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언을 탄생시켰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였다.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나를 찾아온 창업가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훈수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럴때마다 미생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고, 그 결과는 경기가 끝나봐야지 알 수 있는데 내가 뭘 안다고 훈수질을 하고 있을까.
창업가들을 보면 대부분 남들이 가지 않는 길들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기만의 바둑을 묵묵히 두는 사람들이다. 험하고 쉽지 않은 세상에서 자기만의 바둑을 둔다는거 자체로도 나는 이 분들한테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 자기만의 바둑을 둔다는거…겉으로 보면 멋져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굉장히 배고프고, 힘들고, 약간 미친 짓이다. 남들이 하는대로 하면 되지 왜 입증되지도 않고 승리가 보장되지도 않은 자기만의 바둑을 두고 있는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것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매우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더 많은 불확실성, 스트레스 그리고 짜증을 더하는건 바로 다른 사람들의 훈수이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면 엄청난 훈수와 지적을 받을 것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나를 믿는다고 생각했던 가족들, 업계 사장님들, 비즈니스 파트너들, 투자도 하지 않은 투자자들, 그리고 투자한 투자자들. 이 모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훈수질을 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도 본의아니게 가끔 이런 훈수질을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것 같다. 나에 대해서는 항상 관대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뭔가 지적을 해야지만 내가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같이 느껴지는 인간의 본능 때문인거 같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한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훈수를 하겠지만, 낯 두껍게 그냥 다 무시하세요. 계속 자기만의 바둑을 두세요. 그리고 이기세요. 반드시 이겨서 내 바둑이 옳았고, 내 목소리가 가장 크다는걸 그동안 당신들을 믿지않고 훈수했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세요.
자기만의 바둑을 두다가 패배하는게 평생 남의 바둑만 두는 것 보다는 의미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jlel.deviantart.com/favourites/42010620/Go-Wei-Q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