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회사를 만나는 만큼, 정말 다양한 창업가를 만나는데, 이들이 보여주는 회사 소개자료도 가지각색이다. 내가 특별히 선호하는 포맷의 소개자료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선호하지 않는 포맷과 내용은 있다. 주로 너무 길거나, 용량이 크거나, 영어 철자나 문법이 엉터리거나, 글자가 너무 많아서 슬라이드 한 장 읽을 때마다 눈이 피로해지는 그런 자료들이다. 그런데 한국 들어온 이후, 싫어하는 종류의 자료가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됐다. 바로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온갖 종류의 상과 인증자료가 붙어 있는 자료다.
“4차 산업 인증 기관” , “국방 산하 xxx 기관 채택 서비스” 등의 훈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표분들과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보면, 이게 본인들이 주장하는 만큼 대단한 게 아니고, 제품에 대한 인증이라기보다는, 서류작업을 잘 해서 받은 인증이라는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회사와 제품의 진정한 가치를 내가 못 본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정부가 인정한 제품에 대해서 나는 두 가지 불만이 있다.
일단 정부의 인증을 받고, 정부에 납품하는 과정은 상당히 문서 집약적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부에서 우리 회사의 진정한 실력을 평가하거나, 제품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기준에 맞는 여러 가지 문서를 제대로 작성했는지, 이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정부에서 정의한 표준 기술자 표에 적합한지, 그리고 회사의 재무상태가 양호한지 등의 기준에 더 많은 비중을 부여하는 거로 알고 있다. 이런 인증을 받으려면, 이만큼 서류작업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데, 대부분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매출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문서 작업에 자원을 투입하는 게 회사의 소중한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아닌 게 확실하다. 제품을 더 잘 만들고, 고객한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이런 훈장 하나 받기 위해서 회사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경영진의 태도와 생각 자체가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게 첫 번째 불만이다.
두 번째 불만은, 좋은 회사나 제품을 선정해야 하는 정부의 담당자들이 실무를 전혀 모르고, 이 제품이 정확히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제품을 선별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을 만들어서 – 대부분 대학교수나 현업과는 너무 멀리 있는 분들의 자문을 받아서 만든다 – 이 기준에 맞는 페이퍼웍을 열심히 만들어서 제출한 기업과 제품이 이런 기준을 통과한다. 이런 사람이 선정한 정부의 인증받은 제품이 좋을 리가 없다.
이런 이유로 내가 아는 대부분 정부의 인증을 받은 제품은 굉장히 질이 떨어진다. 그리고 대표이사도 이런 인증을 받으면, 마치 본인이 엄청난 제품을 만들었다는 착각을 하므로, 이후 더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관공서 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봤으면, 돈을 받고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런 제품을 만드는 업체에 누가 예산을 집행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거의 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이 선정해서, 위에서 말한 회사들이 만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