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월스트리트저널이 ‘How South Korea Successfully Managed Coronavirus‘라는 기사를 통해서 한국이 기술력과 정책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제어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나도 특히 조심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한국만큼 안전한 국가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 기사의 많은 부분에 동의했다. 특히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의 암호를 풀었다면서 칭찬할 정도로 한국의 이미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상승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같이 한국에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들한테는 너무 좋은 현상이다.
K 방역은 자랑스럽고 수출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제는 중-장기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겉으로 보이는 지표는 나쁘지 않지만, 경제 활동의 척추가 될 20대~30대를 많이 만나는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이들의 장래가 썩 밝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요새 정말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말하듯이, 요새 한국 젊은이들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빚투(빚을 내 투자)’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과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게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진 않고, 오히려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 같다. 물론, 모든 20대와 30대가 다 이런 건 아니다. 특히 우리가 투자하는 젊은 창업가들은 영끌과 빚투와는 오히려 거리가 멀지만,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신에서 보는 한국 또는 단순 외형적인 숫자로 보는 한국이 아닌, 실제로 2020년도를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고, 한국에서 일하고, 여기에서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20대와 30대가 보는 한국은 정말 암울하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고, 취업해서 평생 죽어라 일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고,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도 하기 힘들고, 결혼해도 애 낳기가 두려운 게 이들이 몸으로 느끼는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욱더 심해지고, 그 와중에 가장 왕성한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친구들이 사회와 경제에서 소외되고 있다. 즉, 한국에서 이들을 위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끌로 집을 마련하고, 빚투해서 크게 한 방 노리는 거다. 몇 년 후에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모르겠지만, 정부와 은행의 대출은 이런 “어차피 미래가 없는데, 인생 한 방이지”라는 분위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라서 앞으로 어떻게 될진 잘 모르겠지만,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내가 발견하고 있는 아주 밝은 부분도 있다. 이런 절박한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더많은 좋은 창업가들이 한국에서 혁신을 만들고 있다. 미래가 어둡고, 그것도 남의 미래가 아닌,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절박함이 간절하기 때문에, 뭔가 바꿔보려고 하고, 뭔가 혁신하려고 하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아마도 이걸 하기 위해 가장 쉽고 가장 임팩트가 큰 게 바로 창업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경제는 암울하고, 코비드19은 계속 갈 것 같고, 모든 게 불확실한 이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 우리 같은 투자자는 더욱더 기발하고, 스마트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하는 창업가를 더 많이 만나고 있다.
이런걸 보면서 혁신에 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주로 혁신은 몸과 마음이 편하고 느긋할 때,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가속화된다고 한다. (아직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구글이 일주일에 특정 시간은 직원들이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또는 많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종교와도 같이 믿고 있는 혁신적인 사고를 위한 사무실 공간 재배치 프로젝트 등이 창의적인 사고와 혁신을 촉진하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편한 상황에서 좋은 아이디어는 나오지만, 혁신적인 유니콘 아이디어는 오히려 절박하고 불편할 때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역사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공황 시대에 창업한 회사가 수십 년 동안 잘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 됐는데, 아마도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다. 편안함 속의 혁신 보단, 절박함 속의 혁신이 더 혁신적이다.
뭐, 그렇다고 이게 매우 바람직해서, 이런 절박한 상황이 평생 지속되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 창업한 회사도 결국엔 대부분 망할 것이고, 솔직히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역사에는 항상 up과 down이 있었고, 이런 현상은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