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학위는 창업함에 있어서 유용할까?”
나 또한 MBA 과정에 발을 담가 봤고, 내 주위에는 MBA 출신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매우 예민한 이슈이다. 분명히 나랑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사실 MBA는 창업과는 전혀 상관없고, 오히려 창업에 방해가 되는 학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MBA 과정에 발을 담가봤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MBA 프로그램 중 하나인 와튼 경영 대학원에 입학해서 첫 학기를 다녔다. 졸업도 못해놓고 다 아는 양 말하긴 민망하지만, 가장 바쁘고 힘든 첫 학기를 보낸 학생 관점에서 MBA 과정이 대략 어떤지는 안다. 와튼 스쿨의 MBA 과정에는 해마다 약 900명이 입학한다. 이 중 대략 30% 정도가 – 물론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 졸업 후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에 취업하거나 본인이 직접 창업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왜 바로 창업하지 않고 굳이 20만 달러 가까운 혹독한 수업료를 내고,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MBA 학위가 필요할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난 후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려고요.
공자님 말씀이다. 다만, 현실성과 신빙성이 떨어진다. 나도 MBA 과정에서 경영 이론과 마케팅 전략을 공부했다. 또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기존 기업이 특정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신물 나도록 읽어보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창업을 해보니 MBA 과정에서 배운 어떤 이론이나 사례도 통하지 않았다. 이론은 말 그대로 실용성이 떨어지는 일반론이며,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교과서적인 모범 전략을 구사할 만한 인력도 자금도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기업이 내 회사와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 다른 기업의 사례는 말 그대로 다른 회사의 사례일 뿐이다.
내 경험상 벤처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MBA 과정에서 배운 내용은 첫째, 남들보다 빠르고, 좋고, 싼 걸 추구해야 하는 벤처 창업에서는 이미 과거의 것이다. 둘째, 와튼 스쿨에서 배출한 MBA 졸업생이 지금까지 총 8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 동문이자 잠재적 경쟁자도 다 똑같은 내용을 안다는 뜻이다.
벤처 현장은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시대로 움직이지 말고 현장에서 싸우는 자신이 직접 현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서 즉각 행동해야 한다. 이런 기술은 책으로는 못 배운다. 오로지 몸으로 부딪히고 쓰러지고 일어나는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다.
MBA 학위가 창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창업의 꿈을 가지고 입학한 사람도 막상 졸업이 가까와지면 투자비 회수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2년간 소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면, 수익은 둘째치고 본전 생각이 간절해진다. MBA로 월급쟁이 몇 년 하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도 있는데 창업이란 기약도 없는 투자를 한 번 더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더 현실적인 어려움은 대출 상환에 대한 압박이다. MBA 졸업생 대부분은 20만 달러 가까이 되는 MBA 과정 학비 때문에 대출을 받는다. 보통 평균 10만 달러 넘게 빚을 진다. 학자금 대출이 1억 원이 넘는데 억대 연봉을 뿌리치고 무급 창업자의 길을 밟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MBA 과정의 기본이 되는 cost-benefit 분석을 해보면 완전 미친 짓이다.
앞에서 언급한, 졸업 후 창업하겠다던 와튼 MBA 학생 중 몇 명이나 실제로 창업을 했을까? 내가 아는 건 4명 미만이다. 대신 MBA 학위는커녕 학사 학위도 없는 젊고 거침없는 청년이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한다. 하버드를 중퇴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나 졸업을 6개월 앞두고 MIT를 중퇴한 드롭박스 공동 창업자 아라쉬 퍼도우스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MBA가 아주 쓸모없는 학위라고 생각하지 말자. 대기업, 컨설팅, 은행 또는 중견 벤처에 취업할 때는 아주 유용하다. 다만, 실제 창업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또한, MBA 과정을 졸업하면 누릴 수 있는 큰 특혜가 있는데 바로 동문 인맥이다. 미국에도 학연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문이 전화했는데 일면식이 없다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일 진행이 훨씬 편하다. 대신, 좋은 동문 인맥을 만드려면 좋은 학교에서 MBA를 해야한다.
“돈이 많으면 좋지만, 평생 그 돈을 쓰지 않는 건 마치 늙어서 섹스하려고 체력을 비축하는 거와 같습니다.” 오마하의 현자 워런 버핏이 한 명언이다.
공부 더하고 경험 더 쌓고 창업하려고 MBA 과정 2년을 보내는 건 마치 40대에 섹스하려고 20~30대에 체력을 비축하는 거와 같다
아직도 창업하기 위해서 MBA를 하겠는가? ‘스타트업 바이블 2: 계명 03 – MBA 갈 돈으로 창업하라‘를 읽고 판단해 봐라.
[生生MBA리포트] 시리즈 | THE STARTUP BIBLE
[…] 과거에 MBA 무용론에 대해서 쓴 몇가지 글들이다: -MBA와 창업 -Case study 공부하지 […]
Anonymous
우연히 블로그 들어와 글 읽고 댓글 남겨봅니다.
현재 창업을 시작했고,
지탱해나가고 있는 한 사람 입장으로서,
저는 창업이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수록
경영학 이론 속의 지식들이 하나하나 들어맞는단 생각,
그 이론은 이래서 필요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매번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말하면,
제가 학부를 졸업할 때 쯤 '학교가 나한테 해준건 졸업장 밖에 없네'라고
투정 부리던 시절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이 저 책을 광고하기 위해서였다면
어느 정도 잘 맞아 떨어졌다고 보였겠습니다만,
창업에 있어서 MBA의 불필요성을 말하고 싶었다면, 글쎄요.
애초에 당연한 것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미 만들어지고 체계적으로 (그나마 학문으로서) 짜여진 틀안에서
경쟁력을 얻는 것은 창업자가 가진 교과서, 그 이상의 '무엇'일 것일테죠.
설마 이것을 '얻으려고'
그 MBA,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MBA 프로그램 중 하나인 와튼 경영 대학원'에 돈을 쏟으셨던 건 아니었을거라 믿습니다.
씁쓸하지만 왜인지 미소가 지어지는 글입니다.
Anonymous
뭐.. 그런 식으로 따지면 창업하려면 대학을 갈 필요도 없죠.
결혼도 연애가 있고 중매가 있듯이
창업도 고졸 직후가 있고 박사후도 있는 법이죠..
세상 사는 법이 어찌 한가지만 있겠습니까..
오히려 제 주변에는 MBA로 인해 창업을 더욱 꿈꾸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MBA가 창업에 대한 의식을 깨워줬다고 할까요?
소위 MBA에서 기업가정신과 관련한 한두개 또는 많은 과목을 들은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비록 "뭐 이런 뜬 구름 잡는 소리가 있어?"라고 실망하게 되지만..
졸업 후 다시 조직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신과 맞지 않는 생리를 더욱 느끼고
거기에 MBA 당시 배웠던 여러 리더십, 기업가정신을 떠올리며
박차고 나와 창업을 하게 되는 경우도 숱하게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있다면,
젊은 사람만큼의 순발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최소한 Fat하지 않고 Lean하게 창업을 하는 능력은 뛰어나죠.
덕분에 창업 5년만에 10배 이상의 투자 회수를 하는 기업을 만들 기회는
줄어 들지 몰라도, 시대가 변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MBA는
본인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창업본능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창업했던 사람에게 또 다른 창업의지를 불태우게 하기 위해서,
되도 않는 창업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정신차릴 수 있는 기회로,
졸업 후, 내면의 끓어오르는 창업의지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등등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렇게 하기 위해 MBA가 필요한 것이냐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결혼하기 위해 굳이 중매를 해야하느냐? 라는 질문이 옳은가?"
인생 최대/최고의 선택인 결혼도 여러 방향이 있고
그 여러 방향에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행복의 길은 다 다른데,
그깟 창업이라는 이슈를 가지고 뭐가 더 최적이니 마니 하는 것은
너무 인생을 획일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업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배제하면 실패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죠.
창업 전문가를 추구하신다면 인생살이의 접근방식 다양성을 배제하면 안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신 내용 중, 미국 학비가 너무 비싸 대출금 갚느라 창업할 여유가 없다는 말은 동의하지만, 이도 요즘 학부생들도 똑 같이 겪고 있는 일이라..
결국 대출금 갚느라 창업을 못함다면 이는 대학원 뿐만 아니라 대학도 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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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잘 지내지? 그냥 개인적인 의견이고 no offense for the Whartonites!
김민정
오빠 잘지내시죠? 완전히 동의할수밖에 없는 글이네요. 저 또한 entrepreneurship에 관심이 많아 MBA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용기를 더 잃게되었고(이건 나이때문인가? ㅎㅎ) ROI생각도 나고해서 결국 대기업으로. 특히나 MBA에서 배웠던 entrepreneurship관련 class들은 waste of time이었어요. teamwork이나 leadership 등 soft skill을 배우기는 좋은 기회였던걸로 결론냈어요.
Zealot
맞는 말씀입니다. MBA보다는 멘토가 필요한것 같네요. 미리 창업해서 어느정도 회사를 키운 선배 창업자가 후배들에게 케이스 스터디 혹은 개별 컨설팅해주는 것이 좋아보여요. (주변을 보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