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의 시즌이 왔다. 우린 투자한 회사가 워낙 많고, 형식적인 주총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회사의 재무제표 승인과 같은 비즈니스의 방향이나 전략과는 별로 상관없는 주제라서,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린 투자한 회사가 많지만, 대부분의 회사와는 평소에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는 편이라서 굳이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업데이트를 받을 필요가 없다.

주총에서 자주 결정해야 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경영진의 연봉인데, 특히 창업가들의 연봉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책정하는 게 적당할지 많은 대표님들이 나한테도 자주 물어본다. 이 또한 정답이 없는 주제이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벤처기업이라고 경영진의 연봉을 무조건 낮게 책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누가 나한테 물어본다면, 회사의 자금 상황에 따라 적당한 수준에서 연봉을 책정하라고 권장한다.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라면, 자금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에, 너무 많이 가져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창업가가 월급을 아예 안 가져가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어떤 투자자는 이런 모습이 창업가의 굳은 의지를 반영하고, 돈을 아껴 쓴다고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국과 같이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헝그리 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인간답게 살지 않으면서 스타트업을 하는 건 완전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가 성장하면, 창업가도 연봉을 올려야 하고,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회사도 돈을 잘 버는 수준에 도달하면, 창업가들도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수준까지 회사를 성장시켰으면, 이들에게는 그 정도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래도 뭔가 기준같은게 필요하다고 하면, 나는 회사에서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 직원과 가장 적게 받는 직원의 중간값을 산정하고, 이 중간값과 최곳값 사이에서 창업가의 연봉을 책정하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전반적인 시장의 몸값과 우리 회사의 자금 상황이 고려되고, 회사 내 다른 직원분들과 상대적으로 차이가 안 나는 수준에서 연봉이 책정될 수 있다. 물론, 이건 굉장히 비과학적인 방법이고, 좋은 HR 부서가 있는 회사라면 연봉을 산정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방법은, 창업가들은 기회가 되면 본인의 주식을 조금씩 파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투자자들은 이걸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초기에는 최대 주주인) 대표이사나 창업팀이 회사의 구주를 판매하면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될 회사이면, 당연히 회사의 주식을 악착같이 보유해야하는데, 그 회사의 선장 격인 대표가 본인의 주식을 판매한다는건 회사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의미가 아닌가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회사의 비전이나 미래와는 전혀 상관없다. 대표이사도 가족이 있고, 본인도 먹고 살아야하는데, 그게 기본적으로 잘 안 되는 수준의 연봉을 회사에서 가져가고 있다면,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가치는 수백억 원대인데, 아직도 대표이사는 비만 오면 물이 새는 반지하 방에서 가족들과 사는 경우를 나는 과거에 본 적이 있는데, 이럴 땐 오히려 내가 주식을 조금 팔아서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가족을 혹사하면서 사업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없는 벤처기업이고, 한국에서 불필요하게 강조되는 헝그리정신, 그리고 어차피 창업가들은 회사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나중에 회사가 잘 되면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 텐데 월급을 너무 많이 받는 건 문제가 있다는 산업 전반에 확산된 인식때문에 스타트업 창업가의 연봉에 대한 말들이 많다. 그리고 대표이사가 회사의 주식을 판매하면, 굉장히 안 좋게 보는데, 기본적으로는 창업가들도 사람이고, 가족이 있는데, 일단 먹고 살아야 한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창업가들이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지만,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지만 모든 주주의 이익이 극대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