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고마운 점이 많아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대기업 또는 이 업과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매일 경험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다 나열하면 너무 많지만, 올해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 때가 두 가지 경우다. 둘 다 창업가들과 이야기할 때 느낀 점들이다. 내가 만나는 창업가 중 95%가 소위 말하는 고생하는 바퀴벌레형 창업가이다. 나도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 원래 사업은 힘들고,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에, 항상 버티면서 허슬링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나도 짧게 경험을 해봐서 알지만, 이게 정말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스타트업이 진짜 전쟁도 아니고, 조폭과 사업하는 것도 아니라서, 일 하다가 정말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음가짐만큼은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창업가들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서 고생하고, 힘든길을 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많다. 그리고 정말 가끔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누가 봐도 곧 망할 것 같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한테 “대표님, 그냥 이건 투자자로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이거 대체 왜 하시는 건가요? 그동안 잘 안 됐고, 앞으로도 잘 안 될 거 같은데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분이 조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글쎄요. 저는 제가 왜 이걸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고, 그냥 매일 일어나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계속 살아남으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그만두면 이 힘든 여정이 끝나겠지만, 저는 그냥 계속할 거예요.”
이럴 때는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겸손해진다. 저렇게 힘들지만,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불평불만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게 된다.
또 항상 겸손해질 때가 있는데,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해서 역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걸 볼 때다. 이 분들이야말로, 좋은 엑싯을 해서 평생 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어떻게 보면 나 같은 투자자한테 돈 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창업가보다 열심히 일 한다. 이런 분들이 아직도 매일 15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고, 자나 깨나 사업 생각만 하는걸 보면, 그냥 반자동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겸손해진다. 전에 내가 개인 자산이 수천 억 원이 넘는 연쇄 창업가의 짐승피칭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이런 분들을 꽤 자주 접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다른 분야에서는 솔직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직 미완성 소프트웨어를 베타 제품이라고들 하는데, 인생도 미완성이고, 삶의 묘미는 이 미완성 인생을 계속 개선해나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항상 베타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을 이미 했든, 실패를 여러 번 했든, 앞으로 성공을 하고 싶든, 창업가들이야말로, 상황과는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정말 베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보단,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분들한테는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밤새 쳐주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항상 겸손해질 수 있는 건, 그 자체가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