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벤처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VC는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VC도 아니다. 아직 역사도 짧고, 우리는 정말 잘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우리보다 더 잘하는 훌륭한 투자사들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최고의 투자자는 아니다. 실은 실적으로 보나, 인간적인 성품으로 보나, 이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 잘 하고 싶고,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알파고가 아니라서 항상 틀리고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디가서 막 욕을 먹지는 않는다(그런거 같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신뢰와 존중을 가지고 일 하고, 이 바닥에서는 잘 될 때보다는 잘 안 될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투자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상식 밖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VC 들이 많다. 창업자들한테 VC는 아주 중요하고, 어떻게 보면 생명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VC가 자기 돈을 가지고 투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회사의 생명줄인 돈줄을 잡았다 폈다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보여야 하고 VC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 이런 창업가들은 우리같은 VC들 한테는 매일 만나는 수 많은 스타트업 중 하나이지만, 창업가들에게 VC는 정말로 만나기 힘들고,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짧은 미팅을 위해서 몇 일을 고민하고 준비해야하는, 그런 존재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요새 펀드레이징 한다고 정말 바쁘다. 운이 좋아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회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잘 안되고 힘들어 한다. 이 중 한 회사가 어떤 VC에게 최종 발표를 했다. 한국에서는 이걸 최종 IR 미팅이라고 하는거 같다. 그 창투사의 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들이 참석했고, 우리 투자사 대표는 혼신을 다해서 만든 자료를 열변을 토하면서 발표했다. 모든 임원들이 좋아했고 okay를 했는데, 단 한 명이 – 대표이사가 – 반대를 해서 결국 통과하지 못 했다. 아무리 대표이사라지만, 다른 임원/파트너들이 다 찬성을 하는데 혼자 반대한다고 투자가 성사되지 않는것도 좀 희한하지만, 뭐 회사의 방침이 다 다르니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왜 반대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그냥 무조건 싫다고 하는데, 이건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임원들도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대표이사가 반대해서 안 되니, 미안하고 그동안 고생했다 하면서 그냥 그렇게 투심 미팅은 종료되었다.
이게 첫번째 미팅이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동안 오래 이야기를 했고, 여러 번 만났고, 내부적으로 괜찮으니 전체 파트너쉽 투심 미팅을 하게 된 거다. 여기에 우리 투자사 대표가 쏟아부은 시간, 노력, 노심초사, 마음고생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최종 투자 미팅에서는 당연히 찬성과 반대가 있을테고, 반대가 많으면 딜이 성사가 안 되는 건 당연하다. 내가 화가 나는 건 투자가 성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최종 미팅까지 왔는데 투자가 결렬되면, 최소한 왜 안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창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아주 잘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목숨을 바쳐서 일을 하고, 이 미팅을 위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 바친 이 젊은이에게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건 투자자 대 창업가가 아니라 그냥 같은 인간 대 인간의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그냥 이렇게 끝내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우리 투자사 대표는 이제 VC 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좋지 않은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이렇게 되면 나는 한국의 전체 벤처 생태계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은 투자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VC 투자를 돈 따먹기로 생각한다면 가능하겠지만, VC 투자는 단순한 돈 따먹기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투자자와 창업가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갖고 일을 해야한다. 위에서 말 한 대로 나도 존경받는 대단한 VC는 아니지만, 이런 투자자들 때문에 우리같이 선량한? 투자자들도 싸잡아서 욕을 먹는다. 참고로, 이 업계에는 나쁜 VC 보다는 좋은 VC 들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는 해주고 싶고, 운이 좋지 않았던 우리 투자사 대표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면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Sangsin Park
우연히 페이스북 공유로 글을 읽었는데 지난주 저의 상황과 너무 비슷합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Kihong Bae
네, 화이팅 입니다!
라영호
항상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스타트업 하는 입장에서 읽어봐야 할 좋은 글들이 많고, 다시 한번 전의를 가다듬게 되네요.
Kihong Bae
저야말로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Jin Ah Lee
굳이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일해본 경험에 따르면 아쉽게도 그다지 놀랍지 않은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고객사 프로젝트 보고 시 분명 부장급까지는 분위기가 좋다가도 ‘그분(주로 임원)’께서 탐탁치 않아 하신다며 전혀 건설적인 feedback 없이 내려온 한마디에 몇달동안 일하던 방향성을 몽땅 뒤집어야 했던 경험이 저말고도 다들 한번쯤 있으실걸요. 기홍님과 같은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고, 세대가 바뀌면서 점차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Kihong Bae
네, 비유는 약간 다르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라도 바뀌는데, 우리도 바뀌어야죠^^
윤석민
배기홍대표님! 안녕하세요!
예전에 폐차비교견적서비스로 잠깐 인사드렸던 윤석민 이라고 합니다. 대표님의 의견 잘듣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스타트업이 한번이라도 만나기 힘든 vc를 만나고 싶은 이유는 초기 창업단계를 지나면서 발생되는 이슈인 투자를 받기위한 이유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아이템이 좋은방향(매력적?)으로 가고 있는지? 등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수 있어서 입니다. 대표님께서 지속적으로, 많은 중요한 bible 많이 꺼내주세요!
Kihong Bae
대표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VC의 의견은 솔직히…그냥 ‘의견’일 뿐 입니다. 좋게 말하면 멘토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훈수 이죠…이 비즈니스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는 창업자가 가장 잘 압니다. Believe in yourself and believe more in your guts!
Won YongBong
님의 글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간 대 인간의 기본적인 에티켓” 이라는 말은 오늘은 유난히 와 닿는군요. 그 마음 늘 간직하면서 벤처들에 투자하신다면 잘하는 VC가 아니라 훌륭한 VC가 되시지 않을까 합니다. 늘 화이팅 하십시요.
Kihong Bae
좋은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잘 한 것도 있지만, 부족한게 많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웅
Startup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VC의 투자는 여러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만, 당장 눈에 보이는 현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현금을 집행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글에서 본 사례를 통해 생각해볼 때, 사람들이 조직이라는 이름 뒤에 숨을 수 있는 규모의 VC라면 피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사견을 갖고 있습니다. Startup이 투자받기를 고려할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장 현금유동성을 어떻게 확보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사업을 성장시킬까라는 본질이기 때문에,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회사에 결여되어있는 새로운 아군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Startup은 runway를 최대한 길게 만들 수 있도록, 자신의 연료를 태우는 속도를 줄이거나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만큼 찾아야 하며, 그런 노력속에서 좋은 VC를 만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위의 사례를 보니, 저도 약간 비슷한 사례를 겪긴 했지만 충분한 매너있는 분이셨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Kihong Bae
장대표님- 좋은 의견/경험 공유 고맙습니다. 실은 이 글을 쓴 후에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도 뭐 그렇게 자랑할만한 짓을 많이 한 VC는 아닌거 같네요…앞으로 더 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