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그렇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보단,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기존의 관행과 인습을 바꾸고,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습성이 있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내가 아는 많은 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그건 원래 그렇습니다” 이다.

나도 실은 스타트업 일을 하기 전에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냥 오랫동안 사람들이 일했던 방식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바꿀 생각 자체를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그냥 누군가 “원래 법이 그래” , “원래 그건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하면, 한 번도 반박하거나 왜 그런지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그건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independent thinking과 consensus thinking에 대한 을 쓴 적이 있는데, 나야말로 당시에는 consensus thinking만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별 생각 없이 세상의 많은 일이 원래 그렇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항상 스스로 왜 그게 원래 그런지 물어보고 반박하는 습관이 서서히 생기고 있다.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독립적 사고를 하는 창업가분들 덕분이다.

우리가 투자한 많은 회사들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만들고 있는데, 너무 새롭기 때문에 관련 법률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시대에 약간 뒤처지는 오래전에 만든 법률만 존재하는 시장이 많다. 마이크로모빌리티, 핀테크, 암호화폐 등이 대표적인 분야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고, 불법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법도 아닌, 이 회색지대에서 사업을 하려면, 대부분의 창업가는 허락을 먼저 구하기보단, 일단 먼저 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면서, 법을 만드는 분들과 같이 상의하고, 협업하고, 가끔은 대립하지만, 그래도 모두를 위해서 좋은 방향으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면서 시장을 만들어 간다.

내가 요새 느끼는 건, 유독 한국은 이렇게 창업가들이 법을 만드는 분들과 합리적으로 상의를 하면서 협업할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 잘 안 나온다는 것이다. 혁신 자체가 사회의 틀에 자신을 맞추기 싫어하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만드는 건데, 정부는 이런 혁신을 지지한다고 겉으로는 주장하면서, 실제로 일을 할 때는 항상 사회가 만들어놓은, 아주 구닥다리 틀에 자신을 맞추라는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뭘 하려고 하면, “우리나라 법이 원래 그렇습니다.”라는 말로 더 이상의 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리는 걸 우린 너무나 자주 본다. 시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해서 정치인, 공무원, 창업가가 함께하는 자리에 과거에는 나도 가끔 나갔었는데, 어김없이 듣는 말은 “한국 법이 원래 그렇습니다” 이다. 바쁜 사람 불러놓고, 시장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수용하고, 나라의 정책에 반영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결국엔 한국 법이 원래 이래서 본인은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는, 이런 상황은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이런 건 앞으로 고쳐졌으면 좋겠다. 법이 그렇다면, 그리고 이 법이 잘 못 됐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러면 이 법을 고쳐야한다. 법을 고칠 수 있는 힘을 가진 분들이 “원래 법이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이 나라에는 발전은 더는 없다.

“한국은 규제 때문에 xxx 사업하긴 정말 힘들겠다.” 항상 결론이 이렇게 나서, 그 누구도 한국에서 이 사업하는 걸 엄두조차 못 낸다면, 우린 더이상의 혁신을 기대할 순 없다. 원래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다. 원래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원래 그런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