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벤처 투자는 홈런성 투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도 좀 해보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이제 잘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몇 개의 엑싯도 경험해보니, 초기 투자는 정말 아웃라이어에 투자해서 홈런을 치는 게임인 게 명확한 거 같다. 이를 비유할 때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루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베이브루스는 워낙 배팅을 많이 해서 삼진도 엄청나게 먹었지만, 맞았다 하면 홈런도 그만큼 많이 쳤다. 이게 초기 투자를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많이 망하지만, 워낙 초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중 잘 되는 회사는 엄청나게 잘 되는 거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렇다고 베이브루스가 눈을 감고 배트를 휘두른 건 아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본인의 경험과 힘을 잘 이용해서 배팅했듯이, 우리도 그냥 막 투자하는 건 아니다. 우리만의 철학과 경험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거다. 단지, 다른 큰 VC보다 많은 회사에 투자할 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많이 투자한 만큼, 많은 회사가 망한다. 실은 그때마다 내가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전에 한번 비슷한 글을 올린 거 같은데, 솔직히 단순한 재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작은 투자금을 집행한 초기 회사들이 망해도 우리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차피 소수점 몇 자리기 때문에 펀드의 수익을 위해서는 이런 회사들은 그냥 과감하게 버리고, 잘하는 회사에 집중하는 게 기계적이고, 수학적이고, 냉정한 투자적 관점에서 올바른 일이다. 어차피 일이란게 다 그런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항상 강조하듯이 우리는 financial industry에 종사하기보단, construction industry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단순히 돈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가슴뛰는 – 또는, 한때는 가슴 뛰었던 – 분들이 회사를 만드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다. 거의 100개 이상 투자한 펀드에서 한 개의 회사가 망하면, 펀드 수익률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회사를 만들기 전에 수많은 고민을 하고, 가족을 포함 주위 모든 사람한테 미친놈 소리 듣고, 엄청난 인생의 결단을 내린 그 창업가한테 이 조그마한 사업은 그분의 인생 전부이자 우주 전부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보다도 더 소중하고, 자식보다 더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인생 최대의 걸작품이다.

이 작품이 망하면 – 어떻게 보면, 확률적으로는 너무 당연한 결과지만 – 이 분을 처음에 지원하고, 응원하고, 돈을 대줬던,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가 회사 정리 또한 같이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실은 이 정리라는 게 좀 스트레스풀하고, 짜증 날 때가 많다. 내가 보기엔 더 해도 될 거 같은데 대표이사가 번아웃이 돼서 회사를 정리할 때는 내가 더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내가 보기엔 적당한 금액에 회사를 파는 게 모두한테 좋을 거 같은데 그것마저 싫다고 할 때는 내가 더 짜증 나고 화난다. 폐업하고 회사 정리를 하다 보면, 내가 믿고 투자했던 분이 저렇게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고, 의지가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할 때도 많다. 이럴 때도 짜증 나고 화가 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내가 화내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이런 심정이면, 모든 걸 바쳤던 사업을 정리하는 창업가의 마음은 얼마나 안 좋겠냐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보면, 그냥 다시 옆에서 이분들을 잘 지원해주는 모드로 돌아간다.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민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미안하고 창피할 것이다. 나는 이분들이 잘 정리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스타트업 경험을 기반으로 다시 멋진 도전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사업이 실패한 거지,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운이 좋다면, 이분들이 다시 창업 결심을 하고, 다시 스트롱한테 제일 먼저 돈 받으러 오겠지. 뭐, 다시 투자할지 안 할지는 그때 결정해야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