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이 시장에 투자하다 보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하고, 몰랐던 배움을 얻게 되는데, 오늘은 그 발견과 배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최근에 패커티브라는 한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B2B SaaS 회사라서 더욱더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었고, 오랜 세월 동안 기술이 적용되지 않고 있던 박스와 포장재 시장이라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도미니크라는 분인데, 교포도 아니고 유럽 오스트리아 출신의 완전한 외국인이다. 도미니크는 약 10년 전에 일 때문에 한국에 왔고, 그 이후에 한국이 좋았고, 한국에 매료돼서 여기서 계속 일을 하고 창업했다.

우리 투자사 중 AI 이력서 제작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Rezi라는 스타트업이 있는데, 이 회사의 창업가도 제이콥이라는 미국인(백인)이다. 제이콥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서 영어 선생님으로 왔다가 한국의 창업 생태계가 꽤 괜찮은 걸 경험하고 프랑스인 CTO와 함께 Rezi를 창업했고 한국에서 글로벌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다. 패커티브와 Rezi 두 회사 모두 한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 두 회사에 투자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 엔지니어와 PM 급 인력이 우리가 알던 것보다 꽤 많다는 것이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나 네트워크가 없고, 우리 말을 전혀 못 하는 외국인들이 – 그것도 우리보다 잘 사는 거로 알려진 나름 선진국 출신의 – 한국에서 창업해서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게 우리가 최근에 느끼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이다. 어떻게 보면 유럽이나 미국이 한국보다 창업 환경이 더 좋을 수 있고, 본인이 태어나고, 교육받고, 언어를 알고, 이미 친구와 네트워크가 있는 조국에서 창업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고 편할 텐데, 이 중 그 어떤 것도 없는, 서구와는 너무 다른 환경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창업하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창업하는 외국인들에게 왜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지 많이 물어봤는데, 공통적인 요소로는 높은 교육 수준으로 인한 똑똑한 인력, 아직까진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외국인이 지원하거나 받기엔 아직은 어렵고 복잡하지만)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그리고 기술적으로 앞서가고 아주 쿨한 나라라는 점을 손꼽는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이미지를 갖게 된 계기는 대부분 케이팝과 케이컨텐츠이지만, 한국에서 얼마 동안 살아보니 이보다 훨씬 더 큰 매력이 가득한 나라라고 모두 말한다.

우리가 이런 외국인 창업가에게 투자하고, 이들을 계속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바로 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계속 여기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보지 못하는 크고 작은 기회를 잘 본다는 점이다. 그냥 한국에서 쭉 살아왔으면 “원래 그런 거야” 하고 눈치채지 못했을 시장을 외국인들은 잘 보고, 이 시장에서 UI와 UX가 부러진 곳에 존재하는 기회를 잘 포착한다. 그리고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잘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그런 기회도 잘 본다. 또 좋은 점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영어는 기본적으로 잘하므로, 해외 VC들과 이야기할 때 전혀 불편함이 없어서, 후속 투자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면이 많다.

실은 패커티브도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한국의 이커머스는 세계적인 수준이고, 이로 인해서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위한 포장재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는데, 아직도 아주 오래되고 파편화 되어 있는 공장들이 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여기서 패커티브의 아이디어가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할 것이고, 창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한국의 창업 생태계와 경제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우리도 더욱더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