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약 70개 스타트업 중 (대)학생들이 창업한 회사는 6개이다. 모두 분야도 다르고, 재학생도 있고, 휴학생도 있다. 어떤 창업가한테는 첫 번째 창업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 창업 비슷한 걸 몇 번 해본 경험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학생 창업가를 일반화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이 중 몇 회사와는 내가 꽤 가까이 일을 하므로 그동안 학생 창업팀에 대해서 느낀 점을 나열해보려고 한다. 실은 이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본엔젤스 박은우 님의 “대학생 창업자들의 흔한 오해” 라는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포스팅을 보고 나도 생각난 김에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해본다.
일단, 학생 창업가를 보면 모든 걸 떠나서 나는 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20대 초반에는 상상도 못 하던 사업이라는걸 이 젊은 친구들은 거침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성공과 실패와는 상관없이. 학생창업의 장점과 이를 가능케 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는데 일단 물리적으로 젊다는 건 온몸으로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거나, 또는 창업이 아닌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세대에 비하면 요새 학생들은 걱정이 많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을 해야 하고, 계속 복잡해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인생 계획을 학창시절에 세워야 하는데, 이건 우리가 학생일 때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래도 가정이 있는 직장인들에 비하면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돈에 대한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창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요즘 대학생들 공부 많이 해야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학생 창업가들과 일을 해본 경험에 의하면, 학창시절만큼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기는 인생에서 없는 거 같다. 시간이 많으므로 일을 더 오래, 그리고 열심히 할 수 있고, 젊으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체력적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인생에 대한 걱정이 없으므로 이 모든 게 가능하다.
또 다른 장점은 대학교만큼 전 세계 또는 전국의 인재들이 한 공간에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제적으로 집합되어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4년을 지내다 보면, 스타트업을 돌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양분인 사람을 – 그것도 다양한 스킬을 가진 – 만나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실은, 학교에 다니면 이런 좋은 기회가 매일 생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학교가 아닌 사회보다는 팀을 만들어서 창업하는 게 상당히 수월하다.
그런데도 대학생 창업이 우리 주변에 아직도 흔하지 않다. 그리고 창업한 학생팀 중 잘 성장해서 성공하는 팀들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학생팀의 성장을 방해하는 단점도 매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학생 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한국의 부모님이다. 실은 부모님이 문제라기보다는 성인이 되어도 스스로 생각하거나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더 문제지만, 하여튼 한국의 학부모들은 좀 심할 정도로 자식들의 인생에 관여를 많이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창업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대학교 교수님한테 학부모가 연락해서 불평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취업해야 하는 자식한테 왜 자꾸 창업하라고 교수가 부추기냐는 내용의 항의 전화인데, 이게 한국 부모들의 현실인 거 같다. 심지어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는 팀원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설득하고 허락을 받은 경우도 있다.
위에서, 학생들은 젊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창업을 결정하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했는데, 실은 이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젊고 시간이 많아서 학생들한테는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 소위 말하는 Plan B, C, D, E이다. 창업해서 열심히 하지만,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할 수도 있는 옵션이 있으므로 내가 봤던 꽤 많은 학생팀이 진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모든 것을 걸고 스타트업에 올인하지 않았던 경우도 많이 봤다. 이들한테는 ‘창업’이 단지 이력서에 추가할 수 있는 한 줄짜리 경험이 된다. 그래서인지 학생팀을 만나면 내가 요새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이 사업 정말 제대로 할 마음 있나요?” 이다.
많은 대학교가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면서 교내 벤처기업에 사무공간과 혜택을 제공한다. 가난한 학생 스타트업한테는 좋은 제안이고 그 취지는 고귀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학교를 사무실로 사용하면 장점보다는 단점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일만 죽어라 해도 잘 안 되는 게 벤처인데, 학교 안에 있으면 일을 방해하는 잡음이 많다. 학교라는 상아탑 안에 있다 보니, 눈에 레이저를 키고 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힘들 수도 있고, 학생 친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몇 번 봤다. 실은 학교 안에 있으면 아르바이트생이나 인턴들을 채용하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한데 – 어떤 학교들은 교내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면 학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 이럴 경우 소위 말하는 ‘뜨내기’들이 너무 많아지고, 사무실이 휴학생이나 복학생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휴식공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무료 또는 매우 저렴하게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홍보활동과 행사에 참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군 복무를 아직 하지 않은 남자 학생들에게는 군대가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잘 결심해서 창업했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재미도 있고 사업도 성장을 해서, 제대로 해보려고 휴학을 하면 덜컥 영장이 나오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옵션이 별로 없다. 우리가 투자한 몇 학생팀도 군 복무 문제 때문에 병역특례 지정업체 신청부터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는 어쩔 수 없이 사업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어쨌든 나는 우리가 투자한 학생팀들을 좋아하고 응원한다. 내 나이의 절반인 이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다는 건 매우 멋지고 즐거운 일이다.
<이미지 출처 = http://getentrepreneurial.com/archives/famous-student-entreprene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