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프로덕트 회사에서 마케팅 회사로 전환하면 왜 위험한지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다. 뾰족한 제품력이 아닌, 남들도 만들 수 있는 제품으로 시장에서 승자가 되려면 돈을 많이 써서 마케팅하고, 사용자를 확보하고, 돈을 더 써서 이들에게 품질이 아닌 다른 혜택을 주면서 우리 경쟁사의 고객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초기에는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의 100%를 모두 투자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VC sponsored growth 플레이를 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방법은 아니고, 상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마케팅 싸움을 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가 시작되는데, 이건 정말 내가 말리고 싶은 경주다. 한국이 잘 만들지만, 제품력보단 마케팅이 더 중요한 대표적인 분야가 화장품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공장에서, 거의 비슷한 재료로 만들고, 가격과 효능도 비슷한 화장품을 판매하는 두 회사를 생각해보자. 제품에서 차별화를 못 하므로,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들이 마케팅 회사로 전환해서, 더 유명하고 비싼 연예인들을 모델로 섭외하고, 그리고 홍보한다. 한 회사가 김혜수 씨를 모델로 사용하면, 다른 회사는 더 핫하고 비싼 여자 연예인을 섭외해서 광고를 만든다. 그러면 다른 회사는 더 비싼 연예인을 사용한다. 그리고 계속 이런 마케팅 싸움을 한다.
마케팅과 동시에, 다른 싸움도 하는데, 바로 가격 인하 경쟁이다. 비슷한 제품을 두 회사 모두 1만 원에 판매하다가, 한 회사가 가격을 9,000원으로 낮추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비슷하지만, 더 싼 제품을 많이 산다. 그러면, 다른 회사는 가격을 8,000원으로 낮춘다. 이렇게 바닥으로의 경주가 시작되고, 최악의 경우 거의 공짜로 제품을 판매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손실은? 물론, 투자금으로 충당한다.
이런 바닥으로의 경쟁은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사용자를 확보해서 성장을 만들어야 하므로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우리 주변에는 꽤 많다. “고객을 락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수수료 싸움도 이에 해당한다. 배달 앱, 송금 앱, 또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경쟁하면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경쟁사보다 더 저렴한 수수료 정책을 표방하다 보면, 수수료가 계속 내려가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수수료가 없어진다. 그리고 이미 낮아진 가격이나 수수료를 다시 올리는 건 소비자들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서, 거의 불가능하다.
시장이 크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이 없다면, 결국엔 모든 서비스는 공짜로 가게 되어 있다. 이런 시장에서 매출 신장을 통해 외형만을 키워서, 더 큰 투자를 받고, 이 투자금으로 또 외형만을 키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1만 원권을 8천 원에 판매하면 된다. 그럼 1만 원권을 1만 원에 판매하는 경쟁사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1만 원을 팔 때마다 발생하는 2,000원의 마이너스는 투자금으로 충당하고, 또 투자받아서 계속 성장하면 된다. 그런데,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경쟁사가 어느 날 등장해서 1만 원을 5,000원에 판매한다면? 그리고 또 다른 경쟁사는 1,000원에 판매한다면?
이런 바닥으로의 경주를 하지 않고 이기려면, 워렌 버핏이 말하는 해자(垓字 )가 필요하다.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차별점과 진입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 사업 초반에는 이런 해자를 못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초반에는 투자금을 기반으로 마이너스 비즈니스를 하지만, 이걸 평생 할 순 없다. 어느 순간에는 락인 한 사용자를 기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걸 못 하면, 바닥으로의 경주를 하게 되고, 결국엔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다.
원동명
@배기홍님,
저도 중개 프롭테크 업계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어서 비슷한 의견을 남깁니다.
집토스/우대빵/다윈중개에 대한 단상
일부 기업들이 부동산 수수료를 인위적으로 낮추어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은 전략일 수 있다. 본래 의도와는 정반대로 안정적이었던 산업구조와 수익성을 오히려 파괴할 수도, 또 반대로 더욱 쉽게 향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집토스/우대빵/다윈중개와 같은 중개 기업이 최근 부동산 수수료를 낮추어 기존 부동산과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새로운 BM을 개발했다. 이 기업들은 분명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높은 수익과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 수익까지 보장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가격 인하 경쟁이 또 다른 가격 하락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 기업들이 지향하던 차별화된 BM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수수료에 대한 고객들의 가격 민감도를 강화하고 수수료 인하 경쟁의 원인을 제공하며 시장의 전체 크기를 줄여 버린 큰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반대로 부동산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식으로 파이를 키웠어야 했다.
이들은 분명 이번 전략으로 그들이 얻게 되는 경쟁적 지위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익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고 있겠지만, 경쟁사의 대응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의 방식이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판단된다면 당연히 주요 경쟁사들이 앞다퉈 모방하고 결국 잠재적으로 산업구조 자체를 파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산업에 속한 모든 기업은 불이익을 면치 못할 것이다. 주로 경쟁 열위를 극복하려는 2위 기업이거나 파산 직전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기업, 혹은 현실을 외면한 채, 비현실적 미래를 꿈꾸는 분별력 없는 기업들이 적극적인 밴치마킹을 통해 산업 파괴자(destroyer)가 된다.
특정 기업이 산업구조 자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Kihong Bae
너무 좋은 의견 여기서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