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동네 헬스클럽에서 밖을 보면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붙어 있는 문화체육센터라서 창밖에는 학교 야외 운동장이 보이고 마침 학생들이 단체로 잡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추운데 꼬마들이 즐겁게 노는게 보기 좋아서 운동하면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운동장 한 쪽 끝에는 여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 외의 공간에는 남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부르자 남자들은 도망다니고, 여자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나도 어릴때 이런 게임을 한게 기억이 났다. 체형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가까이 있는 아무 남자가 아니라 평소에 흠모하던 남자를 여자들이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멀리서봐도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옷을 잘 입은 남자 아이를 잡으려고 10명 이상의 여자아이들이 운동장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결국엔 그 아이는 잡혔고, 그 다음으로 잘생긴 남자아이가 잡히고, 뭐 이런 순으로 남자들은 다 잡혀갔다. 결국 모든 남자들은 잡혀서 운동장 밖으로 나갔고 한 명의 키도 작고, 외모도 보통인 아이가 남았다. 그런데 이 친구 상당히 빠르고 잽쌌다. 여자 15명 이상이 작은 운동장 안에서 이 친구를 마지막으로 잡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미꾸라지처럼 여기저기 잘 빠져다니면서 거의 5분 이상을 잡히지 않고 도망다니다가 결국엔 잡혀서 게임은 끝났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때문에 선택? 받지는 못 했지만, 이 친구가 그 중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이자 날쌘돌이였던거다.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나는 창업자들의 번드르르한 외모와 화술만 보고 투자하고 있는건 아닐까? 창업가들을 아무리 많이 만나도 이 사람에 대해서 모든걸 알 수 없기 때문에 첫인상, 외모, 화술, 어쩔때는 영어실력 등을 보고 투자 결정을 – 특히 우리같이 초기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겉과 속이 동일한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는 더 많이 봤다. 내 주위에는 말은 좀 어눌하고, 투자자들이 원하는 ‘정답’을 제공하지 않고, 옷도 잘 못 입지만 비즈니스는 정말 끝장나게 잘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창업 초기에는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 했고 투자도 못 받았다고 한다. “별로 스마트해보이지 않는다”가 그 이유였다고 한다.

이 업무를 하면 할 수록, 그리고 투자한 회사 중에 승자와 패자들이 명확히 구분되는 순간을 더욱 더 많이 경험할수록, 옥석을 가리고 흙에 파묻힌 진주를 찾는게 얼마나 어렵고 고도의 통찰력과 운이 필요한지 몸소 느끼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프라이머와 긴밀히 협업하면서 super early 회사들을 엄청 많이 만나고 있는데, 경험없고 다듬어지지 않은 – 좋게 말하면 ‘닳고 닳지 않은’ – 젊은 창업가들 중 어떤 분들이 승자인지를 잘 판단하려면 더욱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하는걸 많이 느끼고 있다.

솔직히 너무 많은 초창기 회사들을 만나다보면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냥 보이는거를 위주로 회사들을 판단하는 경향이 가끔 생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예에서와 같이 겉만 보다가 진주를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창업가들의 외모와 언변을 관통해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