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복싱을 다시 시작했다.(실은, 어깨가 아파서 요샌 또 쉬고 있지만…) 오래전에 복싱 연습을 좀 하다가, 이번에 13년 만에 다시 해보는 건데 역시 이만한 physical한 운동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복싱을 계속하다 보면 땀 흘리고 기분 좋아지는 운동으로는 최고지만, 내가 나중에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으면 정말 이 기술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복싱이나 태권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길거리 싸움에서는 그 화려한 움직임과 기술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박살나는 걸 직접 본 적도 있고, 유튜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왜 복싱 챔피언들이 길거리 싸움에서는 지는 걸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 같은 초보의 눈으로 봤을 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복싱은 손으로 하는 싸움이다. 상대방도 손만 사용하면 모르겠지만 현실에서의 거친 싸움은 발도 사용하고 손에 잡히는 모든 무기가 사용되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불리한 것 같다.
복싱은 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싸움만 연습한다는 점도 불리한 것 같다. 실전은 지형지물을 정말 잘 이용해야 하고, 완전히 열린 공간 또는 링보다 훨씬 더 작은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다.
복싱 글러브도 실전 싸움에선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맨손으로 거칠게 싸워야 하는 실전과 손에 붕대 감고, 그 위에 복싱 글러브 끼고 격투하는 건 다르다.
그리고 가장 불리한 점은 바로 복싱은 정해진 룰이 있다는 점이다. 실전에서는 일단 이겨서 살아남아야 하니 룰 같은 건 신경쓰지 말자는 생각은 하겠지만, 그동안, 이 규칙을 항상 인지하고 훈련해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길거리에서 거친 싸움꾼을 만나도 복싱의 규칙을 최대한 지키면서 싸울 확률이 크다.
그래서 복싱 챔피언들이 길거리 싸움에서 지는 걸 우리가 계속 보는 것 같다. 이들은 몸도 좋고, 움직임도 현란하고, 기술도 화려하지만, 불법이 아니면 – 가끔은 불법도 통한다 – 모든 게 허락되는 현장에서는 실전 경험이 더 많은 길거리 싸움꾼에게 밀린다.
비슷한 비유인진 잘 모르겠지만, 교과서로 경영을 배우는 학자와 정책입안자가 복싱 챔피언이고 매일 실전에서 진짜 경영하는 창업가들이 길거리 싸움꾼이라는 생각을 나는 항상 한다.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건 실전이지 가만히 있는 상대방과의 연습과 학습이 아니다. 창업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20년 치 하버드 MBA 케이스 스터디를 외우고, 사업에 대한 고민과 계획을 아무리 많이 해도 진짜로 사업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진짜 사업은 실전이다. 규칙도 없고, 불법이 아니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이 허용된다. 심지어 남들이 모르면 불법도 허용되는 게 실전인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교과서로 사업을 배우고 강의실에서 경영을 공부한 분들이 이래저래 하는 걸 너무 자주 본다. 이들은 매일 힘들게 길거리에서 싸우면서 줘 터지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훈수질한다. 어떤 이들은 제품 한 번 만들어 보지도 않고, 사람 한 번 채용해 보지도 않고, 사업자 등록 한 번 해보지도 않고,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보지도 않고, 투자유치 한 번 해보지도 않고, 마치 본인들이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이 행동한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제발 현장을 경험하고, 실전에서 싸우는 창업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어보라고 부탁하는데 이들은 항상 교과서와 이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교과서로 배우는 사업은 사업이 아니라 학문이다. 그리고 학문은 위에서 말한 복싱같이 실전에서는 잘 사용해 먹을 수가 없다. 진짜 사업을 하는 분들, 그리고 사업을 하는 분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분들은 textbook smart가 아니라 street smart가 필요하다.
저는 최고의 창업자는 결국 textbook smart와 street smart를 둘 다 갖춘 사람 아닐까 싶어요. 이론은 수십 년간 다른 사람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압축해 놓은 지도 정도로 비유한다면, 실전은 그 지도를 들고 직접 걸으면서 지도에는 없는 돌멩이와 늪을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도가 쓸모없다기보다는, 지도를 아무리 잘 알아도 실제 지형을 걸어본 경험과는 다른 종류의 지식이 있는 부분들이 있는듯요.
사업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뿐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기 stake를 걸고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만 생기는 tacit knowledge가 있느냐도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Knowing what to do와 실제로 그렇게 베팅하고 행동하는 것 사이에도 꽤 큰 간극이 있는 것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