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기업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회사의 올바른 성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기업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경영학 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좋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고, 그 기업문화가 전사적으로 퍼지고 뼛속까지 파고들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는데 최근에 직접 체험하고 느낀 점들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에너지 드링크로 유명한 Red Bull의 북미 본사가 LA에 있는데 얼마 전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시간이 좀 남아서 난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Red Bull 입구로 들어갔다. 일단 리셉션에서 check-in을 하는데 리셉셔니스트가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면서,
리셉셔니스트: 지금 도대체 뭘 마시고 있나요?
나: 커피 먹고 있는데…왜요? 어차피 (레드불과) 같은 카페인 아닌가요?
리셉셔니스트: Oh my god…그런 쓰레기를 마시다니…
뭔가 좀 찜찜한 기분으로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미팅 상대를 기다렸다…커피를 마시면서. 그런데 로비를 왔다 갔다 하는 모든 레드불 직원이 지나가면서 나랑 내 손의 스타벅스를 번갈아 보면서 좋지 않은 표정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지나갔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깐 나이지만 이 정도 되니까 이 회사의 분위기 파악이 되면서 스타벅스를 들고 있는 손이 좀 민망해져서 커피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자마자 리셉셔니스트가 갑자기 차가운 레드불 한 캔을 가지고 왔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음료수죠.”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솔직히 난 레드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박카스를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하지만, 레드불에서의 불쾌/유쾌했던 이 경험은 ‘기업문화’에 대한 아주 강한 이미지를 내 머리에 각인시켜 줬다. 솔직히 ‘리셉셔니스트’라는 포지션은 일반적으로 아주 low level의 포지션이다. 내가 아는 다른 회사의 모든 리셉셔니스트들은 회사에 대한 애사심은 전혀 없다. 대부분 회사가 뭘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냥 리셉션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 안내하고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그런 포지션이다. 그리고 언제나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라는 게 회사의 생각이자 본인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레드불의 리셉셔니스트는 타사의 드링크를 마시고 있는 손님한테 감히 시비를 걸면서까지 자기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권했다. 그냥 회사에서 시킨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사심 때문이었다. 미팅 내내 레드불은 회사의 대표이사부터 말단 리셉셔니스트까지 ‘Red Bull’이 전 직원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단한 하드코어 기업문화다.
애플도 레드불 만만치 않은 기업문화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전사적으로 ‘디자인’ 우선주의 문화가 팽배해 있다. 애플 제품을 배달하는 물류창고에 가보면 작업자들이 애플의 사과 로고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박스를 트럭에 차곡차곡 싣는다고 한다. 어느 날 애플 본사의 한 중역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트럭 기사가 하는 말이 트럭을 열었을 때 애플 로고가 모두 잘 정렬된 거를 보면 고객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그걸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건데 정말 대단하고 약간 무섭기까지 한 애플의 기업문화이다.
가끔 난 생각한다. 레드불과 애플과 같은 회사와 경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이런 기업문화를 이기려면 그 경쟁사들은 얼마나 더 탄탄하고 잘 정립된 문화가 필요할까?
<이미지 출처 = Viralscape>
인용: 리더십 | seheelaw
[…] from 기업문화에 대해서 […]
익명
대단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Kihong Bae
Thanks!
익명
글 잘 읽었습니다. 문화가 주는 힘은 정말 강력하지요! 다만 Redbull처럼 집단 차원의 강한 문화(로열티)가 항상 좋은 것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조직일 수록 외부관점수용이 굉장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죠.. 우리나라 대기업이 지나친 로열티/자부심으로 안주하다가 깨진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Kihong Bae
네 저도 이 부분 많이 동의 하고 있습니다. 뭐라도 너무 지나치면 해가 되죠^^ 고맙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대기업은 원래 그래요 : 대기업의 좀비들
[…] 기업문화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기업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레드불(Red Bull)의 기업문화에 대해서 쓴 적이 있는데, 당연히 이런 회사에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
개밥 먹는 문화 | THE STARTUP BIBLE
[…] 하는데 반드시 직접 자기 개밥을 먹어봐야 한다. 그것도 항상. 전에 Red Bull 북미 본사 방문했을 때 리셉셔니스트한테 쿠사리 먹은 적이 있는데,이 리셉셔니스트 또한 자기 개밥을 철저히 먹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좋은 […]
Seri Sheen
몸에좋은걸 권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중고등학생들이 커피는 안마시지만 레드불 쌓어놓고 마시는 걸 보면 마음이 안좋아요 문화가 철학도 가져야함을 생각합니다
Kihong Bae
네, 그래도 저도 글에서 말했듯이 불쾌했죠. 그래도 그런걸 감수하면서까지 손님에게 자사의 제품을 권하는건 정말 대단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Chaos
그런데 그런 접근방식이 사람에 따라 강렬히 불쾌하게 느낄수도 있지 않을까요? 스타벅스와 레드불이 만약 펩시vs코크처럼 뚜렷한 경쟁업체라면 좀 납득이 갈테지만.. 뭔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예시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네요.
Chang
레드불 본사에서 마시고 있는 레드불은 아마 성분이 조금 다를겁니다. 뭔가를 넣을 듯.
Kihong Bae
미팅 끝나고 레드불 드링크로 가득찬 창고로 데려가더니 가져갈 수 있는 만큼 다 가져가라고 해서 한 박스 가져왔는데 한 일주일 동안 high 했던 기억이 ㅋㅋ. 그러고보니 뭔가 좀 있었던거 같은…
UK Jung
맥 관련 까페에서 남미쪽에 있는 애플 리테일 스토어에서 일하는 분이 매장 창고 사진을 올려주셨는데
기가 막히더군요;; 정말 뭐랄까…제품 정리되어있는게 북한군 도열하는거보다 더 깔끔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겉"에서 볼 때부터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아야한다는 개념이 매장직원들에게도 뿌리내린 것 같았습니다
KB
Thanks!
용퓌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