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내가 존경하는 워렌 버핏이 항상 하는 말이, 머리로 투자해야지, 가슴으로 투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잘 봐야 하고, 시장을 잘 분석해야 하고,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우리같이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에겐. 나도 투자를 시작할 땐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고, 냉철함을 기반으로 투자 철학을 나름 몇 가지 정했다.
그런데 그동안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계속하면서, 몇 가지 기술적 변곡점을 경험했고, 몇 년마다 한 번씩 오는 큰 technological cycle을 겪어보니, 데이터와 머리로만 투자하는 게 어쩌면 최선의 전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니, 요샌 오히려 이렇게 투자하면 초기 투자는 잘 못하고, 우리가 원하는 홈런 투자는 더욱더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이젠 어느 정도 믿음으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우린 매일 다양한 딜을 검토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요샌 이 중 절반 정도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전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면, 그냥 보지도 않았다. 아는 분야의 사업만 봐도 너무 많은데, 굳이 모르는 분야의 사업을 공부하고 분석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내가 모르는 사업은 그냥 안 좋은 사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모르는 분야의 스타트업이 훨씬 더 많이 생겼고, 더 이상 이 회사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내가 모르는 사업이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업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배우는데 한 3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그 이후엔 내가 모르는 분야라도 최대한 많이 공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당시엔 시간을 좀 투자하면, 몰랐던 사업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했다.
이젠 내가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도, 자신감이 생길 만큼 이해할 수 없는 사업과 창업가를 간혹 만난다. 그리고 이런 카테고리의 사업이 더 많아지고 있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검토하는 딜들이 워낙 많아지고 있고, 새로운 기술과 사업이 매일 매일 새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나도 조금씩 스스로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변하지 않는 유일한 건 변화 그 자체’라는 아주 진부한 이 말을 온 몸으로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
올해 시작하자마자 우린 정말 많은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들 처음 미팅하고 내가 내부적으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잘 이해가 안 가네요” , “와, 이런 걸 정말로 사람들이 돈 내고 사용한다고?” , “뭐, 저런 사업이 다 있지?” 등과 같은 의심과 회의감 가득 찬 질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했던 건, 이런 의심을 버리고, 대신 의심을 호기심으로 대체했다. 이렇게 하니까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이 호기심을 기반으로 이 창업가와 비즈니스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공부와 고민을 했다. 물론, 100%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믿기로 했고, 이 믿음을 기반으로 투자했다.
우리가 만약에 특정 분야에만 투자하고, 그 분야의 여러 가지 수치와 공식이 이미 존재한다면, 이 글 초반에 이야기했던 냉정한 데이터 기반의 투자, 업종의 충분한 이해, 그리고 다각도에서의 분석이 유의미하다. 하지만, 수치가 없고,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라서 공식 또한 존재하지 않는 분야라면, 완벽하게 이해하기 전에 일단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이 이해를 뛰어넘을 수 있을 때는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의심하지 말고 대신 호기심을 갖자. 호기심이 생기면 더 공부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100% 이해하기 전에 믿음을 갖자. 아멘.
박세희 (Park Sehee)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