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참 어렵다.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창업가는 “우린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이 잘 모르는 거 같으니까, 이젠 마케팅을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을 계속 읽으신 분들은 마케팅에 대한 내 기본적인 생각을 아실 거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큰돈을 쓰는 마케팅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게 내 지론이고 지금도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다면, 마케팅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제품이 후졌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제품 그 자체가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제품을 출시 한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스타트업들을 만나면 모두가 어떻게 하면 마케팅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중 최근에 만난 회사들은 큰 무대에 나가서 피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자료를 만들고 여기저기 지원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 같았는데, 이게 왜 현명하지 않은 전략인지 내 경험 두 가지를 공유해본다. 실은 좀 오래된 경험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07년 9월 17일 샌프란시스코 Palace 호텔에서 제1회 TechCrunch 행사가 열렸고, 뮤직쉐이크는 운 좋게 최종 피칭 회사로 선정되었다. 원래는 TechCrunch20라는 이름의 행사로 20개의 최종 스타트업이 피칭하는 자리였는데, 좋은 회사들이 너무 많아서 TechCrunch40로 행사 이름을 바꿔서 40개의 스타트업이 피칭을 했다. 이 행사가 계속 커지면서 지금의 TechCrunch Disrupt로 진화한 것이다. 여기 지원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고, 테크크런치 스태프들과 인터뷰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발표 준비를 위해서 며칠을 이 행사에만 집중해야 했다. 당연히 실제 비즈니스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리가 너무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걸 세상이 알 수 있게 멋지게 발표해서 마케팅하면 우리도 과도한 트래픽으로 인해 서버가 뻗어버리는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신했다.
워낙 연습을 많이 해서 발표는 잘했고, 재미있는 제품이라서 그런지 청중의 환호가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성공적인 피칭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테크크런치의 힘을 받아 전 세계에 뮤직쉐이크를 알렸고, 과거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트래픽이 우리 사이트로 몰렸다. 그런데 이 기쁨도 며칠 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우리 제품을 사용해보니, 여기저기 버그들이 발견되었고, 사용자들에게 우리 제품의 가치를 완벽하게 전달할만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트래픽이 엄청나게 왔다가, 엄청나게 다시 다 빠졌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많은 사용자를 계속 lock-in 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갑자기 상승했다가 수직으로 하강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그림을 구글 애널리틱스에 남겼다. 제품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섣부른 마케팅은 회사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나는 스스로 내렸다.
현명한 사람은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하는데, 나는 현명하지 못한 거 같다. 위에서 말한 경험이 있음에도 나는 2012년에 똑같은 실수를 범했다. 이번에는 우리 투자사 The Good Ear Company가 VentureBeat에서 개최하는 MobileBeat 2012 스마트폰 앱 대회에 지원했는데, 최종 발표 업체로 선정되었고, 미국에는 인력이 없는 이유로 내가 대신해서 피칭을 했다. 테크크런치만큼 크거나 유명한 대회는 아니었지만, 내 할 일 모두 제치고 열심히 준비했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1등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앱이 아직 아이폰 앱스토어 심사 중이어서 결국 내 피칭을 보고 이 앱에 관심을 보였던 그 많은 청중이 그 자리에서 앱을 당장 사용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이렇게 힘들게 일으킨 관심은 몇 시간 만에 곧바로 증발했다.
이 두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배운 점은 다음과 같다:
1/ 사용자들이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가 없는 제품은 아무리 마케팅해도 소용없다
2/ 출시하지도 않은 제품은 아무리 마케팅해도 소용없다
3/ 섣부른 마케팅은 시간 낭비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제대로 된 제품도 없는데 여기저기 피칭 대회에 기웃거리는 창업가들이 너무나 많다. 가끔 이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가보면, 발전 없는 쓰레기 같은 제품으로 2년 동안 이런 대회에만 나오는 대표이사들도 만나봤다. 팀이 정말 자랑스러워할 만한 제품을 출시한 후, 시장의 반응이 궁금해서 이런 대회에 한 번 정도 나가서 피칭하는건 괜찮은 거 같다. 그 이상은 절대적인 시간 낭비다.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제대로 된 제품이나 만들어라. 그게 진짜이자, 유일하게 의미 있는 마케팅이다.