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내가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그만두고 스트롱벤처스를 시작할 당시 나는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싶으면 무조건 물리적으로 미국에 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을 했다. 아무리 세계가 연결되어 있더라도 한국과 미국의 물리적인 위치 차이는 한국에서 미국 시장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팀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불리한 약점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이 허락한다면 나는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라고 항상 권장했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없이 – 위에서 내가 말한 부분 중 ‘상황이 허락한다면’을 이분들은 너무 쉽게 생각한 거 같다 – 무턱대고 미국으로 가서 실패한 한국 스타트업을 너무 많이 만났고, 이와는 반대로 미국이 본사가 아닌 해외 스타트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조금씩 나오면서 나는 이런 내 생각을 더는 고집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모바일 게임의 강자 슈퍼셀이다. 2010년도 북유럽의 핀란드에서 탄생한 이 작은 게임 개발사는 핀란드에서만 서비스를 운영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을 제패했다. 아마도 창업한 이후 2-3년까지는 핀란드를 떠나지 않았고, 북미 시장을 석권한 이후에 미국에 사무실을 만든 걸로 알고 있다. 참고로 슈퍼셀은 2015년도에 단지 3개의 게임만으로 매출 2.6조 원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는 굳이 홈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아도 제대로 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만 있다면 한국에 본사를 두고도 글로벌 비즈니스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주장을 했다.
그런데 요새 포케몬고 사태를 보면서 다시 생각을 재정비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포케몬고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한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 특히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동네(=local) 비즈니스 –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투자자와 창업가들은 이 서비스와 포케몬고가 만들어 가는 사회적 현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물리적으로 포케몬고를 할 수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물론 이걸 어떻게 하고,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에 있는 내 친구들을 통해서 듣고 있고 다양한 기사를 접해서 대략 알고 있지만, 포케몬고를 글로 읽는 거와 실제 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르므로 참으로 답답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포케몬고를 아직 한국에서 할 수 없으므로 인해서 이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하는 한국 창업가들의 기회손실은 치명적이고, 이런 비즈니스에 투자를 해야 하는 나 같은 투자자들도 눈 뜬 장님같이 “포케몬고가 그렇다고들 하더라”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미국에 있었으면 직접 포케몬고를 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하므로 이를 통해서 느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는 신규 제품이나 서비스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분명히 이 중 몇 제품들은 크게 될 것이다. 미국에 있는 창업가들이 이러고 있는 동안 한국에 있는 우리는 그냥 이런 현상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끝난 NBA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미국에 있었으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농구 이야기를 했고, TV를 켜도 항상 방송되는 게 NBA 경기이고, 미디어에서도 계속 커리와 제임스 이야기만 하니까 그냥 자동으로 관심을 두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단 그 누구도 NBA 플레이오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관련 소식을 내가 노력해서 찾아야 했고, 이렇게 관련 콘텐츠들이 나한테 푸쉬되지 않으니 나도 자연스레 흥미를 잃고 이와 함께 관심도가 내려갔다. 한국에서 농구나 스포츠 관련 앱을 개발하려는 창업가들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국의 창업가보다는 태생적으로 불리한 시작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주목해야 할 만한 현상이다. 내가 한국에 사는 창업가이며 포케몬고 관련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어려움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 시장을 잘 모르는 팀이 –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고 미국인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모르는, 그리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 글로벌 시장을 위한 제품을 한국에서 만들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특히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B2C 제품은 단순하지가 않다. 소비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문화, 패턴, 트렌드, 삶, 주위 환경, 주위 사람들 등 상당히 복합적인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미국에 물리적으로 있지 않으면서 이런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만든다는 건 상당히 어렵다. 포케몬의 예에서 말한 대로 한국에 있으면 미국사람들이 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고, 어디에 관심이 있으며, 요새 유행하는 게 무엇인지를 직접 깊게 이해하고 체험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서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을 수 있어도 한계가 있다. 마치 내가 포케몬고 관련 겪는 어려움과 같이.
그렇다고 북미 시장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라면 본사를 북미로 옮겨야 한다는 단순한 흑백논리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나도 이와 관련된 생각이 주기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다른 독자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미지 출처 = theverge.com>
Owen Song
전 지금 샌프란에서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데요.. 저도 예전엔 무조건 서비스를 하려면 미국에서 해야하고, 또 더 정확하게는 밸리에서 해야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직접 체감 해보니 burn rate이 너무 높고 만약 영업을 in-person 으로 할 필요가 없고 타켓 마켓이 샌프란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면 굳이 여기 안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리적 위치보다 중요한건 팀 멤버들이 고객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대신에 다 같이 파이를 키우려고 하는 샌프란의 스타트업 문화 자체가 빛나긴 하는 것 같아요.
Kihong Bae
실은 저도 생각이 항상 왔다갔다 해요^^ 좋은 경험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성공한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죠. 뭐 궂이 원칙을 만드시려고.
Kihong Bae
뭐..원칙을 만드려는건 아니지만…그래도 뭔가 기준은 있어야할거 같아서요..
박정현
그래서 속초에 왔습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Kihong Bae
어떤지 알려주세요^^
장웅
예를 들어, 한 지역의 니치 시장을 잘 파악해서 인구배율로 그 시장의 곱하기 n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니치’라는 말이 갖고있는 특성상 곱하기 n이 잘 안될 확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류 보편의 본능을 눈치껏 잘 찾아내서 그것을 이용하는 사업모델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켓몬 고를 통해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지만, ‘기술’ 보다는 ‘닌텐도’와 손을 잡은 것이 신의 한수였다 말하는 것의 배경에는, 이미 포켓몬 이라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20여년간이라는 세월을 통해 특정세대의 인류 보편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쌓아온 애니메이션 속의 수많은 캐릭터들이 그것을 보고 자라온 최근 20~30년간의 세대로부터 엄청찬 비즈니스 챤스를 다시 끄집어낼 것을 예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제 생각을 정리하자면, ‘인류 보편의 본능 또는 그것에 가까운 것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면 로컬성을 벗어나 상당 부분 새로운 지역의 고객에게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며, 그 서비스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파인튜닝이 현지 파트너 등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게 아닌가’ 입니다.
장웅
좀 뜬금없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오늘 아침 SBS 모닝 와이드쇼를 통해 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알게되었는데, 중국을 대상으로 인터넷 방송을 하는 BJ들이 수십억을 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별풍선 같은 것을 받아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무슨 방송을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대형 시장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더라구요.
어떤 종류의 서비스를 하나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한 시장에서 (언어권 또는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문화적 특성으로 구별되는 로컬 마켓) 소비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진다면, 더 큰 시장을 바라보게 되는건 기업가로서 품어야 할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성격을 잘 파악해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