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비즈니스 하는 걸 잘 표현한 영어가 있는데 바로, “agree to disagree”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동의한다는 의미이며, 역사가 오래된 VC 파트너십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브랜드를 갖고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파트너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같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가고, 어떤 사람은 빨리 가고, 어떤 사람은 지름길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이런 방법론에서 상당히 많은 fine tuning이 필요한데, 여기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매우 중요한 거 같다.

우린 이제 VC로서 8살이 됐다. 솔직히 8년 경력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한국은 찾기 힘들지만, 미국의 경우 파트너십의 역사가 20년 이상인 좋은 VC가 많은데, 이들에 비하면 우린 아직은 완전 주니어 VC이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하우스에 취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하우스를 8년 동안 잘 지켰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