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정확한 통계를 내봐야겠다고 하면서 잘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일 년에 만나는 창업가/회사와의 미팅 횟수에 대한 통계이다. 미팅할 때마다 카운트를 하는 게 가장 정확한 방법인데, 어느 순간 이걸 깜박한다. 작년도 정확한 카운트를 하진 않았는데,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략 세어보면, 나는 한 400~500개 회사와 미팅을 한 것 같다. 즉, 매우 많은 사람을 만났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창업가들한테 가장 듣고 싶었지만, 가장 듣지 못 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잘 모르겠네요(I don’t know)” 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싫어한다. 남한테 항상 본인은 강하고, 일 잘하고, 모든 걸 다 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습성이 있다. 나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잘 안다. 특히, 창업가들은 자존감도 세고, 자존심도 세고, 일반 사람들보단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이나 무지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걸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나 같은 투자자한테는 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창업가의 나약함이 드러나고, 이러면 투자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나약한 창업가는 투자자들이 싫어한다. 안 그래도 힘든 스타트업 인생인데, 나약한 창업가는 절대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실은 “잘 모르겠네요”는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용기 있고, 자신 있고, 강한 사람이 오히려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모르는 거에 대해서는 “I don’t know”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창업가들과 미팅할 때 내가 물어보는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을 가진 분들을 오히려 경계한다. 이런 창업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지를 인정하면 불이익을 당할 거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이런 성향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더욱더 두드러진다고 한다. 실은 나도 과거에는 모르는걸 아는 척 한 적이 상당히 많고, 요새도 가끔 그러기도 하지만, 남이 아무리 “저 인간은 투자한다면서 그런 것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더라도, 모르면 무조건 모른다고 인정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실은, 모르는 걸 안다고 거짓말하면 그때는 남도 속이고, 자기 자신도 일시적으로 속으면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말 좋지 않은 결과가 만들어 진다.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면, 내가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스스로 제한하고, 언젠가는 상대방이 내가 거짓말 한 걸 알게 되기 때문에 신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개 마일로가 많이 아파서 얼마 전에 큰 수술을 했다. 강남에서 가장 크고, 비싸고, 잘 한다고 소문난 동물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수의사로부터 수술경과와 마일로 몸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 있게 상담을 했다. 그런데 뭔가 잘 모르고, 내가 물어보는 대답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변을 계속 주지 못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에 우리는 동물병원을 바꿨는데, 어떤 조사에 의하면 의사들이야 말로 자기 자신과 환자들에게 무지를 고백하는 것에 대해서 가장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의사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자신의 능력과 권위, 그리고 전문성에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만약에 이 수의사가 나한테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했다면, 나는 오히려 계속 같은 동물병원에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영어에서 말하기 가장 어려운 세 단어는 “I love you”가 아니다. 실은 그 세 단어는 “I don’t know”라고 한다. 그만큼 자신의 무지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건 힘들고, 어떤 사람들한테는 고층 건물에서 뛰어 내릴 때 보다 더 큰 공포심을 갖게 하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가장 중요한 건, 배워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하는데, 그 인정의 시작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