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다면, 최근 2년 동안 비트코인보다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는 걸 잘 알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융기관 중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 한두 개 안 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열기는 대단하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은행에서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대부분 실체가 없는 파일럿 테스트들이고 필요성이 아닌 “남들도 다 하는데,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FOMO 때문인 거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me too 테스트들이 me only 혁신으로 이어질 거라는 건 확신하고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은행의 프로젝트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인데, 많은 분이 나한테 private과 public 블록체인에 대해 문의를 해서 오늘은 이와 관련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남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permissionless 라고도 하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말 그대로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블록체인이고, 비트코인은 특성상 다른 사람한테 돈을 보내기 위해서 은행 같은 제삼자한테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특정 기관에 등록하거나 인증을 받을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누구한테나 열려있기 때문에, 아무나 비트코인 주소를 만들어서 다른 주소로 돈을 보낼 수 있고,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구나 하드웨어를 구매하면 (기술적 지식이 있으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마이너가 되어 블록을 생성하고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기여할 수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코드는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전체 블록체인을 내려받고 설치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갑이나 결제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고, 다른 블록체인을 개발할 수도 있다.
서로를 모르고,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네트워크인 퍼블릭 블록체인은 몇 가지 태생적인 리스크를 갖고 있다:
-그 누구도 컨트롤 하지 않고, 허락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돈세탁이나 밀수품 거래에 사용될 수 있다. 이는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누구도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블록체인을 유지하려면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채굴)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로 운영되기 때문에,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변경하는 게 쉽지 않다. 네트워크 51%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런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은행과 같은 기관에서는 블록체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선호한다. 네트워크에 가입하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흔히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permissioned 블록체인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R3 컨소시엄 은행들이 사용하는 Ripple일 것이다.
대부분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하나가 아닌 다수의 업체가 파트너쉽이나 컨소시엄을 통해서 만든다. 컨소시엄 회원 업체들의 상호 승인과 허락을 통해서만 블록체인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퍼블릭 블록체인과 같이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도 특정 은행 또는 정부 주도로 여러 은행이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이 연합체에 속한 기관들끼리만 사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을 많이 수행하는데, 이게 모두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개념상, 이 네트워크의 회원들은 어느 수준까지는 백그라운드 체크를 통해 선정되었기 때문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테러범이나 밀수범은 네트워크에서 제외할 수 있다(사전 스크리닝을 통해서)
-컨소시엄 회원들이 동의한 특정 목적만을 위해서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최적화할 수 있다(위에서 언급한 Ripple은 글로벌 금융 거래만을 위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퍼블릭 블록체인같이 여기저기 분산된 불특정 다수의 채굴자가 거래를 증명하는 모델이 아니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사용자들이 거래를 증명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거래를 증명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필요 없기 때문에 ‘채굴’이 필요 없다
-프로토콜을 변경하거나 업데이트 하는 게 훨씬 쉽다. 민주주의 방식이 아니라, 그냥 컨소시엄에서 하자고 하면 하는 거다
-폐쇄형 블록체인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어느 정도 보장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은행이나 정부기관같이 역사가 있고, 보수적인 조직에서는 공개보다는 비공개 블록체인을 채택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컨소시엄에서 블록체인을 통제할 수 있으므로, 혹시나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면 적절한 조치를 인위적으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자체가 서로 전혀 모르는 수 천, 수 만 명의 사용자들이 랜덤하게 참여하는 공개 네트워크인데, 이는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고,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개념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에서 이런 개방적 특성이 제거되면, 굳이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냥 은행들이 과거에 하던 방식대로, 인허가를 받은 사용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굳이 블록체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블록체인을 인터넷과 비교하고 나도 이에 동의한다. 블록체인이 인터넷과 같이 단기간 안에 혁신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방되어야 한다. 닫혀있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읽을 거리(17.03.28) – dummy.
[…] Public 블록체인과 Private 블록체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