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한국 출장 후 이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정도를 보내면서 면세점 2군데, 던킨도너츠와 잠바쥬스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신용카드를 5번 긁었고, 서명을 4번 했는데 이 중 4번 다 내 full 서명을 하지 못 했다. 고객서명을 하라고 해서 진지하고 열심히 서명하는데 카운터 직원이 중간에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카운터 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내 서명을 대신 해줬다. 이번에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작대기 하나로.
너무나 대조적이다. 얼마전에 예스24.com 에서 책 2권 구매를 시도했는데 고객의 안전과 금융 보안을 위한 불필요한 각종 플러그인들과 누더기같은 프로세스 때문에 포기했는데,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신용카드로 구매하고 서명함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태도와 프로세스가 이렇게 허술한게 이해가 잘 안간다.
관련해서 이미 과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물건을 구매하고 신용카드 서명을 하기전에 항상 “제 서명이 좀 길거든요. 다 할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라고 말을 했는데 이젠 귀찮고 입이 아파서 포기할 시점이 온 거 같다. 이제 한국에서만 사용할 서명을 하나 새로 만들어야 할거 같고,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이 작대기 하나로 바꿔야할거 같다.
[과거글: 동그라미 서명]
최근 3년간 한국에 여러 번 출장 다니면서 의아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던 신용카드 서명 관련된 이야기다. 과거에는 실제 신용카드 전표에 펜으로 서명을 했지만 이제는 모두 기계로 바뀌면서 스타일러스 펜으로 기기의 화면에 서명을 한다. 그런데 미국과 약간 다름점이 있다면 미국의 경우 서명을 한 후에 누르는 ‘확인’ 버튼이 서명을 하는 기기에 있어서 신용카드 소비자가 누르게 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 서명하는 기기에 ‘확인’ 버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봤는데, 내가 갔던 식당이나 가게는 거의 이랬다). 대신 이 ‘확인’은 카운터에 있는 분이 알아서 누르게 되어 있다.
난 서명이 좀 길고 복잡해서 그냥 대충 동그라미나 줄 한두게 긎는 사람들보다는 서명하는데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명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카운터에서 그냥 ‘확인’을 눌러버려서 반쪽짜리 서명으로 신용카드가 결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직히 이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 주인이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 – 카드사용을 승인하지 않은거랑 동일 – 가게에서 승인을 해버리는거랑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막말로 내가 나중에 이 가게에 와서 이거 내 서명이랑 다르고, 내가 서명한게 아니라고 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몇 가게 주인들한테는 이렇게 따져봤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커녕 다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서 “손님 서명이 너무 길어요 ㅎ”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신용카드 뒷면을 보면 카드주인이 서명하는 란이 있다. 그리고 이 밑에 보면 “이 카드는 상기란에 서명된 회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양도, 대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미국은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면 카드 뒷면의 서명과 실제 서명을 비교해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신분증도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의 경우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문화 차이인가?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용카드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해보자. 도둑놈이 내 신용카드를 막 긁고 다니면서 내 서명이 아닌 다른 서명을 하는데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사기와 신용카드 정보유출 관련 사고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 요새는.
더 재미있는 건, 어떤 커피샾에서 계산하면서 내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카운터 알바생이 나 대신 그냥 다음과 같이 지가 서명하고 내 신용카드 승인을 해준 경우가 있었다. 뭐라 하니까 “원래 다 그렇게 해요”라는 성의없는 답변만 돌아왔고 그 알바생은 그날 나한테 험한 말 좀 들었다.
이런건 원래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 아닌가? 내가 너무 까칠한건가? 이런 생각을 아무도 해보지 않은건지 좀 궁금하다.
이동하
맥도날드 어떤매장에서는 카드를 손님이 직접 긁고 서명하는 구조였는데 카드 긁는 행위는 무지 불편한 경험입니다.
Kihong Bae
카드는 대부분 손님이 직접 긁지 않나요? 물론, 긁어 주는 곳도 있지만요.
Steve You
저는 대만 면세점에서 쇼핑할 때, 단 하나의 store도 빼놓지않고 모두 카드상의 이름과 카드 뒷면의 싸인 그리고 그곳에 제가 한 싸인을 대조해보더군요. 해외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각국의 스토어나 레스토랑, 미국과 한국을 통틀어서 대만면세점 같은 곳은 전무후무했습니다.
여담으로, 일주전 미네소타주의 AT&T store에 가서 새로운 device를 구입하고 결제하는데 약관에 동의한다는 싸인을 해야하는데, 직원이 ‘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하면서 자기 손으로 쓱 한줄을 긋고는 넘어가더라구요.
놀랍게도 그 직원은 LG트윈스의 선발피처였던 벤자민 주키치 였고, 그가 은퇴 후 AT&T에서 알바를 하는것도 놀랍지만 한국스타일이 익숙해져 직접 사인해주고 확인을 누르는 것을 보면서 ‘You like Korean style!’이라고 말해주자 주키치가 아주 좋아하더군요. 편리하다고.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 다른가봅니다.
resetb
댓글 달고 링크된 이전 글 읽어봤는데, 거기서 다 나온 얘기를 한참 떠들었네요. 암튼 패드와 점원과의 거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인 끊는 건 손바닥으로 제지 표시하면 좀 낫긴 한데 지금으로선 답없음…
Kihong Bae
아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ㅎ.
미국같이 서명 후 [확인] 버튼이 고객쪽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종업원들이 아니라 고객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할 수 있도록…
resetb
얼마 전 제가 만드는 팟캐스트에서 다뤘던 주제와 같아서 좀 더 재밌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처음엔 약간 찜찜한 정도였는데, 한 번 의식을 하고나니 점점 신경쓰이고 미치겠더군요 ㅎㅎ
결제 순간이 긴장된달까, 조마조마한 기분도 들고 한참 잊고 있다가도 당하고 나면 또 신경이 몰리고… 반복입니다.
자주 갈 집인데 그러면 결제 다시 하자고도 해 봤지만, 점원이 자주 바뀌고 잊어버리고 하니 소용없더군요.
전 이제 미리 사인패드에 손가락을 올려 놓고 기다리는 편입니다.
근데 완전 습관이 된 점원들은 올려놓은 제 손가락 옆 빈 틈으로 작대기 긋고 결제해버립니다ㅎㅎㅎ
‘한 번도 문제된 적 없었다’
‘다 그런다’ 가 흔한 레퍼토리입니다.
좀 신선했던 변명이 있는데
늘 차분히 기다려주던 점원이 어느 날 자기가 사인하길래 물어봤더니
‘손님들이 사인을 대신 해 달라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좀 주의깊게 봤더니
정말 사인을 시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점원 입장에선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센스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되기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카드를 건네는 것과 사인을 하는 행위 2가지가 있는데, 카드를 건네 받은 순간 이미 사인을 받았다고 생각해버리는 게 원인같습니다.
요즘 맥도날드 가니까 아예 손님이 카드를 긁고 사인을 하도록 시키던데 이렇게 하니 사인 문제는 깔끔하긴 하더군요ㅎㅎ
지나가다가
미국서 물건 살 때 서명 대신 Don’t Charge It 혹은 Stolen이라고 적어 보세요. 99% 그냥 결제됩니다. 한국이 전자상거래 쓰레기가 많은 건 동감하지만, 서명 확인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대충한다는 생각입니다.
gkeem
저 서명제도 자체가 사실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저 서명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점주나 직원이 서명을 받는 것에서 그치치 않고 그 서명이 카드의 서명과 일치하는 지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서명은 하는데에 읨가 있는게 아니라 그 서명이 원본(카드서명)과 일치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즉 서명이 일차하지 않을 때 결제를 받지 않는것이 핵심입니다.)
과연 카드를 훔친 사용자가 카드에 있는 서명을 흉내 냈을때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확률운 몇 %나 될까요? 점주나 직원이 그걸 발견하고 “서명이 다릅니다”하고 말할때 “가족카드”라고 하면 결제를 받아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한마디로 제 생각엔 카드결제시 서명은 의미는 없이 요식만 남은 그런 절차라고 생가가합니다. 글 쓰신 분처럼 복잡한 서명을 하고, 이걸 거래시마다 직원이 확인하면 다른 얘기겠지만요,
고든박
중간에 서명 잘라먹는 경우는 참 불쾌했습니다만 이의를 제기해도 저만 또라이 되는 상황이라 그냥 조용히 넘어갑니다. ㅠㅠ
Kihong Bae
가장 답답한건 화를 내도 종업원들은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를 전혀 못 한다는거죠…ㅠㅠ
jerry0906
기홍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댓글 답니다. 이런 현상이 매우 이상하다는 점에 동의하며,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워보겠습니다. 일단 임의서명의 책임은 카드 소유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거래에 대해 카드주인이 난 산적이 없다.하면 그 손실은 전적으로 본인 확인을 부실하게 한 가맹점에 돌아가게 됩니다. 결제시간 단축을 위해 가맹점이 at their own risk로 프로세스를 단축시키는 거죠.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리스크를 지는가? (미국에서는 $100짜리 지폐에도 위조 판별 펜을 그어보는데!) 경우의 수는 두가지 있습니다.
1) 대기시간 과다로 인한 판매실기의 손실이 부정사용의 손실기대값보다 큰 경우 : 고객 대기줄이 길어져서 고객 불편을 야기하느니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정사용 손실을 감수하겠다.
2) 캐시레지스터에 있는 직원의 대리인 문제 : 상점 주인은 그런 리스크를 질 생각도 없지만 직원이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해 절차를 단축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 경우 문제가 생기면 주인은 절차를 지키지 않은 직원에게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왜 유독 한국에서만 가능한지 가설을 세워보자면
1) 카드 부정사용의 확률이 다른 국가보다 낮다.
2) 한국고객이 다른나라 고객보다 계산 대기시간을 더 민감하게 생각하여 고객이탈의 원인이 된다.
3) 사고시 카드사와 가맹점간 부담비율이 타 국가와 달리 가맹점에 유리하다.
정도가 있겠습니다.
실제로 몇몇 편의점/수퍼마켓은 5만원 이하 무서명 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대신해서 서명하는 곳의 경우, 소액에 대해 서명을 안받고 싶겠지만 서명을 하지않으면 다음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POS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는 곳도 있습니다. Zara Korea는 카드에 서명이 없으면 신분증을 확인하고 정자로 이름을 서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거래시 본인확인을 위한 서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면 현재도 큰 의미없으니 프론트라인에서는 점차 지문 등 생체신호(애플페이!)로 대체될 것이고 백오피스에서는 알고리듬으로 불법사용 가능성을 감지(5분전에 서울에서 카드 쓴 사람이 어떻게 상파울루에서 구매를 하지?)해서 승인자체를 거절하거나 해당건만 추가 인증을 요구하는 형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리스크로 인한 손실은 소매가격에 반영될 것이고 부정사용자의 범죄가 선량한 사용자에게 부담이 된다는 문제가 있겠고
또는 점주가 파트타이머에게 빠른 계산 처리와 부정사용 감시의 양립할 수 없는 두가지 미션을 부당하게 요구하고 문제 발생시 파트타이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소비자는 법적 리스크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시면 분노가 감해지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Kihong Bae
제리님 안녕하세요. 디게 오랜만이네요 ㅎ. 잘 지내시나요?
네, 저도 소비자는 법적 리스크가 없다는건 잘 알겠습니다. 다만, 이런걸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상점직원들, 그리고 주인들의 attitude가 좀 거슬리네요…그렇다고 full 서명을 하는데 한시간이 걸리는것도 아니구요 (동그라미 사인보다 한 5초 정도 더?), 신용카드라는게 주인이 서명을 해야하는건데 그걸 상점 종업원들이 대신 해주는건 더더욱 이해가 안 가구요…
하여튼 긴 설명과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jerry0906
네 100% 동의합니다. 한줄요약은 소액결제 서명 면제 절차를 POS에 설치하면 모두가 행복할 것 같습니다.^^
Little insight for you
단순히 서명에 대한 중요성을 모른다기보단 한국의 “빨리빨리” 하자는 마인드에서 번진 하나의 습성인 것 같군요.
Kihong Bae
글쎄요…큰 차이는 없는거 같아서요…한 5초?
익명
도둑맞았을 경우 카드사가 책임지는 거 아닌가요?
익명
어쩌라고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