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usa오늘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1995년 9월 18일에 나는 카투사 복무를 위해서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그동안 몇 몇 동기들과 부대 사람들과는 계속 연락을 했었지만 얼마전에 카톡을 통해서 많은 동기들과 다시 연결되었다. 그리고 지금 조용한 새벽에 거실에 혼자 앉아서 입대한지 벌써 20년 됐다는 생각을 하니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와 가슴을 스쳐간다.

‘카투사’ 라고 하면 “그게 무슨 군대냐”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전반적으로는 한국군보다 – 엄밀히 말하면 카투사도 한국군이다 – 카투사 생활이 조금 편한건 사실이지만, 한국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편한 보직이 있는가 하면 카투사도 최전방에서 엄청 힘들고 고생하는 보직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 군생활은 카투사 중에서도 육체적으로는 많이 편했다. 용산 미8군 본부중대 의전실에서 근무했는데(통합섹션이라는 그룹에 속함) 주 업무는 한국을 방문하는 군과 민간 VIP들을 의전하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담당했던 업무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총을 들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이 군 생활이 아니고 애국은 아니다. 내가 근무할때 한국을 방문했던 해외 VIP들 중 기억나는 사람들은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현 대통령 후보, 조 바이덴 미국 부통령, 콜린 파웰 장군과 같은 정치인들부터 브루스 윌리스와(Planet Hollywood라는 테마식당 홍보 차 방문) 달라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들(미군 위문 공연) 같은 연예인들이 있었다. 나는 이들을 최대한 professional 하게 모셨고, 필요할때는 주말에 서울 관광도 시켜주면서 비공식적인 민간 외교활동을 조금이나마 했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20년이 지난 오늘, 미군부대에서의 좋은 일들은 추억이 되었고 나쁜 일들은 경험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는 카투사 생활 2년 2개월이 시간낭비였다기 보다는 발전을 위한 좋은 플랫폼이 되었던거 같다. 아직도 자주 연락하고 가끔씩 보는 좋은 동기들과 부대 사람들을 만났고, 한국에서 고등학교/대학교를 다니면서 약간 녹슬었던 영어에 다시 기름칠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미군의 시스템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단함과 왜 절대강국인지를 조금이나마 배웠고 – 반면에 쓰레기 중 이런 개쓰레기 같은 아메리칸들도 있다는것도 배웠다 – 이는 내가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요새 리더쉽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는데 나같은 이등병한테도 너무나 자상하고 진지하게 대해주셨던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Gary Luck 대장님은 지금까지 내가 본 리더 중 최고의 리더쉽을 보여주셨다.

한국 출장가서 삼각지에서 이태원쪽으로 가다보면 용산기지가 보이는데 그때 생활이 많이 생각나고 부대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사무실도 찾아가고 막사도 다시 가보고 싶다. 97년 제대할 때만 해도 이태원에는 지하철도 없었고, 이렇게 좋은 식당과 문화가 있는 거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배고플때 가끔 나가서 낙지소면 먹던 경리단길이 이렇게 멋진 길이 될 줄….

왜 가끔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괜히 옛 일이 생각나고, 그때 사람들이 생각나고…..아마도 오늘이 그런 날인거 같다. 디게 그립네…어떤 사람들은 같은 서울에 살아도 평생 다시 못 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거 자체가 좋은 추억인거 같다. 단결!


<이미지 출처 = 한미경제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