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초기 단계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이때는 제품이 있는 팀도 있고 제품이 없는 팀도 있다. 실은 이 단계에 투자하는 건 객관적인 수치보단 –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수치가 별로 없다 – 사람, 시장, 감, 느낌 등을 기반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므로 투자 후 성공하는 회사보다는 실패하는 회사의 수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데, 가끔 운이 좋으면,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겨서 누가 봐도 이젠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는 팀이 있다. 얼마 전에 이런 회사 대표의 고민거리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내가 “이제 회사에 어른이 필요한 거 같네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회사의 성장과 각 단계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 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주로 엔지니어 출신의)창업 팀이 시장의 허점을 발견하고, 본인들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서 재미 삼아서 만든 제품이 투자를 받고, 고객이 생기고,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면, 이제 본격적인 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부터 성장통이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는 제품을 고도화하기 위해서 더 많은 개발인력이 필요하다. 기술 스타트업을 하는 분들은 모두 동의하겠지만, 그냥 개발하는 사람은 시장에 널렸지만, 제대로 된 개발인력은 정말 찾기 힘들고, 이런 사람을 찾고, 회사로 데려오기까지는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대표이사는 채용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까울 수도 있지만, 매우 중요하다. 실은, 개발인력 채용은 대표이사보다는 CTO의 영향력이 더 크고, CTO가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CTO는 주로 기술과 씨름하는 걸 좋아하지, 사람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기술도 알지만, 개발인력을 잘 리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CTO와 죽이 잘 맞는 VP of Engineering이 필요하다. VP Engineering에 대한 의견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CTO는 회사의 큰 기술과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단기적인 것 보다는 중장기적인 기술적 이슈를 주로 다루고, VP Engineering은 개발팀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내부적으로 다른 부서와 개발부서의 협업을 원만하게 도모하는 일을 한다.
개발력이 보강되면서 제품이 더 단단해지고, 이 제품으로 큰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능력, 경험, 그리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창업가들은 대부분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고, 돈보다는 큰 비전이나 전략을 보고 움직이는데,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리와 운영 능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물론, 창업가들이 이런 스킬을 배우고, 스스로 창업가에서 관리자로 변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창업가와 관리자의 DNA는 다르기 때문에 마크 저커버그 같은 멀티플레이어는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시점에서 창업가는 회사의 운영을 담당할, 조금 더 큰 조직에서 이런 경험을 한 참모를 찾게 된다. 자신의 필요 때문에 특정 문제를 기술적으로 접근했던 창업 초기와는 달리, 조직을 관리하고, 회사에 매일 들어오는 현금을 관리하고, 잘 만들어놓은 ‘엔진’에 계속 기름칠을 하면서 유지보수까지 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 수 있는 관리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이 단계에 진입하는 우리 투자사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실은 내가 만든 회사가 이제 내가 혼자 운영하기에는 너무 커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게 쉽지 않지만, 똑똑한 창업가들은 잘 적응한다. 주로, 이 단계에서 회사로 영입하면 큰 도움이 되는 인재들이 컨설팅, 투자은행, 대기업 전략 출신이다. 나는 MBA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 단계에서는 MBA들이 도움이 많이 된다는 걸 직접 경험해봤다. 시장의 흐름을 보면서, 큰 전략을 만들고, 이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들을 채용하면서, 회사의 daily operation 을 담당하는 건 뭔가를 새로 만드는 거보다는 만들어 놓은 거를 잘 키우는 건데, 이건 완전히 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회사가 계속 성장을 하면, 창업 초기에 필요했던 인력이나 자원이 어느 순간 더 효과가 없다는 걸 느낄 것이다. 아직 비즈니스모델이 없는 작은 웹사이트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원과 다양한 사용자들이 돈을 내면서 사용하는 서비스를 더 키우고, 최적화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자원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창업 초기의 인력이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스킬을 배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이 시점이 오면 다른 업무를 담당하거나, 다른 회사로 – 본인의 이런 능력을 더 필요로 하는, 더 작은 회사 – 옮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모든 회사가 겪는 성장통의 일부이다.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년에 쿠팡의 경영진을 모두 외국인으로 교체한 이유도 이와 비슷할 거 같다. 1조 원짜리 회사를 만드는데 필요한 인력과 이 회사를 5조 원 가치로 만드는데 필요한 인력은 다르다. 아마도 쿠팡을 10조 원 이상의 회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이런 이커머스 회사를 이 정도 규모로 성장시킨 경험을 보유한 사람들이 필요할 텐데, 한국에서는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아마존이나 월마트, 또는 급성장한 미국의 스타트업에서 외국인 인재를 영입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길었는데, 하여튼 강조하고 싶은 건, 회사의 단계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업에 최적화된 팀이 있는가 하면, 남이 만들어놓은 제품을 좋은 비즈니스로 성장시키는데 최적화된 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