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그대로 베끼는 현상에 대한 내 의견은 전과 변함없다.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냐, 아니면 그들이 하는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하냐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문제이다. 인수 가격이 1,000억 원인데, 그보다 더 저렴하게 대기업이 직접 더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면 그대로 카피하는 게 맞다. 그런데,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돈과 자원이 훨씬 더 많은 대기업이라고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렇게 뛰어난 인재들과 돈이 있는 구글이 작은 회사들이 하는 서비스를 금방 카피해서 이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항상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대표적인 예로 페이스북을 모방하려다 실패한 구글플러스가 있다(물론,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십 가지의 서비스가 존재한다). 네이버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스타트업이 잘 하는 거 같으면 이들을 카피하는 걸 우리는 여러 번 봤다. 이 중 성공하는 것도 있지만, 직원 10명 이하의 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접는 것도 우리는 목격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다시 작고 빠른 회사들의 product iteration, 그리고 그 결과물인 ‘사용자 경험의 오너쉽’ 이 바로 대기업도 절대로 넘지 못하는 커다란 진입장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 이 바닥에서 많이 사용되는 Slack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나도 조금은 써봤는데 – 우린 큰 조직이 아니므로 Slack을 제대로 사용할 기회가 없다 – 기존의 협업 제품들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그리고 편리하게 잘 만들었다. 껍데기만을 보면 다른 비슷한 제품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이걸 깊게 사용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미묘한 디테일과 사용자 경험이 최적화되어 있다. 아마도 수많은 사용자의 피드백과 제품 활용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계속 기능, UI, 경험을 빠르게 고치기 때문인 거 같다. 그리고 이런 지속적인 iteration이 가능한 속도와 민첩성은 대기업들이 카피하기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는 마케팅용 이메일 서비스 MailChimp를 들 수 있다. 메일침프는 내가 굉장히 자세히 사용해 봤는데, 이렇게 모든 사용자 시나리오를 생각한 제품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만든 제품이다. 메일침프를 사용하다 보면 “와, 이런 거까지 생각했다니” 라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몇 번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완성도 높은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았다. 유저수가 늘어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사용자 경험과 시나리오들이 발생하면서 이에 발맞춰서 지속해서 제품을 수정한 결과이다. 메일침프는 아직도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기능도 조금씩 추가하고, 바꾸고 UI도 계속 수정하고 있다.
Slack이나 MailChimp나 이제는 ‘작은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하기엔 모호하지만, 이들도 한-두 명이 구멍가게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들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이런 서비스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무수히 많고, 실은 아직도 비슷한 서비스들을 계속 직접 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워낙 시장이 크고 벌 수 있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원이 많은 대기업도 오랫동안 수만 번의 iteration을 통해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own 하는 스타트업들과 맞짱 뜨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대량메일 솔루션? 그거 그냥 우리가 만들면 되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메일침프를 통해 매달 700만 명의 사용자들이 100억 개 이상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형성된 ‘관계’와 제품에 녹아 들어가 있는 ‘사용자들의 경험’ 이란 아무리 돈과 인력이 있어도 단시간 내에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대기업들이 직접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 에서 내가 강조했지만, 대기업들에 높은 가격에 인수되고 싶다면 이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이나 네이버가 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했는데, 훨씬 더 잘 되어서 우리 회사가 망하면 그건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라 우리 서비스가 아직 부족해서이다.
Al
사실 대기업도 일단 제품을 빨리 만들기는 하더군요. 하지만 First Mover Status는 날라갔고, 빨리 수익이 나지 않으면 product iteration이 느려지고. B2B 같은 경우에는 커넥션을 이용하여 따라잡는 경우도 봤지만요.
Al
대기업: 니팀 내팀 니 프로젝트 내 프로젝트 내 영역 니 영역 사내 정치에, 전문 분야도 아닌 높으신 분의 의견이 과다하게 수용되고, 디비하나 돌리려면 매니저 3명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웹페이지 만드는 사람은 프로젝트 매니저만 통해서 얘기가 가능하고, 이메일에 스펙에 엑셀에, QA들은 바빠서 며칠씩 걸려 테스팅하고… 드디어 다 됬다 싶으면 3일 후에나 고객들한테 보낼 수 있고. 몇번 반복하다본 18개월이 지나가고.
스탓업: “Just hacked something together. Looks terrible but it works” “OK push to production”
그런데 사실 실수 하나에 몇억이 날라가고 주식 가격이 왔다갔다 하고, 몇백명을 효과적으로 motivate하기 힘들기에 대기업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