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글로벌 벤처 시장 관련 자료를 정리했는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CB Insights 수치에 의하면 2021년도 전 세계 벤처 시장에 투입됐던 투자금은 자그마치 $644B이었다. 이때가 시장에 가장 많은 돈이 풀렸던 해였는데, 그 이후에 세계 경기와 벤처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갔는진 모두 다 잘 알 것이다. 2022년도는 이 금액이 $418B으로 전 년 대비 35% 감소했고, 2023년은 어떻게 될지 잘 봐야 하지만, 시작부터 상당히 안 좋다. 2023년 Q1에 글로벌 벤처 시장에 투입된 벤처 투자금은 약 $60B인데, 이는 지난 5분기 연속 감소한 금액이다. 한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느끼는 현상에 의하면 2023년은 2022년 대비 최소 30% 감소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역사를 보면 한국의 벤처 시장과 글로벌 벤처 시장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타이밍이다. 주로 미국이나 다른 글로벌 시장에서 먼저 시그널이 오고, 이 시그널이 한국 시장에 도달하는데 약 3개월~6개월 정도 걸리니, 솔직히 말해서 올 하반기 한국 벤처 시장의 미래는 굉장히 어둡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이 어두운 미래의 시그널은 우리 투자사들의 재무제표와 펀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많은 우리 회사들의 현금이 메말랐는데, 이 와중에 성공적인 펀딩을 하는 회사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일단 돈이 없어도, 펀딩 자체를 포기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주변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를 잘 참고해 보니, 지금 시장에 나가봤자 투자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비용을 바짝 줄이고 살아남자는 전략을 택한 회사들이다. 어쩌면 이게 현명한 전략일 수도 있다. 대단하지 않은 사업실적으로 요새 투자 받는 건 불가능하고, 괜히 펀딩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면 그나마 유지되는 사업 자체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미 비용은 줄일 대로 줄였고,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 사는 회사들은 살기 위해서 펀딩을 시도하고 있는데, 요새 정말 쉽지 않다. 이런 회사들을 위한 방법의 하나가 바로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이다. 시간도 없고 회사의 런웨이도 짧고,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찾는 성장을 못 만들고 있는 회사들이라서 오히려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피칭하고 펀딩을 시도하는 건 시간 낭비이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꽤 괜찮고 무엇보다 팀이 좋은 회사들엔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다. 특히,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팀과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기존 투자자들에겐 회사의 가능성을 어필해 볼 만하다. 이 회사의 진가를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팀과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기존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존 투자자들로만 구성된 내부 브릿지 라운드를 시도할 땐, 이런 구조로 진행을 해보면 된다:
1/ 일단 회사가 단기적으로 필요한 최소 금액을 산정해 본다. 어떤 걸 기준으로 최소 금액을 산정할까? 1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이 브릿지 금액을 다 소진했을 때, 반드시 흑자 전환을 통해서 외부 자금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거나, 또는 훨씬 큰 다음 라운드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2/ 1번에서 최소 금액이 계산됐다면, 기존 주주 중, 유의미한 투자자들의 보유 주식 비율대로 브릿지 투자금을 할당해 본다. 아주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겠다. 필요한 브릿지 투자금이 10억 원이고, 유의미한 투자자 4곳의 보유 주식 수가 순서대로 400주, 300주, 200주, 100주, 총 1,000주라면, 각 투자자에게 할당하는 금액은 4억 원, 3억 원, 2억 원, 1억 원이다. 즉, 지분이 가장 많은 기존 투자자가 이론적으로 가장 많은 브릿지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
3/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에는 모든 유의미한 투자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모든 주주가 회사에 대한 support를 보여야 하며, 하나라도 빠지면 이런 브릿지 라운드는 그 의미가 빛이 바래고, 부러질 것이다.
4/ 이 브릿지 라운드의 의미는 가망이 없어서 죽어가는 회사를 일시적으로 살리기 위한 자금이 아니다. 설령, 회사를 잘 모르는 외부에서 봤을 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이 회사, 팀, 비즈니스를 가장 잘 아는 기존 투자자들이 일시적인 자금 문제만 해결하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 3번의 모든 주주의 참여가 중요한 것이다.
5/ 주로 이런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에 대한 대화는 기존 투자자 중 이사회 멤버가 리딩을 한다. 이사회 멤버가 다른 투자자들과 이야기하고, 이들을 설득해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투자자의 동의를 얻고 진행을 해본다.

그런데 이게 항상 이렇게 진행되진 않는다. 기존 투자자들이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를 수 있고, 모두 다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각 투자사의 상황, 그리고 각 펀드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내가 시도했던 이런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는 성공적으로 진행된 적 보단, 중간에 부러진 경우가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