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알고 내 블로그나 책을 읽으신 분들은 내가 대기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오늘은 대기업들의 편을 좀 들어보려고 한다. 솔직히 대기업 편드는 건 아니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몇 마디 한다는 게 맞을 듯. 오늘도 한 흥분하고 화난 창업가한테 한국의 대기업들이 벤처기업들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번 들었던 익숙한 이야기이다. 벤처기업이 좋은 서비스를 시작하니까 대기업에서는 이를 인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똑같은 서비스를 시작해서 결국 유망한 벤처기업을 죽였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 것일까? 미국 대기업들은 무조건 직접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한국 대기업들은 무조건 스타트업을 인수하지 않고 자기들이 다 하려고 하는 것일까? 겉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숫자로 보면 한국에서는 작은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에 인수되면서 exit 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 특히 실리콘 밸리와는 너무나 대조된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분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미국의 M&A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이유는 대기업들의 마인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아주 매력적이고 섹시한 스타트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기업들의 문화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생각이나 전략은 같다. 좋은 제품/서비스를 만들어서 고객을 만족하게 하면서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혁신이나 새로운 서비스는 작은 스타트업들이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들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으면 대기업들의 레이더망에 걸린다. 돈이 될 서비스라는 판단이 서면 대기업 인력들은 여러 가지 시장 조사와 내부 연구를 통해서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게 더 좋을지 아니면 본인들이 직접 하는 게 더 좋을지 고민을 한다. 기술적 장벽도 별로 없고, 사용자들의 engagement도 아주 높지 않으면 주로 대기업에서는 무식하게 돈과 사람을 투입해서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해 버린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 이런 경우가 한국보다는 미국이 훨씬 더 많다 – 그냥 그 스타트업을 통째로 사버린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기술적 장벽 – 대기업이 따라잡기 힘들거나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어려운 기술
2. 사용자 수 – 이미 tipping point를 넘었기 때문에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해도 사용자 수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
3. 사용자 engagement –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서비스를 너무 잘 만들어서 사용자들이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서비스일 경우
4. Team – 실리콘 밸리에서 유행하는 acq-hire(acquire + hire). 제품은 별 볼 일 없지만(좋은 경우도 많다) 팀원들, 특히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맘에 들 때
이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서 대기업들이 작은 스타트업들을 인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나열한 4가지를 다 가진 스타트업들은 거의 없고(있으면 말해주세요), 이 중 하나라도 보유한 매력적인 회사들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자선단체도 아닌데 후진 스타트업들을 뭐하러 인수하는가? 본인들이 직접 하면 더 빠르고 잘할 자신이 있으면 직접 하는 거다. 근데 왜 이걸 욕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언론에서는 마치 대기업들이 작은 회사들을 죽이는 것처럼 기사를 쓰는데 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 물론,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영향력을 부당하게 사용해서 작은 회사들의 비즈니스를 방해하면 욕을 먹어도 싸지만 남의 서비스를 카피해서 더 빠르고, 좋고, 싸게 제공하는 건 욕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비자들한테는 좋은, 아주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자유경쟁 시장에서 남이 하는 서비스를 베끼는 건 욕할 수 없다.
얼마 전에 Altos Ventures 한 킴 선배의 Snapchat 이야기를 읽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를 정확히 잘 지적해 주셨다. 스냅챗이라는 LA 기반 스타트업의 소셜서비스가 10대들에게 불같이 퍼지는 걸 감지한 Facebook은 ‘Poke’라는 똑같은 자체 서비스를 만들어서 출시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만큼 스냅챗의 팀은 시장과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서비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단한 페이스북마저 스냅챗을 따라잡지 못했다. 솔직히 큰 기업들이 자만하면서 스타트업을 그대로 카피했다가 재미를 별로 못 본 이런 사례들은 미국에 많다. 한국은 이와 약간 다른 거 같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카피하면 훨씬 더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드는데 그걸 가지고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죽인다고 욕하면 안 된다. 애초에 그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별로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발생한 거다. 시장에서 먹히지도 않는 허접한 제품을 만들어 놓고 대기업이 베껴서 더 잘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죽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이제 좀 질린다. 그렇게 억울하면 대기업이 따라 해도 이길 자신이 있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어라. 그러면 큰 회사에서 인수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만약에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했다면 분명히 야후나 구글에서 인수했을 텐데 한국에 있어서 exit을 못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럼 실리콘 밸리로 가서 야후나 구글에 팔아보라고 말해보고 싶다. 그럴 자신 없으면 불평하지 말고 그냥 좋은 제품 만드는 데 집중해라. 한국의 M&A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대기업의 마인드도 어느정도 바뀌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섹시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6Ba2B7icSU>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이유 – IND CON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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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포
댓글이 더 격공
조은글에 조은 댓글들 만네요
Kihong Bae
네, 이런 productive한 댓글들/대화들 좋습니다^^
왜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인수할까? : 작고 빠른 벤처의 힘 - be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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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기업에서 후발주자로 이기기 힘든 뛰어난 회사들이 생기는 것이 M&A시장 활성화의 선결과제라는 점 공감합니다. 대기업의 느린 의사결정덕분에 스타트업이 훨씬 신규사업부분에서 많은 장점들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빠른 의사결정과 행동은 신규시장에서 어마어마한 무기니까요.
그래도 역시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진출에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이니 필요하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먼저 실리콘밸리의 M&A가 부러운 것은 M&A의 주체가 기업 나름의 영혼(혹은 기업목표, 가치 등)을 가지고 거기에 부합해서 M&A를 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M&A주체들이 애초에 여러분야에 진출을 하더라도 기업이 존재하는 그 핵심가치에 근거해서, 또 향후 방향성에 근거해서 필요한 매력있는 기업들을 인수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반면 한국 대기업들(다양한 대기업이 있겠으나 비난의 화살은 후발주자로 무분별한 시장진출을 하는 기업들을 향함)은 우수한 인재와 거대한 물적자원을 가지고 돈이 되는 분야에 영혼없이 뛰어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큰 연관성이 없는 분야마저 부지런히 후발주자로 뛰어드는 모습이 그에 대한 반증입니다. 애초에 문어발확장으로 일구어낸 부적용인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이유로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좋은 가치를 쳐주는 M&A를 시도할 의지가 없다고 봅니다. 돈이 되서 뛰어들려는 수익사업이었는데, 들어갔다가 마음대로 안되더라도 접고 나오면 그만이고, 굳이 M&A까지 할 이유가 기업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섹시한 스타트업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입니다. 기업이 신사업을 무슨 잘되는 부동산 임대사업쯤으로 생각하는 한, 급매가 아닌 M&A에 적극적이 되긴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은 기업보다 유리한 점들이 있습니다. 빠른 기동력. 두번째는 바로 영혼, 혹은 목표추구형(기업의 존재의의가 명확할때) 사업에서 나오는 디테일함. 기업이 진출시 인력과 자금에서 밀리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스타트업만의 강점을 갈고 닦아야 할 것 같습니다.
Kihong Bae
안녕하세요.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저도 대부분 공감하고 수긍되는 내용인거 같습니다^^
‘영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제 생각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기업의 영혼은 결국은 회사의 bottomline과 직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도 스타트업이 하는 서비스를 대기업들이 많이 따라합니다. 그 중 돈으로 밀어붙여서 더 잘되는 대기업의 서비스도 많고, 그렇지 못해서 결국엔 그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 한국은 이런 케이스들이 많이 없는게 좀 아쉽네요…
정욱교
익명으로 쓰신 분, 그냥 경영학부나 공대생같네요 꼭.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 | THE STARTUP BIBLE | ch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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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좇밥 회사들에 투자한다 | THE STARTUP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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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오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저정도가 스팸처리 되는군요.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어서 죄송합니다.
공준영 //
네가지 이유는 너무 큰 관점입니다. 따라서 어느나라든 차이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글은 차이를 설명한게 아니라, 공통점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원론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논할수 없습니다 .
제가 공감갈수 없다는건, 2013년에서야 만연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한 9년전 아니 5,6년전 정도면 이해가 갑니다.
더불어.. 3년 사이에 이루어졌던 몇십억 단위의 인수나 성공들의 시발점이
단순하게 저 4가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보면 다 고유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미국과 한국에 차이란 거기서 생겨나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차이란 보통 이 지점인데, 여기가 보통 시장 사이즈와 인건비,
투자, 법으로 발생하더군요.
이만 글을 줄입니다. 우연히 다시 들어와서 글을 달게 되네요.
공준영
저는.. 대부분 공감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댓글 쓰신분이 예로 들어주신 부분이 극소의 한부분들인거 같고 글쓴이 분이 차이로 들어주신 네 가지 이유가 훨씬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잘 설명해 준 것 같은 생각이드네요..
Anonymous
서적이나 언론들이 개발자들에게 너무 아름다운 모습만 비춰주는 듯~ 현실을 직시하고 집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Anonymous
정확한 지적입니다. 한국인들은 노력도 안하면서 대기업을 비난하기 바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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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s sense. 그런데 여유인력이 있든 없든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못 만드는건 완전 별개라고 생각함.
병혁
우리나라 대기업은 저인망식으로 고급인력을 쌓아놓는게 또다른 함정인듯. 미국처럼 타이트한 인력으로 일을 시키는게 아니라 여유인력이 있으니 왠만하면 직접하는게 더 싸게 치인다고 판단하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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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요..Watcha같은 서비스가 있었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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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일단 몇가지 clear 하자면,
1. 답변할 필요가 없거나 저한테 별로 설득력이 없는 댓글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삭제하지는 않습니다. 알아보니 익명님께서 쓰신 위의 "대부분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좀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댓글이 스팸처리되어서 댓글 스팸박스에 들어가 있더군요 (원하시면 스크린샷도 보내드리겠습니다). 스팸해제해서 이젠 볼 수 있습니다^^
2. 네, 맞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극히 제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습니다.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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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백종현
저랑 같은 생각이시네요.. 한국의 왓챠같은 서비스는 되려 네이버가 하고 있던건데도 따라잡다 못해 역전해버렸죠.
Anonymous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은 삭제하시는 군요. 아쉽네요.
한국과 미국은 크게 다릅니다. 시장 상황(크기, 반응 등)도 다르고 인건비도 다르고
투자도 다르며 법도 다릅니다. 이것 중에 단순하 극소의 한부분만 가지고 비교해서
공감가지 않는 글입니다.
이정도로 자세히 적으면 삭제 안되려나 싶네요.
Anonymous
대부분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좀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박영훈
미국 개발사와 우리나라 개발사의 환경차이를 비교한 글인데요.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링크 공유하겠습니다.
http://allofsoftware.net/315?utm_source=feedburner&utm;_medium=feed&utm;_campaign=Feed%3A+allofsoftware+%28All+of+Software%29
Anonymous
캬 재밌게 잘읽엇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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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 "소문난 미인 보러 강남/강북에서 알아서 찾아 온다"라는 말도 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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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거칠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겠군요^^ 그냥 제 감정에 충실하게 적었습니다. 어제 읽으셨던 글은 어떤 글인가요?
AlexPark
정확한 인사이트이십니다:)
beLaunch2013 때인가 여러 연사분들이 강조하시던게 생각나네요..
"굳이 VC 투자받으로 돌아다니지마라.. 멋진 제품, 혁신적인 뛰어난 제품을 만들면 VC, 그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항상 좋은 글,생각 감사드립니다 🙂 건강하십시요!
박영훈
거칠긴 하지만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읽었던 글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군요…
한국과 미국의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