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벤처펀드는 남의 돈을 가지고 운영되는 투자도구이다. 수백 ~ 수천억 원 규모의 펀드라면 펀드운용사 또는 운용 매니저들이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직접 조달할 능력이 대부분 없으므로 ‘출자자(펀드 투자자)’ 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고, 이 자금을 다시 여러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집행한다. 출자자의 종류는 다양하다: 우리가 잘 아는 대기업들; 국민연금; 모태펀드(정부의 돈); 대학교(한국은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돈 많은 개인 등이다.

출자자들의 펀드 출자 목적도 매우 다양하다. 개인 출자자들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출자하지만, 정부는 돈보다는 고용창출이나 자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등의 공공 목적 때문에 출자한다. 여기서는 대기업들의 출자 목적에 대해서 조금 말해보려고 한다. 우리도 대기업 투자담당자들에게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 회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고, 우리도 내부적으로 투자팀이 있는데 굳이 외부 펀드에 출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출자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기업들이 우리와 같이 크고 작은 펀드에 출자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스타트업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양한 스타트업 발굴: 많은 대기업 임원들과 투자 담당자들은 – 특히, 미국보다는 한국이 더 심하다 – 본인들이 모든 스타트업들을 발굴할 수 있고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물론, 이미 유명해져서 언론에 많이 노출된 회사들은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리 네트워크가 좋고 잘나가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도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새로 생기는 모든 스타트업들을 전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분양의 벤처펀드에 출자하면 어디에 어떤 스타트업들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VC 들을 안테나와 같이 활용하는 전략인데 수십억 또는 수백억을 여러 개의 펀드에 출자하는 게, 나중에 전혀 모르고 있던 좋은 스타트업을 경쟁사에 빼앗김으로써 발생하는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와 이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보다는 훨씬 더 저렴하고 좋은 전략이다.

-대기업을 싫어하는 스타트업에 투자: 뜻밖에 대기업들과 같이 일하거나 투자받는 부분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특히, 자신감 있고 장래가 밝은 스타트업 중 대기업 담당자들이 찾아오면 만나주지도 않는 회사들도 많다. 대기업들에 대해 워낙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고, 이런 좋은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투자받을 수 있는 채널이 많기 때문이다. 벤처 펀드에 출자했다면, 대기업의 이름은 숨기면서 펀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런 좋은 회사들에 투자할 수가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들과의 관계를 만들 수 있고 이는 파트너쉽, 대기업의 직접 투자 또는 인수로 이어진다.

-기업 이미지를 손상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투자: 대기업들은 언론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툭하면 “대기업이 그런 것도 하냐” 하면서 여론을 몰아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도박 또는 마리화나 관련 비즈니스에 국내 유명 대기업이 투자하면 언론에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칠게 뻔하다. 하지만, 도박이나 마리화나도 앞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이며 실행만 잘하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외부 벤처펀드에 출자하고, 그 펀드를 통해서 이런 비즈니스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면 된다. 그러면 기업 이미지 손상을 방지하면서 이런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배울 수 있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순수 금전적인 보상을 목적으로 벤처 펀드에 출자하는 대기업들도 있지만 내가 아는 대기업들은 모두 위에서 나열한 전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펀드에 출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