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의 가치(valuation)를 정하는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상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의 가치를 책정할 수가 없고, 수익이나 cash flow가 별로 없기 때문에 경제적 공식을 적용하는것도 쉽지가 않다. 또한, 비슷한 회사를 벤치마킹하는것도 정답은 아닌게 아무리 같은 분야에 있는 스타트업이라도 팀원들의 능력에 따라서 그 결과는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내가 아는 스타트업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었다. 회사는 잘 성장하고 있었고 이제 더 큰 성장을 더 빠른 시간에 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투자를 받으려고 몇 몇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가 10억짜리 회사인지 아니면 100억 짜리 회사인지 밸류에이션에 대해 여러가지 숫자와 이야기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 중 많은 투자사들이 – 대부분 한국 – 이제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고성장 벤처기업의 가치를 (내가 보기엔) 맞지 않은 방법으로 산출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스타트업과 비슷한 업종에 있는 상장회사의 PER (Price-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을 스타트업에 적용해서 가치를 결정하고 있었다. 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계산하는게 1.그래도 뭔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가치를 산출했고, 2.나중에 혹시 문책 받으면 변명 할 수 있고(특히 상부에), 3.본인들한테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 할 수 있는 점들이 있지만, 나도 초기 벤처기업들에 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때 이 방법은 조금 억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준으로(2013.10.29) 이제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몇 tech 회사들의 PER를 보면 구글은 29.2, 오라클은 14.3, 마이크로소프트는 13.26, 시스코는 12.1이다. 다들 나름대로 tech에서 한가닥 한다는 회사들이고 PER가 다르긴 하지만 아주 터무니 없이 다르지는 않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어린’ 상장한지 얼마 되지 않는 페이스북의 PER는 189.49이다. 그렇다고 Facebook의 실적과 숫자들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보다 좋은 건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회사의 현재 건강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13.26의 PER를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큰 회사가 최근 10년 이상을 해마다 거의 두자리 수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런게 PER에 반영된다기 보다는 앞으로의 성장가능성과 주식시장의 기대심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Facebook과 같은 신생기업이 (물론 성장 가능성은 좋다고 생각한다) 높은 PER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가능성에 대한 프리미엄 가치’는 비상장 기업에 가장 잘 적용된다. 이제 곧 상장기업이 될 Twitter는 수익이 없지만 회사 가치는 110억 달러이다. 수익은 커녕 매출도 전혀 없는 Pinterest의 가치는 38억 달러, Snapchat은 30억 달러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직 상장하지 않은 고성장 스타트업의 가치를 결정할때 어느정도 안정된 상장기업의 지수인 PER를 적용하는건 무리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성장 스타트업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가 적용되어야지 전 산업군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가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같은 월터급 체급이라고 10대 복싱 선수와 50대 복싱 선수가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PER도 고려하지만, 팀원들의 가능성, 서비스의 가능성 그리고 현재 비슷한 분야의 비상장 회사들의 가치 또한 전반적으로 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