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오래된 병 중 하나가 남을 탓하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건 한국 사회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전 세계인에게 해당하긴 하는데, 그냥 내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에 남 탓하는 문화가 조금 더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그래도 조금은 더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 분들이라서 남 탓하는 분위기가 여기엔 덜 하지만, 최근에 내가 느꼈던 몇 가지 생각을 기록해본다.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높진 않았다. 일단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 잘 몰랐고, 잘 모르기 때문에 투자할만한 시장으로서의 매력도가 낮았다. 그래서 우리도 잠재 해외 LP들을 만날 때 가장 고생하고 시간을 많이 썼던 부분이 한국이 투자할만한 시장이고, 한국에도 정말 좋은 tech 스타트업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한국에서도 유니콘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한국의 이미지도 좋아지면서, 이런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시장을 아예 모르면, 질문 자체를 못 하는데, 한국이라는 시장에 대한 지식이 생기자, 해외 투자자들은 더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exit 관련 지적을 가장 많이 받았다. 아무리 좋은 회사가 많이 나와도 이들이 exit 할 수 있는 시장이 없다면 투자자로서는 매력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한국은 지금도 exit 시장이 유니콘이 나오는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고, 몇 년 전에는 정말 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이지, 한국도 exit 시장이 생기고 있고,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IPO 시장도 조금씩 활성화되고 있고,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또는 큰 스타트업의 다른 작은 스타트업 인수 사례가 조금씩 나오고 있고, 인수 가격도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큰 회사들의 생각이 굳이 돈 써서 다른 회사를 인수할 바에야 본인들이 직접 하는 거였는데, 직접 해보니 그냥 다른 회사 인수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싸고 스트레스 덜 받는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직접 하기보단 인수하는 것도 좋은 옵션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아직은 최대한 싸게 인수하려고 한다. 아마도 이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될 것이고, 제값을 주고 회사를 인수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더 많이 인수하지 않고, 인수해도 너무 싸게 한다고 불평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스타트업 대표들이 이런 대기업을 욕하고 탓한다. 나는 솔직히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는데, 비싸게 인수되지 못하는 스타트업 자신을 탓해야 한다. 사는 사람이 물건의 가격이 100만 원이라고 하면, 그건 100만 원짜리 물건이다. 시장에서 그 가격 이상 지불할 의향이 없는데, 혼자서만 가격이 1억 원이라고 우기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게 싫으면, 그냥 회사를 팔지 않으면 된다. 더 비싸게 회사를 팔고 싶고, 그 가격을 인수자에게 주장하고 싶으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 된다. 시장은 냉정하고, 시장에서 정하는 게 회사의 가격이니, 남 탓하지 말고,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큰 가치와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