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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이기는 방법

이전 포스팅에서 한국이 AI 전쟁에서 일등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항상 후발주자였고,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출발해서 일등 한 경험이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 방식에 있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한국이 몇가지만 개선하면 AI 시장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우리만의 플레이북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AI, 로봇 등의 딥테크에 엄청난 투자를 집행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건 한국에겐 너무나 좋은 소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막대한 투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대국이 됐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업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는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AI 인프라, 애플리케이션, 인재양성에 투자하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도 똑같이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하는 똑같은 플레이북인데 이렇게 똑같이 해서는 미국, 중국 또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이길수가 없다. 이런 나라들은 우리보다 돈도 많고 인재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발주자로서 이기고 싶으면 우리만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우리만 제일 잘 할 수 있는 소수의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한국에겐 맞는 전략이다. 바로 우리가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이제 일등하고 있는 분야에서 찾아봐야 한다. 메모리, 조선, 자동차, 건설, 국방 등이 이런 분야이다. 우리가 제일 잘하고, 그동안 많은 데이터가 축적된 분야에 AI와 로봇 기술을 접목해서 이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더 잘하는 전략이 한국이 이길 수 있는 플레이북이다. 그렇지 않은 분야는 과감하게 버리고 오히려 다른 나라가 만든 인프라를 잘 활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AI에 들어가는 막대한 투자 소식을 접할 때마다 드는 아쉬움도 있다. 이 투자금의 일부를 AI가 아닌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콘텐츠, 음식, 화장품 등 이미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분야에 우리는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다른 나라가 아예 따라올 생각조차 못 하는 압도적인 일등이 되는 게 AI에서 이기는 것만큼 중요한데, 지금 한국은 마지막 1원까지 모두 다 딥테크에 투자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도 우리만의 플레이북이 필요하다. 내가 정부에서 이런 자금을 집행하는 담당자라면 콘텐츠와 소비재 분야에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스트롱) AI, 딥테크, 국방, 우주, 로봇 분야에도 투자하지만, 입고, 바르고, 먹는 소비재 분야에도 매우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AI 전쟁에서 우리가 정말로 이기고 싶다면, 더 열심히, 그리고 더 많이 일해야 한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매우 똑똑하고 매우 열심히 일한다. 이게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강점이었지만, 이렇게 날카로웠던 우리의 엣지가 점점 더 뭉툭해지고 있다.

2010년도에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63시간이었다. 이는 약 1,700시간인 OECD 평균을 훨씬 더 웃도는 수치였는데, 이 근로시간은 2025년도에는 1,833시간으로 떨어졌고 계속 내려가고 있다. 지금은 OECD 평균보다 높지만, 조만간 평균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 우리의 근로시간은 2018년도에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게 한국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이 가진 유일한 자산은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을 잘 활용해야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9-9-6으로 일하는 중국을 이기고 싶어하고, 이겨야 한다고 외치면서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하는 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플레이북.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는 문화. 이 두가지만 잘 정착시키면 우린 후발주자라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이길 수 있다.

쥐어짜내기

우리가 7년 전에 첫 투자를 했고, 이후에 네 번을 더 투자해서 총 다섯번 투자한 회사의 창업가분들을 얼마전에 만났는데, 그날의 미팅에 대한 여운도 오래 갔고 여러가지 면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많아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일단 이 팀은 진짜 바퀴벌레팀이다.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이분들은 진작 회사 문을 닫고 사업을 접어야 했는데,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으로 지금까지 계속 잘 버티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을 접어도 그 누구도 이 분들을 비난할 수 없는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사업은 단순히 실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 실은 운이 실력보다 더 중요하다 – 이 분들에겐 아쉽게도 운이 별로 안 따라준다는 생각을 나는 자주 한다.

나는 이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기분좋게 놀란다. 이들이 잘 버티고 있다고 했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단순히 버티고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어려운 환경에서 계속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매번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계속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어려운 사업을 하는 수많은 회사와 창업가를 본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이분들은 볼때마다 매번 마지막 한 방울까지 스스로를 쥐어 짜내면서 방법을 찾는 게 정말 신기하다. 얼마전 미팅에서는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이 질문을 했다.
“와,,,나는 과연 나 스스로를 이렇게 쥐어 짜낼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게 못 한다. 그냥 생각만해도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나도 일반 사람들보다 고통을 나름 잘 견디고, 힘든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방법을 찾는 노력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이들과 같이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 짜내면서 방법을 찾는 걸 못 하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은 정말 독특하고 특별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고, 이런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위에서 말한 회사는 최근 1년 동안 거의 매달 회사에 큰 위기가 왔다. 자금의 압박, 정책의 변경, 경쟁사의 방해, 내부 인력과의 갈등 등과 같은, 규모가 작고 돈이 없어서 체력이 약한 스타트업을 한 방에 훅 가게 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었고, 솔직히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날때마다 나는 이제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이 창업가들은 그냥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죽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바퀴벌레 같은 분들이라서 매번 위기가 닥칠때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주말도 반납하고 전체 팀이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힘든 일이 닥칠때마다 어쩌면 이번엔 우리 회사가 망할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느꼈지만, 또 방법을 찾아서 극복했고, 이렇게 극복한 후에 생각해보니 그 공포스러운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느끼면서 계속 체력과 용기가 쌓이게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창업가들은 새로운 긍정의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되고, 이는 또다시 한번 모든걸 쥐어 짜내면서 새로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용기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반복될수록 복리가 작용하면서 웬만한 어려움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창업가가 된다.

나는 모든 어려움에 대한 해답은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데, 대부분 답을 찾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좋은 창업가들은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 짜내면서 매번 이 해답을 찾는 걸 자주 경험하는데, 이럴때마다 우리가 정말 대단한 사람들과 이 힘든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오늘도 고통스럽고 힘든 하루가 되겠지만, 다시 한번 모든 걸 쥐어 짜내보자. 답은 어딘가에 있고,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긍정랜드

누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농담 반으로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는 금융업이 아니라 건설업(=노가다)이라고 한다. 워낙 초기에 투자하고 우리가 직접 투자사를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창업가가 회사 만드는 걸 옆에서 같이 도와주고 있고, 바닥부터 회사 만드는 걸 묘사할 때 “building”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게 마치 건물을 올리는 것(=building)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는 ‘소방관’인데 워낙 많은 회사에 투자하다 보니 매일매일 어디선가 크고 작은 불이 나고, 우리는 그 현장에 가서 불을 같이 꺼야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VC가 하는 일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폼 나는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멋진 옷 입고 – 나는 아닌데, 그래도 입어야 하는 자리면 재킷은 입는다 – 공개 장소에서 마치 우리가 특정 회사를 유니콘으로 키운 듯 이야기하니까 – 참고로 내가 투자한 회사는 많은데 내가 키운 회사는 단 하나도 없다 – VC가 엄청 화려하고 멋진 직업인 줄 안다. 실상은 완전히 반대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잘 될 수 있게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고, 잘 안되는 회사를 – 우리는 워낙 많이 투자하니까 대부분 회사가 잘 안 된다 – 어떻게든 다시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대표들과 개노가다를 같이 하는 직업이 VC이다. 나는 자신을, 투자사를 응원하는 응원단장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불을 끄는 소방대장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도 정말 어려운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과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가 런웨이를 몇 달 더 연장할 수 있을지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힘차게 굴리면서 늦게까지 통화했고, 어제도 이제 사업을 그만둬야 할지 아니면 한 번만 더 푸쉬해야할지 고민하는 대표님에게 긍정의 힘을 주입하는 노력을 열심히 하면서 안타깝고 슬픈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직접 사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는 아니지만, 이런 날이 계속되면 나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가라앉는다. 아무리 잘 자고, 잘 먹고, 잘 운동해도 나도 이제 늙은 아저씨인데 왜 이런 감정의 기복이 없겠는가. 단지 겉으로는 항상 스트롱하다고 연기할 뿐이지.

그래도 매일 최선을 다해서 온전히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스타트업 생태계는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 찬 긍정랜드이기 때문이다. 이 생태계에 있는 분들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긍정의 마인드는 안 될 일도 되게 만드는 기적 같은 힘이 있다.

일반 회사나 대기업 다니는 분들과 캐주얼하게 이야기하거나 일 때문에 미팅하면 나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자주 본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존 방법과 다른 방식을 누군가 제안하면 즉각적인 반응은 항상 부정적이다. 그건 이래서 안 되거나 이미 해 봤는데 안 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 누구도 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하진 않더라. 그리고 이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매사에 이런 안 된다는 의견이 절대적이어서 그냥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부정적이다.

하지만 창업가나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내가 생각해 봐도 안 되거나 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즉각적인 반응은 일단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 그리고 되게 만들어보자. 이런 반응이 지배적이다. 물론 그건 안 되거나 내가 해 봤는데 절대로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분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의견이 소수이고 can do의 긍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부정적인 의견과 분위기가 밀린다.

힘들고 출구가 안 보일때도 많지만, 나는 이런 긍정의 힘을 믿는 분들과 같이 일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한국에는 에버랜드가 있고, 미국에는 디즈니랜드가 있고, 마이클 잭슨은 네버랜드를 만들었는데, 창업가들은 긍정랜드를 만들고 있다.

이런 긍정 마인드를 가진 분들과 교류하면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것처럼 훈련하고, 한 번도 패배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싸울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스타트업은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요샌 스타트업은 감동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교과서로 배우는 사업

최근에 복싱을 다시 시작했다.(실은, 어깨가 아파서 요샌 또 쉬고 있지만…) 오래전에 복싱 연습을 좀 하다가, 이번에 13년 만에 다시 해보는 건데 역시 이만한 physical한 운동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복싱을 계속하다 보면 땀 흘리고 기분 좋아지는 운동으로는 최고지만, 내가 나중에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으면 정말 이 기술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복싱이나 태권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길거리 싸움에서는 그 화려한 움직임과 기술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박살나는 걸 직접 본 적도 있고, 유튜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왜 복싱 챔피언들이 길거리 싸움에서는 지는 걸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 같은 초보의 눈으로 봤을 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복싱은 손으로 하는 싸움이다. 상대방도 손만 사용하면 모르겠지만 현실에서의 거친 싸움은 발도 사용하고 손에 잡히는 모든 무기가 사용되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불리한 것 같다.
복싱은 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싸움만 연습한다는 점도 불리한 것 같다. 실전은 지형지물을 정말 잘 이용해야 하고, 완전히 열린 공간 또는 링보다 훨씬 더 작은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다.
복싱 글러브도 실전 싸움에선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맨손으로 거칠게 싸워야 하는 실전과 손에 붕대 감고, 그 위에 복싱 글러브 끼고 격투하는 건 다르다.

그리고 가장 불리한 점은 바로 복싱은 정해진 룰이 있다는 점이다. 실전에서는 일단 이겨서 살아남아야 하니 룰 같은 건 신경쓰지 말자는 생각은 하겠지만, 그동안, 이 규칙을 항상 인지하고 훈련해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길거리에서 거친 싸움꾼을 만나도 복싱의 규칙을 최대한 지키면서 싸울 확률이 크다.

그래서 복싱 챔피언들이 길거리 싸움에서 지는 걸 우리가 계속 보는 것 같다. 이들은 몸도 좋고, 움직임도 현란하고, 기술도 화려하지만, 불법이 아니면 – 가끔은 불법도 통한다 – 모든 게 허락되는 현장에서는 실전 경험이 더 많은 길거리 싸움꾼에게 밀린다.

비슷한 비유인진 잘 모르겠지만, 교과서로 경영을 배우는 학자와 정책입안자가 복싱 챔피언이고 매일 실전에서 진짜 경영하는 창업가들이 길거리 싸움꾼이라는 생각을 나는 항상 한다.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건 실전이지 가만히 있는 상대방과의 연습과 학습이 아니다. 창업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20년 치 하버드 MBA 케이스 스터디를 외우고, 사업에 대한 고민과 계획을 아무리 많이 해도 진짜로 사업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진짜 사업은 실전이다. 규칙도 없고, 불법이 아니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이 허용된다. 심지어 남들이 모르면 불법도 허용되는 게 실전인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교과서로 사업을 배우고 강의실에서 경영을 공부한 분들이 이래저래 하는 걸 너무 자주 본다. 이들은 매일 힘들게 길거리에서 싸우면서 줘 터지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훈수질한다. 어떤 이들은 제품 한 번 만들어 보지도 않고, 사람 한 번 채용해 보지도 않고, 사업자 등록 한 번 해보지도 않고,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보지도 않고, 투자유치 한 번 해보지도 않고, 마치 본인들이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이 행동한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제발 현장을 경험하고, 실전에서 싸우는 창업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어보라고 부탁하는데 이들은 항상 교과서와 이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교과서로 배우는 사업은 사업이 아니라 학문이다. 그리고 학문은 위에서 말한 복싱같이 실전에서는 잘 사용해 먹을 수가 없다. 진짜 사업을 하는 분들, 그리고 사업을 하는 분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분들은 textbook smart가 아니라 street smart가 필요하다.

고통에 대해

얼마 전에 넷플릭스 스포츠 다큐멘터리 4부작 ‘RAFA’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한국에서는 ‘나달’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는데, 스페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 선수를 주니어 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고, 그동안 20년 넘게 팔로우해서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리즈가 재미를 넘어 그 어떤 스포츠 다큐보다 감동적으로 봤던 이유는 내가 알던 것보다 나달은 훨씬 더 투지가 넘치고 독한 선수라는 점이었다.

테니스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나달은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독특한 스타일의 테니스를 했던 선수이고, 그가 세운 기록 중, 4대 그랜드 슬램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 14회 우승은 아마도 평생 깨지지 않을 기록이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본인이 특별히 테니스를 잘했다기보단 “I hit very hard and I run very fast”라고 항상 말할 정도로 재능, 노력, 겸손함을 모두 갖춘 훌륭한 선수지만, 이 시리즈를 보면서 내가 제일 감동받았던 건, 테니스라는 고통스러운 운동을 하면서 그가 습득한 ‘고통’에 대한 정의와 그만의 독특한 관점이었다. 그의 고통에 대한 태도는 운동선수가 아닌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도 배울점이 매우 많다고 생각했다.

그의 고통에 대한 철학은 2008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더욱더 두각을 나타낸다. 이미 2006년과 2007년 윔블던 결승에서 나달은 테니스 천재 로저 페더러에게 두 번 연달아 패배한 경험이 있었고, 이번엔 정말로 그 누구보다 간절히 이기길 원했다. 그리고 결국, 비가 세 번이나 와서 총 7시간 동안 진행된 경기를 해가 거의 질 무렵 나달이 세트 스코어 3-2로 이겼다. 당시의 심정을 이 다큐멘터리에서 나달은 이렇게 표현했다.

“제가 그보다 테니스를 더 잘하는진 잘 모르겠지만, 전 페더러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준비가 돼 있었어요. 이건 확실했습니다.”

누구나 다 고통스러우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그 고통을 조금만 더 버티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또 버티고, 또 유혹을 뿌리치다 보면, 고통을 버티는데 점점 익숙해진다. 나달도 이 과정을 통해 평생 고통을 버티면서 “한 공만 더”를 했다. 아마도 이게 위대한 테니스 챔피언들과 그냥 테니스 선수들을 구분하는 자질인 것 같다. 한 공 더 버티는 것.

창업가도 테니스 선수 같은 운동선수이다. 다만, 몸보단 머리를 더 많이 쓰는 운동선수이다. 그래서 이들도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고통을 버텨야 한다. “한 시간만 더” , “한 이메일만 더” , “한 미팅만 더” , “한 피칭만 더” , “한 기능만 더”하면서 계속 버텨야 한다. 이 고통을 버틸 자신이 없으면 사업가로서 성공하긴 정말 어렵다.

얼마 전에 우리가 좋아하고 가끔 후원하는 연고대 창업 학회 인사이더스 회원분들을 대상으로 AMA 세션을 진행했는데, 어떤 학생분이 스트롱 팀원 모두에게 각각 어떤 창업가를 선호하는지 물어봤다. 우리 팀동료분들 모두 각각 다른 답변을 했는데 나는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할 수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려면 월~금 매일 20시간씩 일해야 하고, 주말에도 일한다면 매일 14시간씩 일해야 해서 아무리 스타트업이라도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업무 강도라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 힘든 분야에서 정말로 성공하고 싶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나달과 같이 남들보다 고통을 더 견딜 수 있어야 한다.

AI가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오면서 인간은 모두 덜 일할 것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완전히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 더 잘할 것이고,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항상 앞서갈 것이다.

나는 고통을 더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